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2월18일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사회안전’에 대한 국가표준으로 KS A ISO/PAS22399를 고시했다.(기표원 홈페이지 및 고시공문 캡처사진 참고) 이로써 우리도 사고대비 및 운영연속성관리에 대한 국가 가이드라인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현대사회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으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많은 위기가 잠재되어 있다. 이에 기후의 변화로 인한 다양한 기상재난과 각종 스트레스 및 콤플렉스로 인한 사건사고 등 사회적, 자연적, 인적 재난 역시 대형화·빈발화·비정형화 복잡화 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해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고 이듬해인 2003년 대구 지하철사고로 또다시 많은 국민들의 생명을 잃고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자연적, 사회적위기와 재난을 연이어 겪으면서 국가재난관리를 총괄할 부서가 요구됐고 이에 따라 소방방재청이 설립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태안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와 국보1호 숭례문 소실, 고병원성 조류독감(AI) 전국 확산, 멜라민 파동, 이천 물류창고 화재 등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에 따라 총체적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점검과 아울러 재난관리에 대한 국가적 표준이 절실히 요구됐다. 이런 와중에 기술표준원에서 발표한 「사회안전 국가표준」은 향후 더욱 심각해 질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재난과 위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기술표준원이 발표한 사회안전 국가표준의 의미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고 위기, 재난관리의 주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출하고자 한다.
< 재난포커스 - 이규복 기자  kblee@di-focus.com >

2008년 12월18일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한국산업표준으로 제정하고 고시한 ‘KS A ISO/PAS22399'는 사회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KS A ISO/PAS22399'는 기관 및 조직이 이를 바탕으로 각종 사건사고에 대비하고 운영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 주는 국가의 재난안전관련 표준이다. 헌법 제127조 제2항에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고 돼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재난관리표준’은 물론, ‘기업재난관리표준’도 없었다.

	기술표준원 홈페이지에 게제된 KS표준고시

이렇다보니 당연히 ‘국가재난관리표준화’ 관련 규정도 ‘기업재난관리표준화’ 관련 규정도 없었고 각 기관별로 또 기업들 자체적으로 알아서(?) 사건사고에 대비하고 대응해 왔다. 기술표준원의 이번 고시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가표준을 제정함으로써 위기와 재난발생에 대응하는 기술적 시스템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민·관간 조직간 국가간 협력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함이다.

이번 KS A ISO/PAS22399를 심의한 사회경영시스템기술심의회 정수일(인하대 교수)위원장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세움으로써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엔 사고 직후 분석만 하다가 또다시 다음 사고를 맞이하는 식의 악순환이 연속되어 왔다”며 “아직까지 사후관리에 치중돼 있는 국내 재난안전관리 체계가 이번 국가표준 제정을 통해 예방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됐다”고 밝혔다.

심의회 김종렬(유한킴벌리 이사)위원 역시 “이번 국가표준 제정을 통해 사회안전망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특히 세계화에 발맞춰 글로벌스탠다드로 표준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제는 인간중심에서 재난을 바라보고 과학적 분석과 대책 마련, 행동, 경향분석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비 및 시스템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화 된 국가재난관리표준
KS A ISO/PAS22399는 쓰나미 이후 국가간 효율적인 협조와 원활한 공조를 위한 표준이 필요하다는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ISO가 추진해 온 국제표준을 한국표준(Korea Standard)으로 제정고시 한 것이다. ISO/TC223 재난관리 총회는 지난 2006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0개국 68명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회의를 연 이후 2008년까지 총 6회에 걸쳐 열렸다.

	ISO/TC223에 「국제사회안전」에 대한 표준을 만들고 있다.

특히 제5차 총회는 한국대표인 한국BCP협회 정영환 부회장이 한국유치 노력에 힘입어 2008년 5월20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서울에서 개최됐으며 무려 52개국에서 15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바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 자국 ‘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해 운영 중인 방재선진국도 ‘국제재난관리표준(ISO/TC223: Societal Security)’ 제정에 적극적 동참해 왔다. 이 같은 국제적인 활동에 힘입어 지난 2008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 ‘국제사회안전표준’으로 ‘ISO22399’이 제정됐다.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이렇게 제정된 국제표준의 한글화 작업을 거쳐 ‘KS A ISO/PAS22399’를 우리나라 국가표준으로 고시하게 된 것이다. 스웨덴 비상관리사무국의 상임고문이며 ISO/TC223 의장인 크리스터 쿰린(Krister Kumlin)은 “표준화된 (의사소통)채널은 위기관리에 있어서 대응 시 리드타임을 줄일 수 있으며 유관부서 협력을 간소화시켜 줌으로써 역량집중에 효과적”이라며 “앞으로 국가간은 물론이고 글로벌회사와 감독기구, 기관 간에 더 많은 정보와 데이터 교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의 표준으로 제정된 것에 축하를 한다” 며 “사회안전표준의 선두국가가 될수있기를 희망하는 메세지를 보낸다”고 전해왔다.

	기술표준원 고시문

부처간 갈등 해소가 관건
한편, 행정안전부가 지난 2008년 10월17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며 ‘국가재난관리표준’과 ‘기업재난관리표준’을 각각 새로 만들고 ‘국가재난관리표준화’와 ‘기업재난관리표준화’ 관련 근거 규정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국가표준의 혼선 또는 이미 제정된 국가표준이 올바르게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핵심과제로 선정된 ‘통합적 재난안전관리 체계 구축’ 과제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 4월 행정안전부 내에 설치된 ‘통합적재난안전관리체계구축기획단’이 추진 중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거쳐 지난 12월4일 법제처 심사를 통과한 후 12일 차관회의와 16일 국무회의를 초고속으로 통과한 상태이다. 이 법안은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실을 거쳐 정부안으로 확정된 후 국회에 상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법제처 심사를 요청할 때는 정부 부처간 협의와 조율을 끝낸 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에서 지적한 부분에 대한 협의와 조율 없이 법제처 심사요청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지식경제부와 행정안전부가 각을 세웠던 부분은 ‘표준’이란 용어이다. ‘통합적 재난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반이 ‘표준’ 인데 입법예고 때는 ‘표준’이란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발이 일자 ‘표준’을 ‘기준’으로 바꿔서 관련 법 개정을 강행한 것이다.

행안부와 소방방제청 관계자들은 “행정안전부뿐만 아니라 소방방재청에서도 ‘표준’에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지금에 와서 ‘표준’이라는 용어를 ‘기준’으로 바꾼 것은 법의 테두리를 잠깐 빗겨가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용어를 말장난하듯 바꿔서 법안을 통과시킨 후 원 목적대로 활용한다면 국가차원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본지 11월, 12월호 참조)

WTO/TBT 협정 위반 우려

	ISO/TC223 회의모습

WTO/TBT협정을 맺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제적인 표준이 이미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의 국가표준도 고시된 상황에서 또 다른 국가표준을 만든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야기 시킬 수 있음은 물론 향후 국제적인 마찰까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무역상 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이란 기술규정, 표준 및 적합성 평가절차 등이 국가간의 교역에 불필요한 장애요인을 형성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여기서 적합성 평가절차란 특정시스템이 이미 설정된 기술규정이나 표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무역의 자유화, 세계화로 관세부과와 수입수량제한 등과 같은 전통적인 무역장벽은 감축, 철폐되어 가고 있으나, 기술규정, 표준, 적합성평가절차 등의 기술장벽 관련규제가 주요한 비관세장벽(NTB)으로 점차 부각되고 있다.

특히 유럽 등 선진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자국민의 안전과 보건, 환경보호 등 삶의 질적 향상에 높은 관심을 가지며 이런 분야에 대한 기술장벽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WTO/TBT 협정에서는 새로운 기술규정을 도입할 때 관련 국제표준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국제표준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국가표준의 국제표준과의 일치와 조화를 통해 국가간 표준 차이로 인한 불필요한 무역장벽을 해소하고 방지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 필요가
이 협정이 지금 당장은 피부에 와 닺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관련 분야의 산업이 육성된다면 분명 큰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국제표준을 국가표준으로 제정했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면 간단한 것을 굳이 별도의 또 다른 국가표준을 만들어 이미 있는 표준과의 마찰 또는 어느 한쪽의 사장을 조장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SR연구회 세미나 모습

더불어 향후 관련 산업의 육성에도 세계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 시점에서 미래에 공조 및 수출 장벽이 될 수 있는 조항을 무시하고 진행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기업의 가치와 세계화를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일례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 기업을 평가하고 이를 투자에 반영하는 사회책임투자(SRI) 기법이 국내에서도 주목받으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SRI는 어떤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의 재무적 성과 외에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정보까지 파악함으로서 책임 있는 투자를 하겠다는 6개항의 원칙이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 네덜란드공무원연금(ABP), 미츠비시UFJ 등 대형금융기관과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FI), 유엔지구협약(UN Global Compact)이 SRI의 발표와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농협CA자산운용, 미래에셋, 알리안츠, SH자산운용 등 자산운용사와 서스틴베스트, 솔라빌러티, 에코프론티어 등 조사회사, 사모펀드회사인 아크투자자문 등 8개사가 UN SRI 서명기관으로 등록돼 있으며 최근에는 국민연금공단이 이에 합류할 것을 밝혔다. 현재 ISO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SRI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이를 실행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 가업의 가치평가는 물론 투자 유치 및 투자처 선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사)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사장 김영호)이 산하에 SR연구회를 출범시키고 매월 1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 국내 주요기업들을 위시해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와 한겨레경제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SRI가 기업가치 평가와 세계화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며 이 같은 맥락에서 사회안전, 즉 재난안전관리에 대한 국제표준의 중요성과 준수의 필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표준과 국가표준의 조화
ISO/TC223 총회에서 미국, 영국, 독일, 싱가폴 대표들과 협의한 결과 ISO 표준 제정에 맞춰 미국은 ANSI/NFPA1600 규정을 도입키로 했으며 독일은 ISO/PAS22399를 기준으로 사회안전 자국표준을 준비 중이다. 영국도 BS25999를 ISO 규격에 맞는 자국 표준으로 개정할 뜻을 밝혔다. 특히 싱가폴은 이미 국가재난표준 준비를 완료했으나 ISO/22399 제정에 따라 국제표준에 부합하도록 바꿀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에는 국가재난안전관리표준과 기업재난관리표준을 따로 만드는 것으로 돼 있다.

ISO에서는 국가재난관리표준과 기업재난관리표준을 분리할 수 없다고 판단해 같이 적용,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만 국제적인 재난안전관련 표준 제정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담당 공무원은 “국제재난관리표준은 이미 제정돼 있기 때문에 국가재난관리표준은 국제재난관리표준을 따라야 하고 독자적으로 국가재난관리표준을 제정하는 것은 WTO/TBT 협정에 위반하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목표인 신발전체계 구축 달성을 위한 실천전략 중 글로벌스탠다드(국재표준)와 내셔널스탠다드(국가표준)의 조화에도 어긋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ISO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52여개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모여 재난관리 국제표준을 개발하고 있다”며 “서남아시아 쓰나미 발생 후 발표된 분석보고서에는 ‘국제구호에서의 국가간 조직간 효율적 협력’, ‘재난정보 전달 및 경보체계’, ‘재난관리 요소기술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자는 취지에서 국제재난관리표준이 제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렬 위원 역시 “이젠 제정된 국제기준의 국가표준을 통해 보다 확고하고 안정된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더 이상 부처간 이해관계에 따른 논쟁은 없어야 할 것이며 행후 세부 규정과 이에 따른 체계 및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SO/TC223 전문위원회 위원인 동국대학교 정덕훈 교수도 “국가표준이 제정된 만큼 하루 빨리 정부와 민간의 전문가 그룹을 형성해서 세부사항들을 알차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울러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주도를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시장논리를 바탕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가표준기본법 제20조 제2항에는 ‘정부는 국가표준을 제정할 때에는 국가표준이 있는 경우 가급적 이를 반영해야하며 새로운 표준을 제정한 때에는 제정 내용을 WTO에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한 국가표준기본법 제20조 제3항에는 ‘지식경제부장관은 관련 법률 및 규정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국가표준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며 신속한 대 국민 정보제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번 기술표준원 국가표준 고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또 어떤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