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뛰어난 애니메이션 영화 두 편이 잇따라 개봉됐다. 국내에서 8월5일 개봉한 <토이 스토리3>와 9월9일부터 상영되고 있는 <마루 밑 아리에티>가 그 주인공.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토이 스토리3>)과 일본(<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제작된 이 두 작품은 세계적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jjlee@di-focus.com >

무엇보다 <토이 스토리3>와 <마루 밑 아리에티>에 대한 관심은 최첨단 디지털 3D 애니메이션 대 전통 2D 셀 애니메이션의 맞대결이란 점에 집중됐다. <토이 스토리3>를 만든 미국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픽사)는 1995년 세계 최초로 풀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내놨다. 3D 애니메이션의 원조격인 셈이다. 반면 <마루 밑 아리에티> 제작사인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지브리)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종이에 그린 그림을 투명한 셀룰로이드에 옮겨 색깔을 입힌 뒤 배경 위에 놓고 촬영하는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와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가 없었으면 아이폰도 없었다.’ 전 세계에 스마트폰 붐을 일으킨 스마트폰의 원조 ‘아이폰’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3D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 시리즈 탄생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잡스는 애플의 창업자이면서 CEO로 활약하고 있지만, 한때 자신이 창업한 애플을 떠나 야인생활을 했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설립한 잡스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1985년 애플을 떠났다. 그는 1986년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사업부를 사들였다. 픽사가 출범한 배경이다. 잡스가 인수한 픽사는 약 10년 동안 별 볼 일 없는 고성능 그래픽 디자인용 컴퓨터 회사였다. 하지만 픽사는 1995년 말 ‘대박’을 터뜨렸다.

월드 디즈니 스튜디오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든 <토이 스토리>가 픽사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준 것이다. 1995년 11월22일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 나라에서 개봉된 <토이 스토리>는 미국에서만 1억9200만 달러, 미국 밖에선 3억57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 개봉 1주일 뒤 기업을 공개했다. 픽사의 주식 80%를 가지고 있던 잡스는 순식간에 떼돈을 벌었다.

<토이 스토리> 이후 픽사는 <벅스 라이프>(1998) <토이 스토리2>(1999) <몬스터 주식회사>(2001) <니모를 찾아서>(2003) 등을 연이어 히트시켰고, 3D 애니메이션의 대명사가 됐다.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7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픽사의 대주주 잡스는 디즈니 이사에 올랐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기에 앞서 1997년 잡스는 파산 위기에 놓인 애플 CEO로 돌아와 빼어난 리더십으로 애플을 되살렸다. 잡스가 이끄는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 디지털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6월18일 미국에서 개봉한 <토이 스토리3>는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완결판으로 ‘진정한 3D로 진화’ ‘3D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 등 온갖 찬사를 받았다. 흥행성적도 최고다. 8월29일까지 전 세계에서 10억 1212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이다. 국내에서도 개봉 2주 만에 전국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셀 애니메이션
‘아날로그 셀 애니메이션의 적통을 잇겠다.’ <마루 밑 아리에티> 제작사인 지브리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두 거장 미야자키 하아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작품 제작을 위해 1985년 설립됐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집 토토로>(1988) <붉은 돼지>(1992)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벼랑 위의 포뇨>(2008) 등을 지브리가 제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작품들이다.

특히 지브리하면 미야자키 하아오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지브리는 곧 미야자키 하아오로 통한다. 미야자키 하아오는 ‘애니메이션계의 대부’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브리 이사이자 간판스타인 미야자키 하아오는 컴퓨터 그래픽을 철저히 배제하고 수작업을 고수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지브리 작품들은 모두 손으로 그린 그림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나타내는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미야자키 하아오 작품들은 문화와 정신, 자연과 인간의 따뜻함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 속엔 동양적 정서와 철학이 깊게 배여 있다는 뜻이다. 이는 미야자키 하아오가 컴퓨터 그래픽을 싫어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브리 소속 후배 애니메이션 감독들도 대부분 미야자키 하아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픽사의 <토이 스토리>가 물꼬를 튼 뒤 3D 애니메이션이 대세를 이룬 영화계에서 지브리의 셀 애니메이션이 확고히 자리 잡은 데는 미야자키 하아오의 공이 크다.

<마루 밑 아리에티>처럼 서양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들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동양철학과 정서를 담고 있다. 영국의 여성작가 메리 노튼이 지은 <마루 밑 바로우어즈 The Borrowers>를 미야자키 하아오가 각색한 <마루 밑 아리에티>는 마루 밑 소인들이 인간들의 물건을 나눠 쓰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키가 10㎝밖에 안 되는 소녀 아리에티가 ‘인간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어기고 요양 온 인간 소년 쇼우와 만나 교감하는 내용을, 지브리의 자랑인 셀 애니메이션으로 따뜻하게 그려냈다.

지난 7월17일 일본에서 개봉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개봉 첫 주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영화관에 걸린 <토이 스토리3>를 누른 흥행기록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9월 말까지 약 100억 엔(약 1400억원)을 벌어들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 국한된 사례지만 수작업으로 만든 2D 셀 애니메이션이 화려한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자랑하는 3D 애니메이션과 맞대결을 벌여 승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