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Pandemic)이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모든’이란 뜻의 ‘Pan’과 ‘사람’을 의미하는 ‘Demos’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범유행(汎流行)을 뜻하는 단어로 어떤 감염병이나 전염병이 규모가 커져 세계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다. 최근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A(H1N1)가 바로 팬데믹이다. 신종플루로 인해 사회분위기가 뒤숭숭한 요즘 이렇게 전염병에서 오는 공포를 소재로 한 ‘팬데믹 영화’ 3선을 꼽아봤다.

< 재난포커스 - 김수한 기자  ins@di-focus.com >

팬데믹 영화하면 가장 먼저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의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를 꼽을 수 있다.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과 르네 루소(Rene Russo), 모간 프리먼(Morgan Freeman)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아웃브레이크는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를 소재로 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유행성 출혈열 증세를 보이고 혈관을 통해 모든 장기에 이동, 장애를 일으키며 출혈과 함께 감염 후 일주일 이내에 90%의 치사율을 보이는 괴질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 바이러스는 실제로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 등에서 발병해 420명의 사망자를 냈고, 또 1995년에도 콩고민주공화국의 키크위트 지방에서 집단으로 집단 발병해 164명의 사망자를 낸 바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아웃브레이크’
영화에서 닥터 샘 다니엘즈 육군 대령(더스틴 호프만)은 국방부 소속으로 전염병예방통제 센터(CDC)에 파견돼 근무하던 중 빌리 포드 준장(모건 프리만)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치명적 전염병이 돌고 있는 아프리카 자이르(Zaire) 우림 지대의 오지에 들어가 이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샘은 자이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보다 심각한 모타바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되고 이 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에 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정부 각료에게 비상조치를 취해줄 것을 경고한다.

한편 자이르에 있던 감염된 원숭이 한 마리가 실험용 동물로 잡혀오던 중 북캘리포니아의 시더 크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풀려난다. 원숭이와 접촉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샘은 상부에 이를 경고하지만 계속 거절당하자 명령을 어기고 군대를 동원해 봉쇄된 시더 크릭으로 향한다.

샘은 군부가 30년전 모타바 바이러스를 추출, 생물학적 무기로 개발해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무기의 보안을 위해 사용치 않고 숨겨온 것을 알고 분노한다. 더구나 이번엔 변형 모타바 바이러스가 출현해 자신들의 무기가 무력화되는 것에 염려한 맥클린토크 소장은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비핵무기 중 가장 화력이 센 무기로 시더 크릭 마을 사람들과 바이러스를 함께 증발시키려 한다.

팬데믹 좀비영화, ‘28일 후’
아웃브레이크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부와 의료진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의 영화 ‘28일후’는 전염병에 감염된 감염자를 좀비로 표현해 비현실적 측면이 강한 팬데믹 영화다. 하지만 영화에서 좀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실에서 정상인이 신종플루 확진환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는 감염자를 무서운 존재로 부각시켜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가시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들을 동물권리운동가들이 풀어주면서 바이러스가 유출된 28일 후,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던 짐(실리언 머피)이 런던의 한 병원에서 깨어난다. 텅 빈 거리와 겹겹이 쌓여있는 시체 더미에 경악하던 짐은 감염자 무리에게 쫓기다 또 다른 생존자 셀레나(나오미 해리스)와 마크(노아 헌틀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그들로부터 영국을 완전 황폐화 시킨 후 전 세계로 퍼진 바이러스의 재앙을 알게 된 짐은 혹시라도 무사할지 모를 가족을 찾아 갔다가 오히려 감염자의 공격을 받고 마크를 잃는다. 또 다시 은신처를 찾아 방황하던 짐과 셀레나는 어느 빌딩에서 프랭크와 해나 부녀를 만나고 그곳에서 생존자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무장 군인의 방송을 듣는다. 이에 마지막 희망을 건 네 사람은 헨리 소령을 찾아 맨체스터로 향한다.

인류의 99%가 바이러스로 사망한 미래, ‘12몽키즈’
정상인 보다 감염자나 사망자가 더 많은 영화 속 현실은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감독의 영화 ‘12몽키즈’에서도 이어진다. 12몽키즈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인류의 99%가 멸망한 서기2035년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다.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후 소수의 생존자들은 지상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지하세계에서 생활하게 된다. 감옥에 수감돼 있는 제임스 콜(브루스 윌리스)은 자원 임무를 띠고 지상으로 나가게 되고 12몽키즈란 단체의 마크를 보게 된다.

탐사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제임스에게 과학자들은 인류의 지상회복을 도와준다면 완전 사면을 해주겠다고 제의한다. 결국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1996년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어떤 착오로 인해 1990년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경찰을 부상 입히는 등 말썽을 피워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그는 곧 인류가 바이러스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고 설득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또 제임스와 같은 병동에 수감돼 있는 제프리 고인즈(브래드 피트)는 부친이 유명한 바이러스 연구학자로 아버지에게 연락이 닿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TV를 통해 인간들의 폭력을 본 제임스는 혼잣말로 인류가 멸망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하자 제프리는 그에 동조하며 인류는 바이러스 같은 것으로 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임스는 제프리의 도움으로 탈주하지만 다시 붙잡혀 감옥에 수감 도중 미래로 돌아간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자료를 통해 제프리가 12몽키즈라는 단체의 주요 인물임을 알아내 제임스는 다시 1996년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실수로 1910년대의 프랑스 전쟁터로 떨어져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세 영화 속 바이러스는 현실과 같이 공기나 사람의 체액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인간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궁지까지 몰아 공포감을 유발한다.

또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원인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이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공포감을 더한다. 실제 신종플루의 감염경로도 공기나 사람의 체액으로 감염되고,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서 변종플루가 나타났다는 보도로 인해 변종출현가능성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논란이 불거졌다. 팬데믹 영화는 이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이 인류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그와 더불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생겨나게 됐다.

인류는 이런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항생체를 만들어 내고, 이는 또 다른 바이러스의 변종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나의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쳇바퀴 돌듯 되풀이되는 이 프로세스를 우리는 알고 있다. 바이러스를 걱정하며 인류가 자신이 만든 산물에 자멸하는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