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

지방자치를 시작한지 어언 16년이 되어 6월이면 제5기 민선자치시대를 열게 된다. 지방자치란 풀뿌리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방자치제가 지방시대를 여는 데 큰 기여를 하였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자치이기 보다는 사익을 위한 자치로 변질된 감이 없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주민들의 생각을 정치에 반영하여 주민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민선에 의해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신의 인기관리에 연연하다 보니 재난과 안전에 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하다. 동시에 국민들도 무슨 일이 발생하면 안전이 중요하다고 부산을 떨다가 곧 잊어버리고 만다.

먹는 문제 다음은 안전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은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먹고 살만하면 다음에는 안전을 찾는다. 이렇게 보면 의식주 순서가 맞는 것 같다. 먼저 체온을 보호하는 옷이 있어야 하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이 때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전하게 쉴 곳, 집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잘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펼친 ‘새마을 운동’ 덕택에 생리적 욕구를 충족한 상태다.

생리적 욕구가 충족된 후 우리 사회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겼고 이는 앞으로 점점 더 커져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발전 단계에서 볼 때에도 GDP 2만 달러에 이르면 생존의 욕구에서 안전에 관한 욕구로 옮긴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 단계에 들어섰다. 소득수준은 2만 달러인데, 아직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안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책수립 및 집행단계에서는 경제논리에 밀린다. 아마 아직도 개발연대의 의식의 관성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안전은 항상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도시화 과정에서나 산업현장에서 안전은 너무나 열악한 상태이고 안전에 관한 법들이 개별적으로 제정 시행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고 아직도 법령미비 분야가 많다. 국가적 차원에서 재난안전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 정비가 되어있으나 국민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생활 현장에서 안전문제는 아직 멀었다. 이 문제는 지방자치시대에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할 사안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자체장 안전 관심 적어
2년 가까이 재난안전관련 업무를 해오면서 가장 힘들게 느끼는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재난안전 관련 조직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안전에 관심이 있는 사회운동단체가 활발히 움직이고는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행정력이 안전에 대한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지금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현장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지자체가 담당부서가 미약하게 편성되어 있으며 직원도 신참이거나 아니면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가 업무량에 비해서 절대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편성 역시 항상 뒤로 밀려난다. 현장 생활안전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안전에 대한 관심여하에 달려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민선 지방자치 단체장에게 안전에 대한 지시 공문은 우이독경일 따름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민선 지방자치 단체장이 안전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 민선 지방자치 시대에 중앙정부의 통제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권자 ‘안전의식’ 일깨우자
천적 전략을 쓰는 것이다. 선거직에서 천적은 유권자다. 그러니 유권자가 파워를 발휘하게 하면 된다. 유권자가 ‘이제 먹고는 살만하니 안전하게 살고 싶다. 안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아야겠다’란 생각을 하게 만들면 된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언론 매체에 많이 기고하고 언론도 적극 동참하고, 각종 사회단체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하여 국민의 의식을 일깨워줘야 한다.

즉, 국민이 안전에 대한 의식을 갖고 안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우리 시장(군수·구청장)으로 선출해야겠다는 의식을 갖도록 ‘줄탁동시’(茁啄同機)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보자들은 선거공약으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울 것이고 유세현장에서는 안전을 목이 터져라 외쳐댈 것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유권자이기 때문에 유권자 안전의식이 높아지면 사회전체의 안전 수준이 높아지는 부수적 효과는 당연하다.

지금껏 사회운동은 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자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야 전국에서 활동하는 사회단체에 대한 지자체장의 관심과 지원도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정부는 국가기반체계를 비롯한 범국가적 차원의 안전에만 노력을 집중하면 될 것이며 예산 절약은 물론 국가적 안전수준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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