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지자체 부실이 지역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가운데 지구촌에서도 이 같은 상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그중 미국 스톡튼 시의 재정파산위기를 비롯해 지자체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기자(jjlee@di-focus.com)>

매머드레이크 시와 샌버너디노 시가 파산보호 신청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시간 주 의회가 최근 재정난에 따라 긴급 예산을 편성했으며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 시는 지자체 공무원의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삭감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미국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있지만 회복 정도가 미미하고 지역별 차이도 커 전국 1만9000개 지자체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동쪽으로 90분 거리에 위치한 인구 30만 규모의 스톡튼 시는 재정파산위기에 몰려 미국 자치단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스톡튼 시의 재정은 거의 바닥이 났으며 지난달 3월 초에 시의회에서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파산보호신청을 제출함으로써 60일간 조정기간을 거치게 된다. 만약 스톡튼 시의 재정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파산된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도시가 파산을 겪게 되는 것이다. 스톡튼 시의 재정위기의 요인은 미국 내 다른 도시와 거의 유사하다. 재정규모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많이 지방채를 발행하여 야구장 및 도시 리모델링을 강행하고 직원들과 시민들에 대한 방만한 복지예산지출 등이 원인이다.

한때 40만 불까지 치솟았던 주택값은 15만 불까지 내려감으로써 재산세 수입이 급감하고, 경제불황으로 지방채금리가 상승하여 이자상환율이 높아지는 등 재정위기 요인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16%까지 올라가고 경찰관수의 25%를 줄임으로써 범죄율이 높아져 가고 있어 밤에는 거리를 활보할 수 없게 되었다. 스톡튼시의 재정파산 선언을 보고 공화당 출신의 리차드 리오던 전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5년 이내에 미국 지방자치단체의 90%가 파산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7월에는 매머드레이크 시와 샌버너디노 시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로스앤젤레스 남부 콤프턴 시도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파산보호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예산은 법원의 승인 아래 집행되며 채권자에 대한 원리금 지급이 잠정 중단된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파산
지난해 11월 10일 미국 알라배마 주(州)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 제퍼슨 카운티가 31억3600만 달러의 지방채를 갚지 못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파산을 신청한 바 있다. 이전까지는 1994년도에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가 17억달러 파산보호를 신청하여 최대 규모였다. 제퍼슨 카운티는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 하수도 정비 사업을 위해 30억 달러 상당의 지방채를 발행했으나 금융위기 이후 지방채 금리가 크게 오르고 실업률 상승 등으로 세수가 줄어들면서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미국 내 지자체 연쇄 파산에 대한 공포가 시작된 것은 최근 캘리포니아 주 지자체들이 잇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부터였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지자체의 파산 사태가 일반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재정난에 처한 지자체들의 채무불이행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자체의 재정위기에 따라 공공 서비스가 부실해지고 있다. 올해 4월 채무조정을 위해 재정위기를 선언한 펜실베이니아 주 앨투나 시의 범죄 건수가 지난해보다 11% 많아졌다. 재정난으로 경찰관 수도 3년 동안 8%가 줄었다. 도로의 낙엽은 물론이고 동물 사체도 치우지 못하고 있다. 미국 지자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해 지난 1년간 교직원을 포함해 공무원 6만6000명을 감원했다.

무분별한 지역 개발 사업 파산초래
이같은 문제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도 홋카이도의 소도시 유바리 시가 수익성이 불투명한 대규모 관광 투자와 리조트, 박물관 등 무분별한 지역 개발 사업으로 부채가 353억엔(약 4850억원)으로 늘어나 2006년 6월 파산했다. 한 때는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로 많이 알려졌으며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니는 정도로 화려했던 이 도시가 지방자치단체 운영자들의 미숙한 운영과 관광시설 건설 등에 과잉 투자하는 바람에 파산에 이르렀다.

유바리 시는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시립양로원, 시립도서관은 물론 공중변소까지 폐쇄했다. 유바리시는 시청 직원을 269명에서 103명, 시의원 의원 수는 18명에서 9명으로 줄였으며, 직원 월급도 20~50% 삭감되어 전국 최저수준이다. 재정수입증대를 위해서는 각종 세금과 공공요금을 줄줄이 인상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 요코하마시 토지개발공사가 일본 지방공기업 사상 최대인 1500억엔(2조1750억원) 규모 파산에 처하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요코하마시가 토지개발공사 해산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따라 일본 경제의 숨은 암초인 지방자치단체 재정 부실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973년 설립된 요코하마시 토지개발공사는 학교, 병원 등 공공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금융사 대출을 받아 토지 매입에 적극 나섰지만 버블 붕괴 후 경기침체로 개발사업에 차질이 속출한 데다 보유 토지 가격마저 급락하며 경영 위기를 맞았다. 올 3월 말 요코하마시 토지개발공사의 보유 토지 장부가액은 1635억엔에 이르지만 이 중 부채가 1500억엔에 달한다.

또 쓰지 못하고 팔리지도 않는 불용지 규모만 34만㎡에 이르는 등 보유 토지 가치가 장부가액보다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 중 3분의 1은 화려한 고층 빌딩과 유원지로 요코하마항을 세계적 미항으로 만들겠다며 조성한 신개발지구인 미나토미라이 21지구에 소재해 있다. 이 신문은 “이번 파산은 부채 규모로는 일본 지방공기업 파산 중 사상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미국, 재정 운용 파산 신청한 지방자치단체 40여 곳에 달해
1981년 이후 미국에서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파산을 신청한 지방자치단체는 40여 곳에 달한다. 2008년 미 금융위기가 초래한 장기 경기침체는 미 도시들의 재정 수지를 급속히 악화시켰다. 실업률이 치솟고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도시의 주된 수입원인 근로소득세와 주택세 등 세수가 급감했다. 파산으로 내몰린 도시들의 공통점은 방만한 재정 운용이었다. 이들 도시는 한결같이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채산성 없는 사업을 강행하다 위기를 맞았다.

미국의 도시 파산의 절차는 우리나라 기업이 파산보호 신청을 통해 채무 상환을 일시 유예받고 기업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과정과 비슷하다. 파산 신청 도시는 채무 상환을 유예받는 대신 공무원 인력 감축과 연봉 삭감, 공기업 민영화, 지자체 소유 자산 매각 등과 같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도시의 재정 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공공요금 인상과 증세 노력도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