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가 15일 실탄사격장 화재로 숨진 일본인 관광객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을 방문해 유가족에게 유감의 뜻을 표하고 있다.

11월24일 현재 일본인 관광객 8명을 포함해 12명이 목숨을 잃은 부산 실내 사격장 화재에 대해 일본에선 한국의 허술한 방재시스템을 꼬집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 사건은 피해자 가운데 일본인 관광객이 다수라는 점에서 일본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일본의 주요 언론은 “한국의 안전·방재 시설이 미비해 참사가 일어났다”며 한국의 방재 시스템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안전 불감증’을 꼬집는 분위기다. <요미우리신문>은 16일자 기사에서 15일 사고 현장을 찾은 일본인 유족들은 한국 경찰로부터 화재 경위 등을 듣고 난 뒤 “비상구는 하나 밖에 없는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화재로 아들 오쿠보 아키라(37)씨를 잃은 오쿠보 신이치(64)씨가 사망자 주검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을 찾은 허남식 부산시장에게 “앞으로 안전 대책을 잘 부탁드린다”고 호소하면서 쓰러져 울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특히 “한국의 언론들은 안전 대책 미비를 지적하는 일본 언론 보도를 소개하고 있다”며 “일부 방송은 일본은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비판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는 등 한국에 대한 인상 악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건축을 방화 대책이나 소방 시설보다 우선시하는 한국 실정을 자세히 설명한 경우도 있었다. <마이니치신문>은 16일 ‘클로즈 업 2009：한국·부산사격장화재 방화대책, 방치’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한국의 방재체제가 일본에 비해 너무 허술하다고 꼬집었다. 이 기사에서 <마이니치신문>은 “부산 사격장 화재 참사의 원인으로 방화·피난 체제의 미비가 지적되고 있다”며 “화재가 일어난 실내 사격장은 방음을 위한 밀폐 구조임에도 비상구·스프링클러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기사는 한 일본 재난관리 전문가의 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소방법은 차이가 거의 없지만 운용이 다른데, 한국은 소방보다 건축을 중시하는 경향이 일본보다 강하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선 건물을 지을 때 소방서의 동의가 매우 중요하며 소방을 위해 건물 구조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한국에선 소방이 어디까지나 건축의 뒤를 좇는 인상이 짙다는 게 일본 재난관리 전문가의 지적이다. 또 이 전문가는 2003년 2월 일어나 약 200명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화재’를 예로 들면서 “당시에도 교통·건설과 소방 담당자의 제휴 관계가 좋지 않음을 느꼈었다”고 말했다.

‘대구 지하철 화재’ 때도 “피난로와 방화구획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 피해를 확대시킨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특히 <마이니치신문>은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을 매일 몇 꼭지씩 게재하면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17일에는 ‘부산 사격장 화재여행은 안전해야만’이란 사설을 통해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꼬집었다. 이 사설은 “부산 사격장 사건으로 해외여행에서 필수인 ‘안전’이 무너져 버렸다. 한일 양국에 통한의 사태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주요 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 비극을 국가적인 치욕으로 파악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을 요구했다. 양심적인 대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우리 언론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화재 원인이 무엇이든, 원래 점포가 밀집해 소방차도 접근하기 어려운 번화가 빌딩에 실탄 사격장 설치를 허가한 것은 적절한가. 화재 시 피난 대책은 충분했던가. 2006년에는 서울의 실내 사격장에서 일본인 3명을 포함한 손님 7명이 부상하고, 종업원 1명이 사망하는 화재가 있었다고 하지만, 교훈은 활용되었는가. 차례차례로 의문이 솟는다.

한국 미디어의 지적대로, 안전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지 아닐까”라면서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또 “일본에서 총기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고 실탄 사격장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선 실탄 사격장이 합법인 이상 ‘비일상’을 즐기려는 관광객을 나무랄 순 없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고 가능성을 완전하게 배제할 수 없다. 역시 해외에서는 ‘조심 후에도 조심을’이란 말처럼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며 한국 관광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부산 사격장 화재 사고를 보도한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은 19일자 기사에서도 “국제시장에 있는 실탄사격장에서 일어나 일본 관광객을 포함해 16명이 사상한 화재로, 실내 사격장의 방화·피난 체제의 미비가 지적되고 있다”며 “비상구의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것 등에 대해 법을 정비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소방법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신문은 “한국의 실내 사격장 규정은 방음이나 방탄 대책에 중점을 둬 밀실성이 높은 구조여서 비상구나 스프링클러의 설치는 의무화되지 않고, 법률로 흡연도 금지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스프링클러와 감시 카메라 설치, 사격장 안에서 인화성 물질 사용 금지 등의 의무화를 경찰청이나 관련 기관에 건의하기로 했다”면서 국내 동향을 소개했다. <아사히신문>도 15일자 기사에서 “양산 부산대병원을 찾아 부상자를 문병하고 유가족에게 유감을 표시한 정운찬 총리에게 일본에서 온 한 남성이 ‘내 아이는 한국에 오는 것을 정말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대책을 세워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장면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