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지구촌의 관심은 필리핀 루손섬으로 향했다. 마욘 화산이 12월14일(현지 시간)부터 용암과 화 산재를 분출하며 폭발할 징후를 보였기 때문이다. 마욘 화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활화산이자 필리핀 최대 활화산으로, 외국 관광객에겐 인기 있는 관광명소다. 하지만 지난 400년간 약 50번이나 불을 뿜어내면서 때론 대재앙을 일으키기도 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마욘 화산은 12월14일 폭발 징후를 보이기에 앞서 1616년 이후 최소 48차례나 폭발했다. 최근에는 2006년 8월에 불을 뿜어낸 바 있다. 이때에는 세기가 약했던 탓에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용암을 직접 보기 위해 필리핀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화산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화산이 폭발할 때마다 위험을 겪어야 한다.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던 2006년에도 마욘 화산 인근 주민들에겐 대피령이 내려졌고 주민 수만명이 긴급 대피했다.

마욘화산에 얽힌 전설
마욘 화산은 7000여개 섬들로 이뤄진 섬나라 필리핀에서 가장 큰 루손섬 남동부 비콜 반도에 있는 성층 화산이다. 알바이주 주도인 레가스피시에서 북서쪽으로 15㎞ 떨어진 평야지대에 해발 2462m 높이로 우뚝 솟아올랐다. 거의 완벽한 원뿔 모양을 이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필리핀 정부는 마욘 화산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마욘 화산의 원뿔 모양은 화쇄류와 용암류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졌다.

마그마가 밀고 올라오기 쉬운 필리핀해판(필리핀 플레이트)과 유라시아판 경계에 자리해 필리핀에 있는 20여개 활화산 가운데 가장 활동성이 강하다. 마욘이란 이름은 비콜 지방 말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마가욘’에서 유래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알바이 지역의 한 족장에겐 ‘다라강 마가욘’이란 이름을 가진 아름답고 착한 딸이 있었다. 많은 청년들이 마가욘을 흠모해 사랑을 얻고자 했는데, 마가욘은 그 중에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웃 부족의 평민이었다.

마가욘의 아버지는 신분 차이를 문제 삼아 두 사람을 관계를 반대하면서 청년을 죽이려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두 남녀는 마가욘 아버지를 피해 청년의 부족으로 달아나 살게 된다. 하지만 둘의 행방을 찾게 된 마가욘의 아버지가 군사를 몰아서 청년의 부족을 공격한다. 이에 청년의 부족은 마가욘 부족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마가욘과 청년은 목숨을 잃는다.

딸을 죽인 꼴이 된 마가욘의 아버지는 딸의 시체를 껴안고 울면서 딸과 청년을 나란히 묻었다. 이후 둘의 무덤이 점점 커져 지금의 마욘 화산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슬픈 전설을 간직한 마욘 화산은 평상시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레가스피의 상징’으로 불린다. 불을 내뿜고 붉은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도 누구나 쉽게 보기 어려운 장관을 연출한다.

1814년 카그사와 대참사
하지만 화산은 때로 도시 전체를 파괴할 만큼 대재앙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화산의 위력을 잘 알 수 있다.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기슭에 있던 도시로 로마시대 농업·상업 중심지로 번성했다. 하지만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과 함께 하루아침에 도시 전체가 사라져버렸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화산재와 용암 조각(화산력)이 무려 1m나 쌓여 폼페이 전체를 덮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2~5만명으로 추산되는 폼페이 시민 가운데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꾸준한 발굴 작업의 결과 폼페이 유적은 현재 유명 관광지가 됐다. 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산 피해지로서 화산 폭발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교육장 역할도 하고 있다. 폼페이에 비하면 규모가 보잘 것 없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필리핀에도 화산 폭발과 관련된 유적이 있다. 마욘 화산으로부터 10㎞쯤 떨어진 카그사와(Cagsawa) 성당 유적은 폼페이에 비결될 만큼 아픔을 안은 곳이다.

카그사와 성당은 마욘 화산 폭발로 무려 1200명이 떼죽음을 당한 대참사의 현장이다. 1814년 2월1일 마욘 화산이 폭발하자 인근 주민들은 이 성당으로 피신을 했다. 그러나 화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성당을 덮쳐 1200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대참사가 벌어진 지 2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카그사와 성당 자리엔 앙상한 종탑만 남아 있다. 카그사와 성당 유적은 당시의 아픔을 대변하면서 마욘 화산의 위력을 홍보하는 데에도 활용되는데, 많은 관광객과 필리핀 학생들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엔 경고없이 폭발
1814년 대참사뿐 아니라 마욘 화산 폭발 때마다 크고 작은 피해를 불러왔다. 최근엔 필리핀 정부의 노력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히진 않았으나 특별한 징후 없이 갑자기 폭발해 예기치 못한 인명 피해를 부르기도 했다. 때론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존재인 셈이다. 필리핀 정부는 마욘 화산 근처에 관측소를 세워서 매일 화산 활동을 감시하며 폭발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12월14일부터 용암과 화산재를 분출하며 폭발 징후를 보이자 재빨리 경계경보를 내리고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시켰다.

필리핀 언론 등 외신에 따르면, 마욘 화산이 폭발 징후를 보인 직후 필리핀 정부는 폭발에 대비해 인근 주민 5만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레가스피시 등엔 임시 대피소를 마련했다. 노베르토 곤잘레스 필리핀 국방장관은 재난관리 담당 공무원들과 함께 안전대책을 확인했고, 알바이주 주지사는 “새해까지 피난민들이 임시 피난처에서 지내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엔 다행히 마욘 화산이 폭발에 앞서 용암과 화산재를 분출해 미리 대비할 수 있었지만, 경고 없이 갑자기 불을 뿜어내 뜻밖의 인명피해를 부르기도 했다. 마욘 화산은 1993년 어떠한 예고도 없이 갑자기 폭발해 단 몇 분 만에 5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이후 2, 3차 폭발을 일으켜 70명을 숨지게 했다. 갑작스런 화산 폭발은 인근 주민들에게 미처 피할 틈을 주지 않았다.

1993년 2월2일 첫 폭발 땐 화산재가 5000m 높이로 치솟고 불덩어리가 산 아래 평야지대에서 일하고 있던 농부들을 덮쳐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약 2시간30분 뒤 일어난 2차 폭발은 화산재가 태양을 가리고 20㎞나 떨어진 곳까지 화산재로 뒤덮일 만큼 위력이 컸다. 게다가 1주일 뒤 다시 폭발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인명피해를 불렀다. 화산 폭발이 끝났다고 판단한 필리핀과 미국 화산학자들이 현장을 찾았을 때 폭발해 화산학자 가운데 몇 명이 목숨을 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