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올봄까지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사태는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재앙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지난 구제역으로 전국 6250개 농가의 소 15만800여마리, 돼지 331만7000여마리 등 모두 247만9000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매몰보상비에만 1조8000억원을 지원하는 등 구제역 발생 경비로 약 3조원을 쏟아 부었다.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고, 수많은 공무원이 순직하거나 병석에 누웠다. 하지만 살처분된 가축들이 매몰된 산과 들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2차 재앙이 본격화 되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6월 말이면 장마가 전국을 덮친다. 정부는 장마철을 앞두고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 문제가 언제 불거질지 노심초사하기만 하다.

<재난포커스 - 이정직 기자(jjlee@di-focus.com)>

여름철 장마, 태풍, 집중호우 등 자연재난의 계절이 시작됐다. 기상청은 지난 6월 10일 제주에서 장맛비가 시작돼 밤에는 남해안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보하면서 본격적인 장마철을 예보했다. 이는 평년보다 거의 열흘 정도 빠르게 장마가 오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이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재난이며, 그중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구제역 침출수다. 집중호우로 빗물이 매립지안으로 들어가면, 침출수가 불어나 주변 땅과 하천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으로 소, 돼지 등 가축을 매몰시킨 곳이 전국에 4200여 곳. 문제는 매립지 주변이 언덕 등 비탈이 져 있는 곳이 많아 비가오면 이들이 쓸려나가거나 무너지면서 침출수의 유출 가능성도 높아진다. 태풍이나 장마 때 많은 비가 내려 매몰지 시설물이 파손될 경우 빗물이 매몰지 안으로 스며들 수도 있다. 실례로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포천 등 매몰지 현장에서 이미 침출수 오염이 드러났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원일 의원 등이 일부 매립지를 분석한 결과, 포천의 경우 매립지 3곳이 모두 하천과 가까이 붙어 있어 인근 지하수와 하천이 침출수에 의해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계곡 양쪽 산비탈에 매몰지가 만들어진 안성 우성공원 역시 침출수에 의한 하천 오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기도 안성의 경우 총 213개 매몰지가 있으며,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한 매몰지도 15농가 10개 장소 28개에 해당한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안성천살리기 시민모임 등의 시민단체와 야 4당은 지난 5월 24일 현장방문과 대책 간담회를 열었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부와 안성시는 국제적으로도 유래없는 기준을 내세워 침출수 유출을 부인했다. 또 다른 피해지역인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일대 야산과 이곳에서 10여 분 떨어진 문백면 옥성리 지역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은 올 1월 150여 마리의 소와 염소, 돼지 1838마리가 매몰된 곳이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이 두 곳을 포함해 진천군 내 매몰지 3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가축 사체가 부패할 때 나오는 단백질과 펩타이드 등이 침출수 기준치보다 높게 나왔다고 발표했다. 2차 환경오염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여름철 높은 기온도 영향

이와함께 여름철 높은 기온도 영향을 끼친다. 김정규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사체가 부패할 때 자체적으로 열이 나는 데다 여름철 높은 기온으로 묻혀 있는 사체의 부패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패가 진행되면 땅속에 묻혀 있는 사체의 부피가 줄고 땅속에 빈 공간이 생긴다. 이로 인해 사체를 덮은 흙이 내려앉게 되고 매몰지 표면과 차수막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김 교수는 “여기에 비가 오면 웅덩이처럼 물이 고여 차수막을 파손시킬 수 있다”며 “때문에 정기적으로 매몰지에 함몰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고 흙이 내려앉은 곳은 흙을 추가로 쌓는 성토 작업이 필요한 실정”이라 강조했다. 또 “강풍에 차수막이 찢기거나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차수막 위에 모래자루 등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악취다. 날이 더우면 가스배출관을 통해 사체가 썩을 때 나오는 황화수소 암모니아 메틸메르캅탄 유기산유(단백질이 썩을 때 나오는 물질) 등이 더 많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악취를 막기 위해 유산균 등 유용미생물 발효액을 가스 또는 침출수 배출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투입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침출수 관리 주무부서인 환경부는 그동안 “구제역 파동 이후 침출수로 인해 지하수나 하천 등 수자원이 오염된 사례는 없다”고 밝혀왔다.

1월 경북 영주, 3월 충북 진천과 경기 이천에서 구제역 침출수 오염 의심 사례가 발생했을 때도 환경부는 한결같이 “오염된 것은 맞지만 침출수 때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환경부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정부의 가축 매몰지 관리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 지침을 보면 △암모니아 질소 △질산 질소 △염소이온 3개 지표 중 2개 항목 이상의 분석치가 기준치를 초과해 동반 상승한 경우 침출수 유출 영향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 “현재의 침출수 오염 기준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침출수 오염 기준은 완벽하지 않다”며 “오염 기준을 보완해 장마철 침출수 유출 시 신속히 오염 여부를 판단해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김정규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질산 질소, 암모니아 질소, 염소이온 중 두 가지 동반 상승은 환경부가 임의적으로 만든 편의사항”이라며 “매몰된 지점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검출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염소이온의 경우 초기 침출수에서 고농도로 검출된 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각 지표의 동반 상승에서 염소이온 수치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듯 침출수의 지하수 유입을 통한 식수와 농업용수의 오염, 매몰지 붕괴와 사체 유실을 통한 식수원인 하천의 오염은 차후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장마철이 코앞에 다가오자 구제역 매몰지 관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침출수를 막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대책은 그 관심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매몰지 반경 3km이내 135개 마을(인구 1만4,199명)에게 공급되어야 할 상수도 공사는 예산 부족으로 졸속 공사가 예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민주당은 ‘2011년도 민주당 민생·일자리 추경안’을 통해 전체 6조원 내외의 재원에서, ‘구제역 살처분 보상비 조속한 집행과 매몰지 환경오염 철저 관리’에 1조3,000억원, ‘감세와 구제역 피해복구로 파산지경에 이른 지자체에 긴급 지원’ 5,0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동물방역과 측은 “지역별로 여름철 강우량이 다르지만 지역별로 역대 최대치까지 고려해 장마와 태풍에 견딜 수 있도록 매몰지 차수막을 2겹 이상으로 덮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들은 “매몰지 주변에 언덕 등 경사면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은 “폭우로 언덕이 붕괴될 경우 매몰지 주변 시설물들이 파손될 수 있는 데다 언덕 밑에 매몰지가 있을 경우 언덕을 타고 내려온 빗물이 매몰지로 한꺼번에 몰려 비닐 등 차수막을 찢거나 쓸어갈 위험이 있다. 이런 곳은 매몰지 주변 언덕에 축대를 쌓거나 보강해야 한다” 고 말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비가 많이 오면 매립지 주변 지형지물이 변해 매몰지 쪽으로 빗물이 많이 흘러갈 수 있기 때문에 배수로뿐 아니라 매몰지 주변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며 “최근 몇 군데 매립지를 둘러보니 대부분 관리가 잘되고 있지만 일부 매몰지는 관리 책임자가 비가 온 뒤 배수로 정비를 제대로 안한 곳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침출수 문제 근본적 해결 방안 찾아야

이처럼 침출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한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특별, 수시 점검을 나서기도 했다. 국무총리실과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행정안전부 등 대규모 정부조직이 참여한 정부합동점검반은 지난 5월 18일부터 31일까지 장마철 대비 합동조사를 실시했다. 가축 매몰지 4700여 곳중 대규모 매몰지 2000여 곳을 둘러보고 소규모 매몰지는 지자체별로 빗물 차단, 침출수관리, 함몰시 후속조치, 상수도 확충 실적 등을 점검했다.

 매몰지가 가장 많이 밀집된 경기도(19개 시·군, 2390농가)의 경우 최근 6~8급 하위직 공무원 850여명에게 1인당 각각 2~3곳의 매몰지 관리를 할당했고, 4~5급 공무원 70여명은 부하직원들에 할당된 50~100의 매몰지를 총괄하도록 했다. 하지만 송숙 안성천시민모임 대표는 “매몰에 따른 침출수 유입이 순찰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근본대책 없는 인력낭비”라고 꽉막힌 행정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편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김진만 건국대 축산식품생물공학과 교수는 소각을 주장한다. 김 교수는 “소각은 폐가축 등을 가장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한다” 며 “구제역과 AI 등이 전국적으로 대량 발생하면 살처분 현장에서 매몰 지침과 환경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위와 같은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게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비좁은 국토를 고려하면 살처분 가축을 매몰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전근대적다. 소각 방식이 침출수 유출과 지하수 오염, 2차 감염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친환경적인 처리 방식이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재난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재난관련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