지난 5월15일 ‘2009년 전국단위 민방위 종합훈련’이 수원시 팔달구 소재 화성행궁 일대에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국제화학방호훈련과 연계한 테러대비훈련으로 실시됐다. 훈련에는 민방위대원, 소방, 경찰, 군 등 관계자 500여명과 헬기, 화학차 등 50종 1000여점의 장비가 동원됐다. 수원시에서 주관하고 소방방재청(청장 최성룡)과 경기도(도지사 김문수),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사령관 이재호)에서 주최한 이번 대규모 훈련은 최근 국내외에서 증가하고 있는 테러와 문화재 화재사고 등 각종 재난 관련 유관·기관들의 실질적인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실시됐다. 이처럼 소방방재청은 민방위 훈련을 점차 전문·기능화하는 등 민방위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이번 훈련에 앞서 지난 4월24일 ‘민방위 선진화 추진단 2차 자문회의’를 가졌다. 민방위 선진화 추진단은 이상팔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이재은 충북대 교수, 문현철 초당대 교수, 이경훈 고려대 교수, 유종숙 숙명여대 교수, 남창우 경북대 교수, 허용하 강서구청 자치행정과 주임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됐다. 소방방재청과 지난해 7월7일부터 11월4일까지 약 4개월간 고려대학교 정부학연구소(소장 최흥석)에서 최흥석 고려대 교수를 중심으로 연구된 ‘민방위 역할 및 기능 재정립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민방위 선진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난포커스는 ‘민방위 역할 및 기능 재정립 연구용역’ 보고서를 입수, 소방방재청의 민방위 선진화 추진 방향에 대해, 특히 제도·조직 분야를 중심으로 심층 점검한다.

< 재난포커스 - 장영광 기자  jang@di-focus.com >

‘민방위 역할 및 기능 재정립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방위는 민방위기본법에 따라 개념이 포괄적이어서 각종 재난관리가 민방위 체제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재난현장에서 민방위가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민방위 제도는 재난을 포함한 전·평시 국가위기사태를 관리하는 기본체제로 규정돼 있지만 국가방위와 재난을 통합하는 실질적인 제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그 이유를 우리나라 민방위 제도가 안보분야에 초점을 뒀으나 차후 재난관련 분야까지 업무 영역이 확대돼 재난유형이 다양화되면서 대응·수습 능력은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민방위제도는 국민 안보의식 향상, 재난사고 대처 등 많은 공헌을 해왔지만 최근 안보와 민방위 정책 환경의 변화로 인해 민방위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고서는 “민방위제도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도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현재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분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특히 민방위교육의 질을 개선하고 교육시간을 단축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적인 자원관리로 운영의 실효성을 확보하자는 지적이 많다”고 설명했다.

민방위 사태, 개념부터 재정의
분단 국가로서 우리나라 민방위 제도는 다양한 상황 변수를 고려해 각종 국가 위기관리 대응을 지원하는 체제로 거듭나야 생존할 수 있다. 따라 현재 민방위 시스템은 조직, 편성, 운영, 홍보, 교육 분야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민방위의 개념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현재 재난관리 조직 중 소방기관은 화재 중심으로 재난관리를 활동을 하고 있고 군은 무장간첩 침투나 수해복구 등에 중장비와 군대 병력을 동원해 재난대응·복구 활동을 하고 있다.

민방위 업무는 전시와 평시업무를 구분하고 있으며 평시에 재난대응·수습업무에도 동원되고 있다. 따라 민방위업무가 다른 재난관리조직의 업무와 중첩될 수 밖에 없다. 보고서는 “민방위가 안보분야와 재난 대응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능과 역할에서 차별화된 브랜드를 개발해야 한다”며 “재난관리조직이 차별화되지 않고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게 될 경우 생산성 한계에 봉착하게 되며 이는 재난관리 조직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민방위기본법에는 민방위 사태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 민방위대를 동원할 기준이 명확치 않다. 소규모 재해나 재난에도 의용소방대, 자율방재단 등과 업무영역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어 민방위 사태의 개념부터 재정의 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방위 사태는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 사태’에서 ‘비상사태+안보급 재난사태’로 재정의 해야 한다. 이는 즉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자연재해의 경우(재난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통합방위사태를 포함한다.

기존-사이버 민방위대로 이원화
국가 안보정책이 변화하고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둔화되면서 민방위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민간재난조직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방위 조직은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론이나 설문조사로 민방위 존폐를 결정하고 축소 지향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유사시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역민방위대, 직장민방위대, 민방위 기술지원대 등 기존 민방위대가 민방위 사태 시 동원될 수 있는 중추적인 조직이고 유사시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민방위대를 기존의 민방위대(20세~40세 의무동원)와 순수민간단체로 운영되는 사이버민방위대로 이원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사이버 민방위대는 사이버상에서 관리되며 유사시에는 재난현장에 지원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방위 사태 시 지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난 발생 초기에 신속히 투입돼야 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민방위대는 재난발생 추이를 지켜보다 대규모 재난으로 확대될 경우에만 동원된다. 그러다보니 적절한 대응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전국단위 민방위 훈련에 참가한 민방위대원들이 훈련을 이수한 후 소집필증을 작성하고 있다.

이에 보고서는 순수 민간형태로 지역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동호회’ 차원의 사이버 민방위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이버 민방위대는 기존 민방위대와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기본적인 원칙은 기존 민방위대를 자원조직화해 총사령관 중심 체제로 편성하되 기술특공대와 여성민방위대의 역할과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특히 사이버민방위대는 오프라인 상의 민방위대가 지닌 지리적·정보공유 등의 한계를 보완하고 장비구매, 온라인 교육 등을 활성화시켜야한다.

대규모 사태 대비할 장비 구비해야
민방위 조직이 재난현장에서 비교적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는데 이는 현재 민방위 장비가 사실상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방위 장비는 급수시설, 화생방장비 등으로 구성돼 있고 재난 발생 시 기본적인 초동수습 및 인명구조에 일반민방위대원들이 신속하고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확보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방위대원들이 동원되는 경우는 대규모 재난사태인데 대규모 재난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발생가능성이 높은 재난유형을 중심으로 이에 맞는 장비를 구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산불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는 등짐펌프, 물탱크 차량, 물대포 중심으로 장비를 구입해야 하고 원전 주변지역은 방독면 등 방사능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 특히 이동가능성이 높고 최소 인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자동화된 설비가 필요하다. 민방위 시설의 경우도 지역별 특성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비상급수시설은 전국 읍 이상 도시지역의 인구 밀집지역에 설치돼 있는데 그간 단위시설 규모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팔당댐에 화학물질을 운반하는 탱크로리가 전복되거나 상류지역의 공장에서 오염물질 대량유출사고가 발생할 경우 팔당댐은 서울·경기 지역의 상수원으로 역할을 할 수 없다. 유사시 특정 지역이 적의 공격을 받아 수도관이 파열돼 지연될 경우에는 급수시설의 음용수와 생활용수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비상급수시설에서 물만 공급할 수 있고 지역 전체에 급수시설의 물을 어떤 방법으로 공급할 지에 관한 시나리오가 없다.

따라서 물탱크 차량 등을 지원 받을 수 있도록 사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보고서는 또 테러나 전쟁 발생 시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대도시 지역과 인구밀집 지역에 주민 대피 프로그램과 비상대피시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만일 핵폭탄 투하지역을 서울 근처로 가정했을 때 처음 열복사 단계에서는 폭발 일어난 주변 1km 거리의 지역은 폭발과 동시에 증발한다. 이어지는 후폭풍 단계에서는 약 7~9km 지역에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

선(先)낙진 피해 단계에서는 30km 주변이 피해를 입을 수 있고 후(後)낙진 단계에서는 일본까지 방사능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따라 핵사고가 발생할 경우 주민들을 대피시킬 1등급 대피시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경우 화생방 사고의 위험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1등급 대피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한편 서울시는 오는 2011년까시 서울시 청사에 1등급 비상대피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자율적인 민방위 위한 조직설계
현재 지방정부조직은 자치와 분권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분권화에 논리에 부합하는 민방위 조직설계의 철학적 기반은 자율적 복원 지향적 시민보호 정신(community self healing oriented civil defence philosophy)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는 중앙 의존적이고 획일적인 민방위의 개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율적인 민방위로 전환키 위해 필요하다. 이 경우 선택과 집중에 따른 조직설계가 불가피하다. 현재 민방위대의 조직은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 인적자원, 예산 장비 등에서 차이가 있다.

때문에 인적 편중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보완적인 연계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소도시나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노인인구가 많고 젊은 층의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지역민방위대를 구성할 요건이 되지 않아 이웃 지역과 연합해 민방위대를 구성하고 있는 곳도 있다. 특히 농촌지역의 경우 자율적인 지원자에 의한 지역 민방위 대원을 확충해 자체 수습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방위기본법에 따르면 민방위 편성 대상 기준(20~40세 남성) 이외에 여성 등 누구나 자원만 하면 민방위대원이 될 수 있다.

특정 가능성 고려한 기술지원대 특화
민방위 조직이 동원될 재난은 재난선포지역, 특별재난선포지역, 통합방위사태 등과 같은 대형재난이다. 대형재난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안보급 대규모 재난이 발생가능성이 높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들로 구분될 수 있고 과거의 경험을 통해 수해가 빈번한 지역, 산불발생이 빈번한 지역, 설해피해가 빈번한 지역 등으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가스저장시설, 유류저장시설이 집중돼 있을 경우도 위험성이 높다. 따라 지역민방위대나 기술지원대를 구성할 때 지역의 특정 재난발생가능성을 고려한 조직설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스스로 자기보호 역량 강화할 틀
보고서는 “민방위 조직을 능률성 논리에 따라 운영할 경우 유사시 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민간조직은 전시나 비상사태 시 얼마나 동원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민방위대의 대체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이나 준전시 사태라 할 수 있는 민방위 사태에서 단 한번의 실패는 국가존립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 능률만 앞세우는 것은 적합지 않기 때문이다. 민방위 사태는 한 번 발생하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사태 수습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효과성의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앞으로의 민방위는 국민 개인 스스로가 자기보호 역량을 강화하는 ‘틀’이 돼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민방위대는 실전훈련 중심으로 운영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홍보 업무를 사이버 민방위대에서 전담해야 한다. 소방방재청은 ‘민방위 역할 및 기능 재정립 연구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민방위 선진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방위 선진화 추진단의 이상팔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사이버 민방위 콘텐츠 수립 등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번 민방위 선진화 추진이 약화된 안보의식을 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