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번개의 여신’의 침입으로 한반도가 공포에 떨었다. 지난 8월8일 밤 9시께 대만 동남동쪽 약 400㎞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제4호 태풍 ‘뎬무’가 11일 새벽 한반도에 상륙했다. 태풍 ‘뎬무’는 이날 오후 동해상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전남·경남·부산 등 남부 해안지역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태풍이 한반도에 내습한 것은 태풍 ‘나리’ 이후 3년 만이다. 중국에서 제출한 태풍이름으로 천둥과 번개를 관장하는 여신을 이르는 ‘뎬무’는 10일 제주도를 휩쓴 뒤 11일 새벽 5시께 전남 고흥반도 남쪽에 상륙했다. 이 태풍은 한반도에 상륙한 뒤 남부 해안지역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11일 오후 1시50분께 울산 방어진 동쪽 5㎞ 해상으로 진출하며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중대본 구성…비상대응체계 가동
태풍 ‘뎬무’ 발생 직후부터 국내 재난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발생하자마자 한반도를 향해 곧바로 북진했기 때문이다. 9일 오전 기상청은 태풍 ‘뎬무’가 북상중이며, 한반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음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맹형규 행안부 장관)는 8월9일 오후 6시 1단계 비상근무에 돌입하면서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이 주재한 태풍 ‘뎬무’ 대비 상황판단회의를 개최했다. 같은 날 박 청장 지시에 따라 시도별 태풍대비 현지 긴급대책회의가 개최됐는데, 4대강 공사장 관련 대구·광주·전남·경북·경남 5개 시도에서 열린 회의는 소방방재청 과장이 주재했다고 한다.

이튿날 오전 8시 비상단계 2단계 선포와 함께 범정부 차원의 중대본이 꾸려지고 직접적인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주도와 전남, 경남지역에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는 등 비상대응체계가 가동됐다. 중대본에선 재난관리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을 중심으로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 방송통통신위원회, 국방부, 기상청 등에서 파견된 28명이 근무했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10일 오후 2시30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층 중앙재난위기상황실을 찾았다. 맹 장관은 재난상황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각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와 화상회의를 통해 태풍대응상황을 점검하고, 상황실 근무자들에게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조해 태풍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예방조치를 빈틈없이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맹 장관은 이날 밤 9시 30분에도 상황실을 찾아 피해상황과 대응태세를 챙겼다.

중대본은 10일 오전 태풍영향권 지역에 5개 반 10명의 현장상황관리관을 파견하기도 했다. 부산·대구·광주·울산·전남·경북·경남 등 8개 시도에 파견된 현장상황관리관들은 18개 위험지구에 대한 통제 및 홍보상황 등을 현장 확인했다. 이와 함께 이날 8시부터 중앙긴급구조통제단 운영을 시작하면서 태풍 영향권 내 9개 시·도 소방관서장 정위치 근무, 피해우려지역 순찰 등을 지시했다고 중대본 쪽은 밝혔다.

피해 경미…인명피해 ‘없음’
3년 만에 한반도에 상륙한 제4호 태풍 ‘뎬무’로 인한 피해는 경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본 발표에 따르면, 인명피해는 없으며, 이재민 120세대 331명, 주택침수 139동, 농작물 침수 25.4㏊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다만, 개인부주의에 의한 안전사고로 3명이 사망했다고 중대본은 밝혔다.

안전사고 사망자 3명은 10일 서울과 경기 일부지역에 퍼부은 국지성 집중호우로 서울 은평구에서 북한산 등산객 2명과, 불광천 둔치 하부도로에서 1명이 숨진 사건을 뜻한다. 그밖에 11일 경남 남해 국도공사장에서 1명, 부산 수영구 광안리에서 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또한 인명피해에 포함되지 않았다.

11일 오전 11시 발표한 태풍 ‘뎬무’ 대처상황 보고에서 중대본은 안전사고로 추정되는 인명피해 5명(사망)이 발생해 원인을 조사중이라고 했으나 같은 날 오후 4시 발표부터 개인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로 추정되는 인명피해 3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11시 발표부터 인명피해 없음으로 바뀌었다.

피해 집계 업무를 맡은 소방방재청 복구지원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고 발생 뒤 자치단체 재난관리 담당자와 경찰 등이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태풍에 의한 피해라기보다 개인부주의에 의한 안전사고로 밝혀져 인명피해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 은평구에서 발생한 3건은 안전사고로 집계됐으나 부산 수영구와 경남 남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재난포커스>가 부산 수영구 재난관리과에 확인해보니 광안리 방파제에서 발생한 부산 모 방송사 기자 사망사고는 “태풍 ‘뎬무’ 접근 전에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카메라를 바다에 빠트려 이를 건지려다 일어난 사고”란 대답이 돌아왔다. “태풍으로 인한 강풍이나 파도와 관련 없이 실수로 인한 안전사고였다”는 것이다. 경남 남해 국도공사장에서 승용차 운전자가 차량과 함께 도로 옆 바다로 추락해 숨진 사고도 이와 유사한 경우여서 인명피해 집계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보다 피해 적은 이유는
발생 직후 곧바로 북상한 태풍 ‘뎬무’는 한반도를 관통한 탓에 큰 피해가 예상됐으나 우려와 달리 피해가 크지 않았다. 3년 전 상륙한 태풍 ‘나리’가 제주도를 거쳐 고흥반도에 상륙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데에 견주면, 비슷한 경로를 보인 태풍 ‘뎬무’의 피해는 매우 경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태풍 ‘나리’는 2007년 9월16일 북상하면서 제주도에 420㎜에 이르는 폭우를 퍼부었고 남해안지역을 통과하며 인명피해(사망) 16명, 이재민 1만4000여명 등을 발생시켰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태풍 ‘뎬무’가 “대만 동쪽 고위도 해상에서 발생해 바로 북상했기 때문에 해상으로부터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 비교적 약하고 소형”인 상태로 한반도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서태평양 한 가운데 저위도에서 발생해 오랫동안 따뜻한 바다를 지나면서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았던 태풍 ‘나리’에 비해 힘이 약했다는 것이다.

태풍 ‘뎬무’ 발생 직후에도 기상청은 “중심기압 990hPa(헥토파스칼), 최대풍속은 초속 24m 약한 소형 태풍으로 동중국해 해수면온도가 28℃로 높지만 전체적인 바다의 열용량이 작기 때문에 발달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일부에선 태풍 ‘뎬무’가 한반도에 상륙하기에 앞서 중심기압 980hPa, 최대풍속 초속 31m의 중형으로 발달해 우려를 했으나, 11일 새벽 고흥반도 상륙과 함께 힘이 약해져 이날 이른 오후 울산 방어진 동쪽 해상으로 빠져나갔다.

태풍 ‘뎬무’의 영향으로 8월10~11일 제주 서귀포(진달래밭) 642.5㎜를 비롯해 산청(지리산) 422.0㎜, 광양(백운산) 282.0㎜, 합천(가야산) 263.5㎜, 하동(화개) 253.5㎜, 남원(뱀사골) 252.0㎜, 경주(토함산) 198.0㎜ 등 남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반면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지 않았던 중부지방은 강수량이 적었다. 특히 올해 강수량이 적은 강원지역의 경우 강릉 13.5㎜, 속초 10.5㎜, 영월 39.5㎜ 등에 그쳐 가뭄 해소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한편, 기상청은 제4호 태풍 ‘뎬무’에 이어 9월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이 더 찾아올 수 있음을 예상했다. 이에 따라 태풍 ‘뎬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재난관리체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하는 일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