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의 효시로 알려진 지중해 ‘크레타 문명’. 크노소스 궁전으로 유명한 크레타 문명은 그리스 최대섬인 크레타 섬에서 기원전 2000년께부터 기원전 1400년께까지 번영했다.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한 고고학자가 미노스왕의 이름을 따 이름 지은 미노아(미노스) 문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유럽 최초의 거대문명인 크레타는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다가 멸망하고 말았다. 무엇이 크레타 문명을 멸망으로 이끌었나?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크레타는 한 때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지역을 장악했던 무역 강국이었다. 무역 중심지여서 최대 부국이기도 했던 크레타의 화려한 생활상은 크노소스 궁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크노소스 궁전은 당시 유럽 최대의 건축물로 창고엔 온갖 보물로 가득했고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게다가 호사스러운 목욕탕에 유럽 최초의 포장도로와 상하수도라는 사치를 누렸다. 크레타 수도 크노소스 항구는 온갖 배들이 모여드는 무역 중심지였다. 값비싼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화려한 무늬의 항아리에 담아 에게 해 주변은 물론 이집트, 시리아 등으로도 수출했다. 크레타 왕국은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드넓은 무역 국가를 지배했고 해군은 천하무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리스 본토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지진 때문인가? 화산 폭발 때문인가?
크레타 문명이 멸망한 뒤 처음으로 크노소스 궁전을 발견한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는, 궁전을 발굴하면서 한 방에서 천재지변으로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숨진 듯 보이는 주검을 찾아냈다. 그 방에는 기름 그릇이 거꾸로 넘어져 있었다. 이에 에번스는 지진이 발생해 크노소스 궁전이 파괴된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건을 겪었다. 1926년 6월26일 크노소스 궁전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멈춘 뒤 에번스가 밖으로 나가자 궁전은 말짱했지만 근처 마을은 폐허로 변해있었다. 이후 에번스는 거대한 크노소스 궁전이 지진으로 무너졌다는 믿음을 굳혔다. 그러나 1939년 새로운 주장이 등장했다. 크레타 문명 멸망의 원인은 지진이 아니라 화산 폭발 때문이란 주장이다. 그리스의 젊은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는 크레타 섬 북쪽에 자리한 테라(현재 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이 크레타 문명을 멸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로 쓰나미가 발생해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면서 크라카타우 화산의 4배가 넘는 규모인 테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쓰나미가 크레타를 휩쓸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1967년 마리나토스는 산토리니를 발굴해 용암과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크레타 왕국과 같은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를 찾아냈다. 3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에서 벽화와 생활용품이 많이 출토돼 크레타 문명은 테라 화산 폭발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뒤 그리스에 정복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화산재와 쓰나미만으론 부족하다?
영국 <BBC>는 얼마 전 ‘미노아 문명의 수수께끼(Mystery of the Minoans)’란 다큐멘터리를 통해 크레타 문명이 멸망한 원인을 풀어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 레타 문명이 3500년 전(기원전 1500년께) 테라 화산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뒤 그리스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미노아 문명의 수수께끼는 미국의 지질학자 플로이드 맥코이를 통해 크레타 문명 멸망 원인을 추적해간다.
화산섬 하와이에서 태어나 화산을 보고 자라 지질학자가 된 플로이드 맥코이는 수십년 전부터 크레타 문명이 남긴 폐허에 매료됐다. 그는 크레타 멸망의 원인이 화산 폭발 때문이라고 확신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증거들을 찾는다. 맥코이는 세계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증거를 찾아내 퍼즐을 맞춘다. 그는 먼저 크레타 섬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산토리니 섬을 찾아 3500년 전 미노아 문명 전성기에 폭발해 테라 섬을 조각내 버린 화산의 위력을 확인한다.
3500년 전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역사에 남을 만큼 위력이 컸다. 화산 분출로 섬 중심이 떨어져 나갔고 섬 가운데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지금은 섬 둘레만 남아서 목걸이처럼 넓은 분화구(칼데라)를 둘러싸고 있다. 칼데라는 바닷물로 채워졌다. 맥코이는 화산재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맥코이에 따르면, 테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화산재가 크레타 섬을 뒤덮고 부석이 맹렬히 쏟아졌다. 뒤를 이어 고온의 분진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게다가 화산 폭발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해 크레타 해안을 덮쳤다는 마리나토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도 발견된다. 세계 각지를 돌며 쓰나미를 연구하는 코스타 시놀라스키는 쓰나미의 파괴력을 조사한다. 크레타 섬에서 자란 그는 자신이 개발한 쓰나미 측정 프로그램을 통해 테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3m 높이의 파도가 크레타 북쪽 해안을 강타해 큰 피해를 입혔다고 분석했다.
특히 입구가 좁은 크레타 북쪽 만에 파도가 갇히면서 피해는 배가된다. 처음 밀려온 파도뿐 아니라 안에 갇힌 파도에 의해 피해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도는 강을 타고 역류해 들어가 강 주위에 홍수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염분으로 땅도 피해를 입고 강기슭 창고에 저장된 식량이 못 쓰게 된다. 맥코이는 이제 쓰나미가 크레타 문명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음을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쓰나미가 문명 전체를 쓸어버릴 만큼 위력적이진 않다.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후변화다
영국 지질학자 스티브 스팍스는 산토리니 칼데라를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 새로운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테라 화산 폭발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두 배가 큰 규모였다는 것이다. 그는 테라 화산 폭발이 지난 1만년 사이에 두 번째로 큰 분화였다고 주장한다. 테라 화산 폭발로 70㎦에 달하는 엄청난 화산재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재는 더 파괴적인 요소를 동반한다.
화산가스 특히,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다. 이산화황이 무서운 건 기후를 바꾸기 때문이다. 스팍스에 따르면, 3500년 전 테라 화산 폭발은, 1815년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과 비슷한 규모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지난 1만년 사이에 발생한 화산 폭발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탐보라 화산 폭발한 뒤 몇 년간 지구 기후가 바뀌었다. 특히 화산 폭발 다음해엔 여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해 영국과 독일 등에선 농작물이 자라질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기후학자 마이크 램피노는 화산 폭발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형 화산이 폭발하면 많은 재와 함께 이산화황을 대기 중으로 쏟아낸다. 심한 경우 30여㎞ 높이까지 상승한다. 그리고 작은 황산방울로 바뀌어 덮개처럼 작용하면서 지표를 데우고 햇빛을 가린다. 지표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램피노는 스팍스의 새로운 추정치를 이용해 화산 폭발로 생성된 이산화황의 양을 컴퓨터에 입력해 기후변화 정도를 예측했다.
기후변화를 예측해보니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나 지역은 섭씨 1~2도 정도 낮아진 것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램피노는 “1~2도 낮아지는 게 별 것 아닌 거 같아도 이는 연평균 하강 수치다. 농작물에 가장 중요한 여름철 기온은 평균보다 훨씬 더 낮아진다는 뜻이다. 당시 여름은 특히 서늘하고 비가 많았을 테니 그에 따라 작황도 타격이 컷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흉년으로 쇠퇴
기후변화 증거는 아일랜드 토탄 습지에 있는 나무 박편들을 통해 확인된다. 나무 박편들을 분석하면 7000년이 넘는 기후 역사를 알 수 있다. 나무는 매년 나이테가 새로 생긴다. 살기 편했던 해에는 테가 두꺼워지고 팍팍했던 해에는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가늘어진다. 마이크 베일리가 측정한 아일랜드 오크나무 샘플 하나는 300년쯤 살다가 토탄 습지에 묻혔는데,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3500년쯤 산 셈이다. 측정해보니 기원전 1628년까지 매우 잘 자랐는데, 1627년부터 10년간 여름에 생장이 없었다.
베일리는 “나무의 전 생애에서 나이테가 가장 가는 부분이다. 틀림없이 나무가 살면서 이 시기에 가장 나쁜 생존 환경을 만났다는 증거다. 나무가 정확한 사정을 말해주진 않지만 이 시기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거나 강우량이 크게 증가했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에 따른 결과라고 보는 게 이치에 맞다. 토탄 습지에서 강우는 습지에 사는 나무뿌리를 잠기게 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테라 화산 폭발이 아일랜드 오크나무 생장을 방해했다는 증거는 그린란드 얼음층에서 발견됐다.
그린란드 얼음층은 해마다 쌓인 눈으로 수천년 동안 커졌다. 눈은 땅위로 내리면서 대기 중 부유물을 쓸어 얼음 속에 가둔다. 화산 분출물에 들어있던 이산화황도 얼음 속에 황산으로 갇히게 된다. 3500년 전 내린 눈은 오늘날 700m 깊이의 얼음이다. 덴마크 과학자들은 그곳 얼음을 조사해 황산층을 찾아냈다. 그 황산층엔 화산재 찌꺼기도 있었다. 과학자들은 그 화산재가 테라 화산에서 나온 것으로 믿고 있다. 미노아 문명의 수수께끼의 결론은 결국 화산 폭발이 기후를 변화시켜 흉년을 불렀다는 것이다.
크레타 문명은 테라 화산 폭발 뒤에도 50년이 더 유지됐다. 화산 폭발이 크레타 문명 자체를 멸망시켰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화산 폭발로 엄청난 타격을 입어 50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그리스군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테라 화산 폭발 이전 크레타는 매우 엄격한 신분질서를 유지하며 크게 번성했다. 하지만, 테라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와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고, 갑자기 기후가 바뀌며 흉년이 이어져 사회가 어지럽게 변했다. 신분질서가 파괴되고, 종교도 혼란해졌다. 특히 호화로운 크로노스의 신성권력을 불신하는 등 사회분열을 일으키며 서서히 몰락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