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 원자력발전소 부품 납품업체가 품질 보증서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광 원전 5·6호기는 연말까지 가동 중단된다. 이에 따라 겨울철 전력대란 우려가 커지며 전력 당국이 비상에 걸렸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기자>

영광 5·6호기 가동을 정지하고
11월 5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8개 원전부품 납품업체가 제출한 품질검증서를 조사한 결과 총 60건이 위조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력 당국은 우선 전체 부품 교체가 예상되는 연말까지 영광 5·6호기 가동을 정지하고 영광 3·4 호기와 울진 3호기는 원전 운전을 하면서 교체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겨울철 전력사정이다. 이달부터 내달중 예비력은 275만~540만kW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내년 1월과 2월에는 예비력이 급감해 230만kW에 불과한 상황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광 5·6호기 부품 교체가 지연될 경우 예비력은 30만kW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력 당국은 보고 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이번 미검증품 전체를 전면 교체한다는 원칙 하에 조속히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면서 “단 미검증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방사능 누출과 같은 원전사고의 위험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 장관은 “원전 2기 정지로 이번 겨울은 사상 유례없는 전력난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일단 초고강도 전력수급 종합대책을 마련해 이달 중순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초고강도 전력 수급 종합대책 마련
한편 전력 당국에 따르면 11~12월의 예비 전력은 275만∼540만kW 수준이고, 내년 1~2월에는 예비력이 230만kW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영광 5·6호기의 재가동이 늦어지면 30만kW로 급락할 수도 있다. 여기에 월성 1호기까지 가동이 중단될 경우, 전력 수요가 공급을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전력 당국은 초고강도 전력 수급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경부는 지난 전력거래소, 발전자회사 등 전력 유관 기관장들을 긴급소집해 비상전력수급대책회의를 개최, 동계 전력수급대책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또 조석 지경부 2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전력수급비상대책본부를 설치해 가동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체 전기소비의 55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에 강제 절약 목표를 부여하는 등 수요관리를 적극 시행하기로 했다. 열병합 발전소 준공시점도 두 달 정도 앞당기고 공공기관 비상발전기를 총동원해 예비전력을 4백만kW대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터키에서 15만kW급 발전선을 임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경부는 “터키는 발전선을 여러 나라에서 직접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라며 “전력선은 일시적인 전력 공급부족을 해결하는 좋은 대안이기 때문에 기술적 문제가 극복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용 자가발전기를 총동원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자가발전기는 디젤 등 연료를 주입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설비다. 전국 대형 건물 등 6만여 곳에 비상용 자가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이들의 발전 용량은 총 2천만kW. 1백만kW급 원전 20기가 생산할 수 있는 전력과 맞먹는 규모다. 전력 당국은 공공기관에 설치된 1천kW 이상 발전기를 피크 시간대에 의무 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렇게 하면 추가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40만~50만kW 정도 될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낮게 유지돼 온 전기요금 때문
지난해 9월의 순환단전 이후 지금까지는 수요관리로 그럭저럭 버텨 왔다. 전력이 모자랄 때마다 대형 산업체의 전력 사용을 잠깐 중단시키는게 수요관리였다. 발전설비 건설계획은 전력수요 예측에 맞춰 결정된다. 정상적인 경우 전력수요는 국내총생산(GDP)에 비례하므로 발전설비 건설계획도 그에 따른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낮게 유지돼 온 전기요금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추가 수요가 발생했다. 원가보다도 낮은 전기요금은 그동안 석유와 가스를 쓰던 용도까지 전기를 쓰게 만들었다. 다른 에너지에서 전기로 이전(移轉)해온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당한 것이 지난해 9월의 단전 사태다. 현재 건설중인 발전기가 새로 발전에 투입되려면 2014년 겨울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요가 발전 능력을 초과하면 그때까지는 수요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수요관리의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쉴 틈도 없이 돌아가야 하는 발전기들은 하나같이 과로 상태다.

안전성 필요한 원자력발전소 불안감
이와 함께 안전성이 필요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불안감도 문제다. 이번 사건은 해외 품질검증기관의 품질검증서 자체를 위조해서 대량으로 부품을 납품했다가 적발됐다는 점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원전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영광원전 5, 6호기에 위조된 부품이 98.4%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을 넘어 두려움까지 주고 있다. 지난 11년간 원전 정지사고 95건 중 부품 관련 정지가 75건에 달한다는 것은 부품 납품에 문제가 많았음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은 “고리 1호기 정전 은폐사고,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전반적으로 벌어진 부품 납품 비리, 한수원 직원의 마약 투여 사건에 이어 발생한 이번 사건은 핵발전소 내부에 부실과 비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관리에 대한 철저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때다.

영광원전의 잇따른 사고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영광 주민들이 11월 15일 영광원전 안전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도 열었다. 이날 오후 전남 영광군 홍농읍 영광원전 정문 앞에서는 영광지역 각종 단체 등 2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영광원전범군민대책위 주관으로 ‘영광원자력발전소 가동중지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한 범군민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이번 영광원전 앞 주민 집회는 지난 2004년 9월 핵폐기장 설치 반대 시위 이후 8년 만이고 지난 2005년 영광읍에서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법률 제정 촉구 시위 이후 7년만이다.

이날 시위는 영광원전으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 ‘영광원전 가동 중단과 안전대책’을 요구하는 수십개의 현수막이 걸려 성난 민심을 반영했다. 이어 결의문을 통해 대책위는 “영광군민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미명 아래 감추고 은폐하고 속이는 원전정책에 지역주민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며 “정부와 원전 관련 기관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원전정책을 재수립하고 영광원전 완전한 가동중지, 안전성을 확보하라”고 외쳤다. 아울러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영광군민에게 석고대죄하고, 영광원자력발전소 조사를 위해 민간전문가와 군민대표가 포함된 국제적 수준의 안전점검단을 구성하라”고 주장했다.

나승만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영광원전 3호기는 2004년부터 균열 조짐이 발견됐지만 원전측은 지금까지 숨겨왔다”며 “영광원전의 발표는 더이상 믿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한편 대책위가 이날 결의대회를 마치고 영광원전 앞에 컨테이너를 설치하자 경찰이 제지해 고성이 오가는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대책위는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하며 장기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발전기들은 하나같이 과로 상태
이같이 불안한 전력수급에 대해 서울대 이승훈 명예교수는 “현재 수요관리의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쉴 틈도 없이 돌아가야 하는 발전기들은 하나같이 과로 상태다. 지난 1년 간 수시로 터진 발전기 고장 사고는 그 결과다. 송·변전 설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전이 요금 인상을 요구할 때마다 여론은 부패를 척결하고 자구노력이나 제대로 하라고 질타한다. 한전의 적자 규모는 전체 예산의 5%에 불과한 인건비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므로 결국 자구노력은 설비 유지·보수 비용의 절감으로 나타난다”며 “설비는 전례 없이 무리하게 가동되는데 유지·보수의 손길은 오히려 전보다 줄어든다.

낮은 요금이 전력소비만 부추기는 게 아니라, 기존의 공급 능력마저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서는 정부위기대응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BCP협회 정영환 회장은 “재난 및 안전의 정책대안 마련과 정책의 실질적 변화를 위한 민, 관 협력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