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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전쟁의 승부수, 박쥐 장기 배양으로 판 바꾼다”
2025년 05월 19일 (월) 00:59:55 이정직기자

글로벌 팬데믹, 더 이상 ‘만약’이 아니다. 이미 한 차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을 겪은 인류는 또 다른 바이러스의 습격을 기다리는 ‘불안한 평화’ 속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이자 ‘생물학적 블랙박스’로 불리는 박쥐를 실험실 안으로 끌어들인 한국 연구진의 성과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월 16일,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와 유전체 교정 연구단이 공동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박쥐 유사장기(오가노이드) 실험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가노이드란, 줄기세포를 배양해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모사한 3차원 유사 장기체를 말한다. 이번 연구는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시아에 서식하는 박쥐 5종(애기박쥐과·관박쥐과)에서 얻은 기도·폐·신장·소장 유사장기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세계 최초의 사례다. 이 장기들은 실제 박쥐 장기와 유사한 세포 구성과 기능을 갖추고 있어, 박쥐 유래 바이러스 연구에 있어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바이러스의 감염성과 면역반응이 박쥐의 종과 장기에 따라 명확히 달랐다는 점이다. 한타바이러스는 박쥐의 신장 오가노이드에서, 코로나와 인플루엔자는 폐 및 기도 유사장기에서 활발히 증식됐다. 이는 바이러스가 특정 장기에서만 강한 감염성을 보인다는 ‘장기 특이성’을 입증한 것으로, 감염병 초기 대응에 있어 유사장기 기반 감염 분석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또한, 박쥐 장기 오가노이드에 다양한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결과 선천성 면역반응의 양상도 종별·장기별로 극명히 달랐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는 '인터페론' 반응이 장기에 따라 제각기 다른 수준으로 발현된 것. 이는 박쥐가 여러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가 될 수 있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열쇠가 된다.

기존 배양법으로는 증식이 어려웠던 샤브 유사 변종 바이러스가 박쥐 유사장기에서는 효과적으로 증식됐다. 이는 박쥐 오가노이드가 실제 박쥐의 생체 환경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재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연구진은 이 플랫폼을 통해 변종 바이러스를 분리·분석하고, 항바이러스제(예: 렘데시비르)의 효과도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3차원 오가노이드를 2차원 세포층으로 개량, 대량 실험 및 약물 선별이 가능한 자동화된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이 기술은 향후 항바이러스제의 고속 스크리닝을 위한 핵심 실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박쥐에서 유래된 고위험 바이러스다. 박쥐는 그 특유의 면역 체계와 생태적 특성으로 인해, 수많은 신종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보관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박쥐 연구는 실제 생체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실험모형이 부족해 제약이 많았다. 이번에 구축된 플랫폼은 그러한 제약을 허무는 결정적 열쇠다. 박쥐 유래 바이러스의 증식·면역·전파 특성을 조기 분석하고, 약물 반응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감염병의 조기 차단과 신속 대응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도약이다.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최영기 소장은 “이번 플랫폼은 세계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향후 ‘박쥐 바이오뱅크’(생명체은행)로서 글로벌 감염병 연구자들에게 표준화된 실험 자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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