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일대의 불산 누출사고로 불산 등 관련 화학공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불산(불화수소산)가스 취급 업체가 전국에 다수 존재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 수는 4만3000여종에 이르며 매년 신규 화학물질 400여종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안전관리가 필요하지만 안전관리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기자>

국내 최대 불산(불화수소산) 취급지 울산 비상
구미 일대의 불산 누출사고가 터지면서 국내 최대의 불산(불화수소산) 취급지인 울산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가산업단지 내 화학업체의 낡은 시설과 빈발하는 폭발사고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구미와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한 울산은 후성, 솔베이케미칼, 고려아연 등 6개 업체에서 연간 1만 5110t 규모의 불산을 취급하고 있다. 이는 구미에서 누출된 불산이 8t인 점에 비춰볼 때 엄청난 규모의 양이다.

박맹우 울산시장이 간부회의 석상에서 “구미의 불산 누출사고는 화학업체가 밀집돼 있는 울산에 사전 경고를 준 것”이라며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와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471개 사업장은 불산, 암모니아, 가스, 유류 등 전국 유통량의 30%가 넘는 위험물을 취급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지난 한 해 동안 3445만 2479t(전국 유통량의 33.6%)의 유독물을 처리하고 2116만 5469㎘의 액체 위험물을 저장·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국가산업단지 내 화재 및 폭발사고도 끊이지 않아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난 5년간 188건(평균 9.7일)의 화재·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여기에다 울산의 화학업체들은 1960~70년대 건설돼 시설이 낡았을 뿐 아니라 도심에서 불과 1∼5㎞ 떨어져 대형 사고 발생 때 큰 피해가 우려된다. 실제로 지난 10월 3일 후성 공장에서는 삼불화질소(NF3)를 충전하던 차량에서 폭발성 화재가 발생해 근로자 1명이 3도 화상을 입었다. NF3는 산화성 가스로 반도체와 LCD 공정장비를 세정하는 유독성 물질이다. 이날 NF3 30~40㎏이 유출됐다.

사태가 심각하자 대규모 불산 제조공장 건립 추진을 지역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8일 여수광양항만공사에 따르면 세계 기업순위 501위인 영국계 칼루즈 그룹의 자회사인 멕시켐이 광양항 서측 배후부지 13만 3000㎡(4만평)에 불산제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었지만 지역민들과 시민 사회단체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불산 제조공장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불산(불화수소산)가스 업체 구미시만의 문제 아니다
경북 구미 일대를 공포로 휩쓸고 있는 불산(불화수소산)가스 취급 업체는 구미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구미시 불산 유출 사고와 관련 “사고 상황 발생시 대처 가능한 종합 행동 매뉴얼을 갖추라”고 지시했다.한 시장은  “구미 불산가스 유출 사고 발생 때 구미시의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며 “재난 발생시 매뉴얼이 없어 주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도권에도 다수 화학공장들이 존재하고 있어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10일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 배출 이동량 정보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연간 불산 취급량이 10t 이상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소재 사업장은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동부하이텍 반도체 부문 부천공장을 비롯해 총 15곳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자료에 나타나지 않은 10t 미만 취급 업체를 포함하면 수백개의 불산 취급 업체가 수도권에 존재하며, 만약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불산은 독극물로 취급되는 강한 유해성을 가진 물질이며, 강한 확산력도 가지고 있어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 일대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 행정안전부도 올해 2월 유관기관들과 화학물질 누출 사고 대응 매뉴얼을 마련했지만 이번 구미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재난매뉴얼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불산 누출사고 후에도 심각한 문제 야기
한편 구미의 불산 누출사고는 사고 후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이 지난 2004년 울산 불산 누출사고시 사고가 난 공장 주변을 관찰한 결과 식물들이 마르거나 고사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당시 화재가 발생한 공장 주변은 한눈에 봐도 식생이 건강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었고 경북 구미의 불산사고 현장과 흡사했다”며 “구미 지역에 대한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화학물질은 공기, 물, 토양을 통해 주변으로 노출되며 식물은 어디로 도망갈 수가 없기 때문에 공단주변의 식생은 환경오염의 영향을 받게 된다”며 “주변 역학조사를 일상적으로 실시해 환경오염과 건강피해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울산에서도 구미에서 누출된 불산과 같은 유독물질과 발암물질을 취급하거나 생산하는 업체들이 상당수 있다”며 “하지만 울산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석유화학공단과 온산국가산단의 기업들에서 취급하는 물질들이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고, 외부로 누출되었을때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울산은 구미와 같은 유독물 누출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며,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지만 화학물질 사고와 관련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사전예방 차원의 대책은 거의없다”며 “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고 재발방지를 하기 위한 대책까지 법률이나 제도로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제사회는 이해관계자들이 일상적으로 소통, 훈련, 협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환경단체는 불산 등 화학 물질에 의한 식물의 피해도 문제지만, 직접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 국장은 “실제 건강검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심각성이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확인 결과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암 발병률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 2009년 울산의 암환자 발생이 인구10만 명당 2002명으로 전국 최고였다”며 “하지만 이에 대한 역학조사나 산업공단과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사례에서 보듯, 울산도 산업공단 노동자들의 암 발생 연관성에 관한 정밀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국내외적 환경재앙
이 같이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4공단에서 9월 27일 발생한 불산(불화수소산)가스 누출사고는 유독성물질의 공기 중 대량유출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흔치않은 환경재앙이다. 미량의 일회성 노출에 따른 증상은 쉽게 치유된다고 해도 불산가스가 공기 중에 광범위하게 노출된 이상 사고 인근지역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불산가스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고,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 토양과 수질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의 체계적인 위기관리능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위기관리능력이 함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불산(Hydrofluoric Acid)은 위험성이 높아 69개 ‘사고 대비 물질’의 하나로 지정돼있다. 공기와 접촉하면 불산으로 변하는 불화수소 가스는 소량만으로도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최상위 독극물이다. 이런 불산을 하루 평균 25t씩 다루는 업체라면 꾸준한 반복 훈련으로 직원들에게 안전 수칙을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사고를 낸 (주) 휴브글로벌은 탱크로리에 담긴 유독물질 불산을 저장탱크로 옮기는 호스 연결 작업을 하면서 작업복과 작업용 헬멧 같은 안전장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주영순 의원이 지난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휴브글로벌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에 공정안전보고서를 제출하고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의 관리를 받아야 하지만 휴브글로벌은 관리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휴브글로벌은 2008년 설립 당시에는 종업원 수가 4명으로 공정안전보고서 제출대상 사업장이 아니었다. 문제는 2009년 이후 제출대상 사업장 기준인 5명 이상으로 종업원 수가 늘어났는데도 보고서 제출을 하지 않았다.

유명무실했던 대응 매뉴얼
관리체계에 일관성도 도마위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월 ‘화학 유해물질 유출사고 실무 매뉴얼’을 마련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정부는 잔류 오염 조사를 모두 마친 뒤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어 주민 복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구미시가 국립환경과학원 불산 측정 기준만을 근거로 귀가조처를 내린 데서 알 수 있듯, 이번 사고에서 이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다. 액체상태의 불산이 탱크에서 유출되면서 기체 상태로 퍼져나간 누출량은 13톤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피부발진,  구토 등으로 진료와 치료를 받은 주민은 1만명을 넘어섰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도 “연간 2천명 이상이 숨지는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업체가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정부는 사업장 점검·감독을 강화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기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고가 제2,제3의 유독물질 누출사고를 막기 위해 국가차원의 화학사고 안전관리시스템을 확립하고, 사고발생 예방과 대응에 관한 법률을 재정비해 안전관리상의 사각지대부터 없애는 일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또한 “이번 재앙을 계기로 화학물질 정보공개시스템을 마련하고, 유독물질 415종에 대해 연간 10톤 이상 취급하는 종업원 30인 이상 사업체에만 적용하는 안전관리 법적기준도 재검토해 ‘화학강국’에 걸맞은 안전관리대책을 세워야한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