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의 화학제품 공장인 (주)휴브글로벌에서 직원들이 20톤짜리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탱크로 불산(불화수소산)을 주입하던 중 탱크로리의 뚜껑이 열리며 폭발했다. 이 사고로 직원 5명이 숨지고 마을주민 18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불산 유출의 여파로 마을 농작물은 타들어가고 주민들은 후유증을 호소했다. 사태의 삼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늑장대응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기자>

피해 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지난 10월 8일 정부는 경북 구미 일대의 유독 가스인 불산 유출 사고 피해가 계속됨에 따라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정부는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국무총리실에서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관계부처회의를 가진 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임천리 등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0월 5일부터 7일 실시된 1차 정부합동조사 결과, 구미시 유해화학물질(불산) 누출사고로 인한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피해발생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재정상의 능력으로는 재난의 수습이 곤란하여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59조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특별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면 농작물, 축산, 산림, 주민건강 등 분야별로 지원기준을 수립하여 피해에 대한 행정, 재정적 지원을 실시하게 된다. 피해조사 결과 농작물212㏊와 가축 3200여 마리, 차량 548 대, 건물외벽부식, 조경수 고사 등의 피해가 접수됐으며 인근 주민 및 근로자 병원 진료 환자는 3000여명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구미산업단지의 인근 공장 등 77개 업체에서 177억원의 피해를 입었으며 이 지역 인근 주민 300여명은 이주가 결정됐다.

중앙사고수습본부 및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
환경부는 구미시 불산 누출 관련 총력 지원을 위해 환경부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및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사고 주변 하천수의 수질, 취. 정수장의 수질, 낙동강 본류 취·정수장의 수질 등 사고지역 7개 지점에 대한 검지관 대기측정도 실시했다. 환경부는 “앞으로 매일 대기, 수질, 토양, 지하수 등 매체별로 모니터링하고 측정지점 확대 및 주기별 측정 등 관리를 강화하며 이를 위해 ‘이동식 대기측정차량’을 현지에 파견해 대표지점 및 주민들이 원하는 지점의 공기 중 불산 농도 측정을 수시로 제공하고, 사고 인근지역 하천 및 정수장 수질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불산의 수계 유입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고 밝혔다.

구미시 역시 주민과 협의하여 토양 시료채취지점을 결정하고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있으며, 지하수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원할 경우 주1회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있다.이와 함께 농작물 오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식약청 전문가도 사고현장에 파견했으며 신속히 농작물 오염 여부를 판단하고 식용으로 쓸 수 없는 농작물은 전량 폐기한다. 아울러, 유사사고 방지를 위해 환경부, 고용부, 지경부, 방재청 등 정부합동으로 위험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키로 했으며 유해화학물질 등 위험물질 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늑장대응에 대해 피해 주민들은 큰 시름에 잠겼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주민들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빠른 시일 내에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동면 주민대책위원장은 “더 빨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어야 했는데 다소 늦은 감이 있다”며 “보상이 얼마만큼 어느 선까지 이뤄지느냐가 중요하다. 피해조사 후 지원을 받을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하루빨리 지원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정부에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가 불산 유출 사고를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사고 피해지역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
조계종 환경위원회는 구미 불산가스 유출사고와 관련 “정부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며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환경위원회는 지난 10월 15일 성명을 내고 “불산이 해당지역 뿐 아니라 주변마을까지 유입됐을 수 있는데다 소방차로 물청소를 하는 등 잘못된 대응으로 식수원인 낙동강까지 오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또한 “오염된 물과 공기, 토양으로 인한 2, 3차 피해와 환경재앙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후 대응과 관련 “구미시와 정부의 안이한 조치가 피해를 키웠으며, 사고업체와 유해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고용노동부, 환경부, 신속하고 적합한 방재처리에 실패한 방재청 등 누구하나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정부는 초기대응 실패로 인한 주민·노동자들의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위원회는 또 “사고 12일 구미시가 구미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행정·재정적 지원책을 수립한다고 했으나 피해주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역학조사와 피해지역에 대한 총체적인 대책수립, 토양과 지하수 및 낙동강 수질 안정성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독물질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계획을 수립, 재발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환경위원회는 “사고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사과하는 동시에 주민건강 보장과 피해보상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논평을 통해 “12일이 지난 사고에 대해 정부가 합동으로 조사하고 검토한 대책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허술하고 무책임해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이어 대책이 농촌지역에 대해서만 한정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사고 발생 공장인 ‘휴브글로벌’에 인접한 회사 근로자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주변 공장 근로자들은 사고 당일에도 대피하지 않았고, 3교대 24시간 근무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 등에 대해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구미 산단 4단지에 입주한 298개 업체 중 이미 피해 신고를 한 업체들만도 77개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업체들의 휴업과 작업 중지권 발동’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환경연구소는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을 형식적으로 관리해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린 환경부 장관과 국립환경과학원장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주민들과 구미낙동강공동체 등 시민환경단체들은 정부나 사고 기업 등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준비중이기도 한 상황이다.

초기 대응조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편 정부가 구미 불산 사고로 허둥대는 동안 사고지역 인근 주민들의 건강과 생활 피해도 크다. 누출된 불산이 주위에 퍼져 농작물·가축·토양·지하수·강물을 오염시켜 야기되는 ‘3차 피해’의 가능성도 그만큼 더 커지게 됐다.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5명이 숨지는 대규모 독성물질 누출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정확한 진단은 물론 신속한 초기 대응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소방당국의 초동 대처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방재난본부 방호예방과 관계자는 “현재 소방서별로 2~3종류의 중화제만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제 공장에서 쓰이는 유해 화학물질 종류만큼 다양한 중화제를 보유하지 않으면 사고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구미 사고에서 불산의 특성에 맞는 중화제를 살포하지 않고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응한 것이 드러나 초기 대처의 미흡함이 지적되기도 했다.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문 화학소방팀을 운영해 적극적으로 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불산은 인체에 스며들면 살과 뼈를 녹아내리게 하는 치명적 독성을 지닌 화학물질이다. 이런 위험 물질에 대한 관리와 사고대응이 이토록 허술하다면 우리는 각종 유독성 화학물질의 위험에 상시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고 말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 행정안전위의 행안부 국감에서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며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매뉴얼을 정비하고 대응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