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사업이 보류된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국가통합망)을 국가 인프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제논리만을 따져서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게 아니라 공공안전을 위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재난관리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옳다는 뜻이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행정안전부 재난통신팀은 지난 12월7일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재난안전 무선통신망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을 통해 수행된 재난안전 무선통신망 정책방향 연구과제의 중간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유관기관과 관련 업계, 전문가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는 국가통합망 사업에 대한 관련 업계의 관심을 대변하듯 과열 양상을 보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행안부 재난통신팀은 관련 업계와 유관기관 등에서 1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참석자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160여명에 달했다. 국가통합망은 국가적인 대재난에 대비해 경찰, 소방 등 여러 재난관리책임기관이 사용하는 무선통신망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업이다. 업무범위가 서로 다르고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는 재난관리책임기관과 긴급구조기관들이 재난현장에서 신속·정확한 의사결정, 일사 분란한 구조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통합지휘무선통신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에 따라 추진됐다.

경제논리에 밀려 사업보류
하지만 국가통합망 사업은 시작부터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본디 예산 3600억원을 투입해 2006년까지 전국을 아우르는 디지털 TRS 통신망을 구축할 예정이었던 사업이 2005년 국정감사를 거치며 예산이 2100억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결국 2100억원 예산을 투입해 2005년 10월부터 서울·경기지역과 5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시작된 시범사업 및 확장1차사업이 2007년 12월 끝나면서 사업자체가 보류되고 말았다. 국가통신망 사업이 보류된 데는 감사원과 기획예산처의 역할이 컸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기관들이 감사원과 기획예산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기관은 국가통합망 사업이 시작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감사원은 2002년 6월 재난관련 감사 때 국무조정실에 대해 긴급구조기관 및 재난관리책임기관이 재난현장에서 일원화된 무선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종합 지휘무선통신체계 확보 방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긴급구조기관 등이 서로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무선통신 설비를 갖추지 않아 일사분란한 구조작업이 어려웠고 예산과 주파수를 낭비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기획예산처도 2004년 9월 사업추진 여부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했을 때 어떠한 문제점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통합망 사업이 시작된 뒤 국회와 언론 등에서 예산낭비라는 문제점을 들고 나오자 감사원과 기획예산처의 태도는 돌변했다. 먼저 감사원은 2007년 4월~2008년 2월까지 진행된 감사를 통해 국가통합망 사업이 특정 업체의 독점이라는 이의 제기를 이유로 사업타당성 논란에 다시 불을 댕겼다. 감사원은 2008년 2월에도 감사결과처분요구서를 통해 사업추진방식의 적정성, 사업의 경제성, 사업목적 달성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기획예산처도 지난해 6월 KDI를 통한 타당성 재조사를 거쳐 국가통합망 사업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정책 타당성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경제 논리 때문에 국가통합망 사업은 중단되거나 전면 재검토될 상황에 놓였다. 이에 대해 7일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KISDI 김사혁 책임연구원은 “감사원 감사 및 KDI 타당성 재조사로 인해 결과 국가통합망 사업이 보류된 뒤 재난 관련 기관들의 자체 무선통신망 신·증설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국가통합망 사업이 다시 추진된다 해도 빨라야 2013년까지 구축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안전 인프라로 접근해야
김사혁 연구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10월부터 수행한 재난안전 무선통신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행안부 재난통신팀 쪽에 따르면, 이 용역과제는 보류된 국가통합망 사업을 재검토하며,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난맥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업을 정비하고 향후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데 활용될 방침이다. 공개토론회 결과를 반영한 용역과제 최종결과 보고와 재난안전망 기본계획 수립은 지난해 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사혁 연구원은 “영국,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공공안전 무선통신망을 구축 운영 중이다”며 “우리도 경제성만을 따질 게 아니라 공공인프라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KDI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따졌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KDI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는 총비용 산출 시 연계기관 투자유지비 산출 문제, 단일사업 시행안 선택 및 연계기관망 연동방안 미고려, 지하구간 추정 문제, 편익 산출 문제 등을 꼬집었다.

이 가운데 편익 산출을 예로 들면, KDI는 국가통합망의 가치를 재난대응 시로만 한정하고 평시편익은 산출이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하지만 가치를 재난대응 시 만이 아니라 예·경보 차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김 연구원의 주장이다. 또 재난에 의한 인명피해의 경우 사망자와 실종자만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뿐 부상자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특히 그는 “2008년 3월 사업이 보류된 뒤부터 경찰청, 소방방재청, 한국도로공사 등 재난관련 기관들의 자체 무선통신망 신·증설이 중단된 탓에 무선통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운영 중인 자체 통신망의 장비 노후화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재난관리 책임기관들이 국가적인 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무선통신망을 갖추지 못하거나, 장비가 너무 오래돼 재난을 맞았을 때 인명·재산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이어서 김사혁 연구원은 지구촌 전체의 기후변화 가속, 미래 재난 예측 가능성 감소, 생활공간 밀집화, 재난안전관리의 다양성과 복합성 증대 등의 이유로 국가 재난안전 대응체계 혁신 및 선진화된 재난안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 연구원이 제시한 정책방향은 “중단된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사업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재검토해 새로운 재난안전 무선통신망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대안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재난안전 무선통신망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 새로운 대안 발굴 및 대안별 타당성 확보, 가장 적합한 대안의 사업 추진 방법 제시, 기존 사업타당성 관련 논란 해소 등 4가지다.

디지털 TRS 방식 가장 적절
김사혁 연구원은 이날 주제발표에서 미국, 영국, 독일, 핀란드, 스웨덴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재난안전 무선통신 정책과 동향을 소개한 뒤 국가통합망 구축을 위해 검토 중인 와이브로(WiBro)·테트라(TETRA)·아이덴(iDEN) 세 기술에 대한 특징과 장단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와이브로는 4세대(G) 무선이동통신이며, 테트라와 아이덴은 디지털 TRS(주파수공용통신) 기술이다. 김 연구원은 세 기술의 특징과 재난통신 관점에서의 장단점 분석을 통해 “현 시점에서 기술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기존 디지털 TRS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와이브로 기술로 TRS를 대체하다는 것은 이론으로만 가능할 뿐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삼성전자의 와이브로 기술개발 제안을 검토한 결과 재난안전서비스 기술개발과 시험·검증이 필요한데, 현장검증까지 2~3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도 와이브로가 제외된 이유가 됐다. 때문에 각각 장단점이 있고 논란도 따르지만 이미 재난 현장 등에서 검증된 디지털 TRS 방식의 테트라와 아이덴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김 연구원의 결론이다.

하지만 그는 대안의 최종 선택에 대해선 “3가지 기술 대안이 마지막으로 고려되나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결론을 뒤로 미뤘다. 김 연구원이 밝힌 선택의 문제란 “현시점에서 실현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기본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한다면?”과 “시간을 두고 기술의 대체성에 대한 검토를 충분히 고민하고, 사업을 진행한다면?” 둘 중 어떤 게 대안으로 알맞은가의 문제로 보인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진항 행안부 재난안전실장은 “국가통합망 사업이 보류되면서 무선통신망이 반드시 필요한 기관들의 신·증설도 중단된 상태여서 지금은 기술 등에 대한 대안을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찬오 행안부 재난안전정책자문위원장(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교수)은 “국가통합망 사업은 재난을 맞았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고 유관기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됐다”며 “먼저 현 상태의 무선통신망을 인정한 뒤 국가통합망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