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재난관리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이욱 지음 | 창비 펴냄 | 값 28,000원

조선시대의 재난대처법: 다양한 영험처(靈驗處)의 형성
재난이 발생하면 영험처(靈驗處)를 찾아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조선시대 사람들의 보편적 재난대처법이었다. 조선왕조는 이런 영험처를 국가적 차원에서 직접 인위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사직’이나 ‘종묘’처럼 국왕이 직접 조회(朝會)하던 정전(正殿)을 중심으로, 제사를 거행하는 장소인 단묘(壇廟)를 일상공간과 분리하여 축조·관리했다. 이런 건축물은 국가권력이 직접 성스러움을 관리함으로써 영적 세계를 통제하고 민심을 수습하려는 국가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국가의 노력에도 여전히 백성은 국가권력의 영향을 벗어난 곳인 관악산, 박연 같은 영험한 산천(山川)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는 재난을 물리치기 위한 힘의 확보는 국가권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산천에 깃든 다양한 신앙을 수용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역사적 현실을 보여준다. 가뭄뿐 아니라 조선후기에 창궐한 전염병도 초월적 힘이 작용하는 영험처를 필요로 하는 재난이었다. 국가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인 여귀에 지내던 제사인 여제를 거행했는데, 그 장소는 일반적인 제장(祭場)이 아니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사자가 묻힌 전몰처(戰歿處)였다. 이처럼 죽은 뒤에 뼈들만 쌓인 주인없는 ‘무주시매처(無主屍埋處)’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영험처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국가가 전쟁과 재난이 남긴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풀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음을 방증한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기양의례
하늘이 임금에게 내리는 꾸지람으로 재난을 받아들이는 유교문화권에서는, 가뭄시 국왕이 하늘을 향해 자신의 잘못을 아뢰고 비를 간청하는 친행기우(親行祈雨)는 중요한 기양의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예전처럼 신의 영험성을 통한 재난 극복방식이 아니라, 하늘을 대면한 국왕의 모습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국왕의 상징성을 높이는 의례 형태를 취했다. 이는 자신을 성찰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을 통해 자연재앙을 극복하려는 현세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유교의 특성일 뿐 아니라 국왕이 궁궐과 도성을 벗어나 재난의 현실을 체험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만나게 하는 기능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