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랑일 한국소방안전교육센터 대표 재난관리지도사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은 1398년 조선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곽의 정문으로 창건되어 610년 동안 한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하지만, 2008년 2월10일 오후 8시40분 채종기(당시 69세)씨가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방화사건에 의해 문루 2층이 거의 전소(90% 손실)되고, 1층에도 불이 붙어 일부가 손실됐다. 숭례문 화재는 발생 5시간만인 2월11일 새벽2시에 진화되었으나 석축을 제외한 대부분이 허무하게 화마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한 노인의 방화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무너진 사건은 전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숭례문 화재는 우리나라의 허술한 문화재 관리대책을 도마 위에 올리게 했다. 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재산피해를 입힌 대재난에도 불구하고, 안전 불감증에 사로잡힌 국민들에게 또다시 정부와 관련기관의 허술한 방재대책을 강도 높게 성토하는 계기를 마련한 화재사고이다.

숭례문화재는 허술한 관리가 부른 ‘인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점점 잊혀져가고 있지만, 숭례문 화재를 돌이켜보면, 민족정기를 지켜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인재’로 소실된 경우라 해도 과도한 표현은 아니라 생각한다. 소방시설 및 화재안전기준 등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 없이 무방비상태로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이 허술하게 문화재가 관리돼왔기 때문이다. 2005년 강원도 양양에선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08년 1월엔 10대 여중생들이 휴대전화를 찾는다며 수원 화성 ‘서북각루’ 갈대밭에 불을 지른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2006년 4월에 발생한 창경궁 ‘문정전 방화사건’은 토지개발 보상에 대한 불만으로 신상을 비관한 60대에 의한 방화였고, 2006년 5월엔 카드빚에 시달리던 20대 청년의 화풀이 방화로 수원 화성 ‘서장대’가 전소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이없는 방화사건으로 허술하게 관리돼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심하게 손상되거나 불속에 사라지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문화재와 사찰 등에 대한 화재안전기준을 마련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숭례문 화재는 문화재 관리부처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떠넘기기식 탁상행정에 무관심과 관리부족이 겹쳐서 발생한 결과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상시 노숙자들의 쉼터로 이용되면서 가스기구를 사용하여 취사행위를 하는 등 위험천만한 일들이 평소에도 자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재제도 하지 않았으며 초기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소화기도 수년 동안 방치하여 유명무실하였다.

게다가 CCTV만 설치되었을 뿐 스프링클러나 옥외소화전 설비 등 어떠한 소방설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처럼 무관심과 방치한 듯한 허술한 문화제 관리대책에 속속 밝혀져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숭례문 화재발생신고가 접수되자 소방차량 30여대와 80여명의 소방관이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려했으나, 숭례문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과 독특한 구조물의 구성형태를 몰라서 초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없었다.

숭례문은 건축물 특성상 2층과 3층 내부에 물이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탓에 지붕을 뜯어내고 화재를 진압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자유로운 진화활동에 재동을 걸었던 것이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 눈치만 보다가 화재발생 4시간이 지난 뒤 목조 골격이 불에 타 기와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무너진 지붕에 생긴 구멍을 통해 어렵게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고 소방관들은 증언하고 있다.

첨단소방시설 등 과감한 투자 필요하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방화범은 잡혔지만, 범인은 과거에도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창경궁 문정전에 방화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300만원을 추징당한 전과가 있었다.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아무런 재제도 받지 않고 숭례문을 무단출입하여 방화를 하게 되었다는 수사결과에 정말, 국보1호인 숭례문이 저토록 무관심하게 관리되었을까? 많은 국민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조선·반도체 세계 1위국이자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보유한 IT 선진국임을 자랑하면서 2002년 월드컵 등 많은 국제행사 유치로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유독 안전 분야에서 만큼은 허술한 관리와 사소한 부주의로 소중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당하고 있어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와 신뢰도 하락에 원흉이 되고 있다. 따라서 첨단 방재시설 확충과 예·경보시스템 개발 등 안전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재난에 대비하고 예방해야 한다. 또 화재가 발생했다는 가정 아래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숭례문 화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전국 주요사찰과 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대책이 수립되고 정기적인 예방활동이 전개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고 싶다. 전통 목조건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도면제작이 필요하며, 시설물 관리자와 소방공무원들과의 실질적인 화재진압훈련 및 화재 시뮬레이션을 병행해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철저한 예방대책을 강구하여 수천 년을 이어온 소중한 문화유산을 소중히 보호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 몫이다. 2년 전 일어난 숭례문 화재는 우리에게 심한 상실감과 함께 큰 과제를 안겨주었다. 숭례문 화재 2주기를 맞아, 다시는 국민의 마음에 안전 불감증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첨단소방시설을 확충하는 시초가 되길 소방인의 한사람으로써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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