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곡물가대란 위기관리
국내농산물 물가에 예기치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국제 곡물가 상승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이 장기화되면 하반기 물가는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관계 전문가들은 옥수수, 콩 등 곡물 가격이 계절적인 영향에 투기적 수요까지 겹쳐 국제 프리미엄 비용이 형성되고 있다며 국내는 그나마 식품 비중이 신흥국보다 적은 편이지만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물가상승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 기자(jjlee@di-focus.com)>

글로벌 곡물 위기, 미국 1956년 이후 최악 가뭄
글로벌 곡물위기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주요 곡창지대인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옥수수, 밀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연중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른 시일 내에 곡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자칫 곡물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촉발하는 애그플레이션뿐 아니라 2007~2008년 제3세계 국가들을 덮쳤던 식량파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곡물값 급등으로 개발도상국에선 지난해 ‘아랍의 봄’과 같은 정치 불안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미국의 경우 1956년 이후 최악의 가뭄을 맞았다고 미국 해양대기청이 밝혔다. 해양대기청은 월간 정기 보고서에서 지난 6월 말 현재 미 대륙의 55%가 심각한 가뭄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이는 1956년 이후 가장 넓은 가뭄 면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이어 미 대륙의 80% 면적이 올여름 이상 건조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며 가뭄지역이 중서부를 중심으로 서부와 대초원 등으로 확산해 사상 14번째로 따뜻하고 10번째로 건조한 날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 토지의 표면이 마르고 작물과 경작지, 방목장 등이 18년 만에 최악으로 파괴되면서 지난 석 달 동안 미국 옥수수와 콩 산지가 심한 타격을 입어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이 우려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농무부 조사 결과 상등급 옥수수 생산량은 전체의 31%로 지난주 관측 때보다 9% 포인트 줄 것으로 추산됐고 콩도 상등급 생산량의 비율이 전체 34%로 전 주보다 6%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16일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햇옥수수 12월 선물 가격은 지난 6월 중순 이후 54% 급등한 부셸당 7.78 달러를 기록했다. 11월 선물 콩 가격은 부셸당 16.007달러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았고 11월 인도분 밀 선물 가격은 부셸당 8.9775달러로 지난해 2월 이후 최고를 나타냈다. 곡물 가격 급등은 연쇄적으로 사육업자들과 육가공업체들의 비용 부담을 상승시켜 내년쯤 소비자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전 세계 옥수수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데다 중국 콩 수입물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어 작황 부진이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또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의 식량지원도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가뜩이나 적자가 쌓여가는 미 연방정부 예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러시아 가뭄 밀 수확량 급감
러시아도 가뭄으로 밀 수확량이 급감했다. 러시아 농림부는 건조한 기후탓에 올해 밀 생산이 전년보다 9.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대로 옥수수의 가격은 전달보다 40%나 상승했다. 콩과 밀가격도 전달보다 각각 20%, 40% 급등했다. 문제는 이러한 곡물이 일반 식품 뿐만 아니라 축산업 사료와 바이어 연료로 쓰인다는 점이다. 축산업은 가뭄으로 목초지가 말라버린데다 사료값마저 급등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손해를 보면서 조기 출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연간 쇠고기 생산량은 지난해 262억파운드에서 올해 252억파운드로 감소했다. 내년에는 242억파운드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USDA는 전했다.

곡물 가격 상승이 육류 등 식료품 가격 전반에도 파장을 미친다. 밥상물가에도 영향을 끼쳐 애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애틀란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상품 가격은 식료품 가격을 주도한다”며 “곡물 가격의 상승은 최종 식품 가격상승을 낳으며 원치 않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일반 식품 가격 뿐만 아니라 육류를 주로 이용하는 패스트푸드업체 맥도널드, 시리얼과 음료 제조업체인 제너럴밀즈, 농산물 중개업체인 ADM, 코카콜라 등 다양한 식료품 업체들도 비용 압박에 가격 상승을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식료품 비중이 높은 신흥국에서 곡물가격의 쇼크로 투자자와 정치 지도자들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카렌 워드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의 성장 엔진인 신흥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에 제동에 걸린다면 전반적인 글로벌 경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 최대 대두 생산국인 브라질도 올 봄 심각한 가뭄사태를 겪으면서 주요 곡물가가 급등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콩 가격은 지난 1월 중순 이후 15%가 올랐으며 옥수수 가격은 3%, 밀 가격은 2%가 각각 인상됐다. 브라질은 심한 가뭄사태로 대두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 8.7% 줄어들 전망이다. WSJ은 “올해 전 세계 대두 생산량이 약 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기상센터와 미국 해양대기청은 공동 보고서에서 “미국의 이상고온과 가뭄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이상기후는 7월부터 9월 사이 발달할 엘니뇨의 전조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엘니뇨는 중부 및 동부 적도대의 태평양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으로 기상이변을 야기한다. FT는 “올해 대규모 엘니뇨가 발생하면 2007~2008년 아르헨티나와 호주를 강타한 가뭄처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상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곡물가위기, 올 4분기 국내 물가 악영향
이같은 상황에서 국제 곡물가 위기가 올 4분기부터 국내 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2008년에도 급등한 국제곡물 가격이 4~7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됐다며 최근의 국제곡물 가격 강세가 이어지면 올 4분기부터 국내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곡물 가격 급등은 미국의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인한 작황 부진과 국제 원유가격 상승세 전환, 국제곡물 투기 수요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국의 기상과 작황, 세계 경제지표 등에 대한 상시 관찰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수급상황 점검 향후 대응방안 논의
이 같은 상황이 닥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미국 중서부(옥수수, 대두)와 흑해 연안(밀) 등 주요 곡물 생산지에서 지속된 가뭄으로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 곡물가격이 급등함에 따른 유통공사, 사료협회, 제분협회, 전분당협회 등 관련기관과 국내 수급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관련협회에 따르면, 국제가격이 상승하기 전에 이미 올해 물량을 대부분 확보(밀·콩·옥수수 1,426만톤 중 1,281만톤)한 상태라, 올 하반기까지는 수급불안이 없을 전망이라 말했다.

콩과 옥수수의 경우는 12월까지, 밀의 경우는 10월분까지 최소 4~5개월분을 확보한 상태다. 다만, 국제곡물가는 약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됨에 따라, 최근의 곡물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에는 2013년 초부터 국내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곡물가격의 급등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국제곡물 관측시스템을 가동하여, 농산물 수입, 가공, 유통 관련업계 및 수요자에게 관측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할 방침이며, 향후 국제곡물 수급 및 가격 변화가 국내의 관련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계측하여 물가 안정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또한, 수입 콩의 정부 판매가를 고정 운용하고, 밀과 옥수수는 할당관세를 추진하는 등 가격 인상을 사전에 방지할 계획이다. 콩의 경우, 수입콩의 정부 판매가(1,020원/kg)를 고정 운용하고, 옥수수의 경우, 사료원료에 현행 할당관세를 지속추진하며, 밀의 경우, 필요하면 할당관세 인하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국내산 곡물의 생산확대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수입 수요를 줄임으로써 국제 곡물가의 변동에 대처한다. 밀의 경우, 우리밀의 생산확대를 적극 추진하여 밀 자급률을 2015년에 10%까지 확대함으로써 밀의 수입 수요를 줄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군 급식용에 사용하는 수입밀 제품을 우리밀로 공급하는 방안을 현재 관련부처와 협의 중으로, 군인급식 확정시 우리밀 9천여톤의 추가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방안이다.

아울러, 농협 매장내 우리밀 사용 제빵코너(빵굽는 마을)를 현재 3개소에서 연말까지 전국 80개소 매장까지 확대하고, 국산밀산업협회와 함께 ‘범국민 우리밀 1kg먹기 운동’을 전개해 우리밀 소비활성화 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리밀을 주정용으로 2013년도 25천톤을 기본공급하고 추후여건을 고려해 추가 공급하는 등 소비기반을 확충해 생산 및 자급률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국내 수급안정을 위해 2012년 국산콩 14만톤 생산을 목표로 논 소득다양화사업 등을 통해 재배면적을 72천ha까지 확보하고, ‘콩 재배단지 농가수량 300kg/10a 달성 프로젝트’를 통해 ’12년도 10a당 생산량을 200kg까지 생산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2011.7월에 마련한 식량 자급률 제고방안의 추진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국제곡물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국제곡물의 가격급등에 적극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국제 곡물 메이저 육성 등 위기관리대응 필요
곡물가격 상승은 경기상승세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는 현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부추겨 서민의 체감경기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은 수요보다는 공급 요인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긴축 등 거시적 차원의 대응보다는 수급안정 등 미시적 차원의 대책이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 “다만 중장기적으로 기상이변의 빈도가 늘어나고 파급규모도 커져 곡물의 공급불안 위험이 커지고 있는 데다 한국의 곡물 자급 및 수입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단기적 곡물가격 변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곡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식량수입구조의 다변화가 필요하며 수입곡물의 비축재고량을 늘리는 한편, 곡물의 공동 구매 및 직접 구매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와 함께 국적 곡물 메이저를 육성해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일 필요성도 제기됐다. 글로벌 곡물 메이저의 과점화로 한국의 곡물 수입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할 정도로 글로벌 곡물 메이저의 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가격 협상력과 독자적 수입여력이 약화되어 가격변동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고 있다. 이를 대비하기위해 국적 곡물 메이저를 육성해 글로벌 메이저의 과점화 대응이 필요하다. 식량자급률 외에도 에너지 자원처럼 자주 개발률 및 도입률을 관리지표로 삼을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