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으로 20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기면서, 지구촌은 다시 한 번 지진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1월12일 아이티 대지진 뒤에도 세계 각지에서 지진이 끊이질 않았다. 2008년 5월 리히터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9만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중국 쓰촨성에선 1월31일 새벽 리히터 규모 5.2의 지진이 발생해 집 200여채와 도로가 무너졌다. 희생자도 생겨났다. 한순간에 엄청난 피해를 부르는 지진을 다룬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 재난포커스 - 김용삼 기자 >

 <대지진>(Earthquake)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이 대지진에 강타당한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1974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고 1976년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1989년 비디오로 나오고 2002년 9월엔 TV에서 방영했다. 1970년대는 다양한 재난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제작된 ‘재난영화 전성기’였다. ‘에어포트 시리즈’인 <에어포트>(1970) <에어포트 77>(1977) <에어포트 79>(1979)를 비롯해 <타워링>(1977),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등 재난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1970년대 등장했다.

찰톤 헤스톤-에바 가드너 호화캐스팅
<대지진>도 앞서 소개한 작품들처럼 이른바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재난영화의 공식이란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주기 위해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온갖 특수효과를 활용해 스펙타클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한 찰톤 헤스톤, 에바 가드너, 조지 케네디 등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이다. 특히 찰톤 헤스톤과 에바 가드너 두 남녀주인공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톱스타 중의 톱스타였다. 둘은 <대지진>에 앞서 <북경의 55일>(1963)에 함께 출연했었다.

찰톤 헤스톤은 그 유명한 <벤허>(1959)와 <혹성탈출>(1968) 등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120편이 넘는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그는 <벤허>로 196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또 다른 재난영화 <아마겟돈>(1998)에선 나레이터 목소리로 등장했다. 1999년 4월20일 일어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2002)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에게 총기 사고에 대한 질문을 받자 피하듯 자리를 뜨던 미 전국총기연합(NRA) 회장이 찰톤 헤스톤이다. 그는 2002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오다가 2008년 4월5일 베버리힐스 자택에서 84세로 숨을 거뒀다. 여주인공 에바 가드너도 <킬리만자로의 눈>(1952) <모감보>(1953) <원탁의 기사>(1953) <태양은 또 떠오른다>(1957) <천지창조>(1966) <카산드라 크로싱>(1977)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스타다. 미국을 대표하는 갑부 가운데 하나였던 하워드 휴즈의 구애를 뿌리치고 배우 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세 번째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캘리포니아 대지진 발생, 댐까지 붕괴
<대지진>은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캘리포니아 일대를 강타한 뒤 댐까지 무너져 쓰나미처럼 거센 물살이 LA를 덮치는 상황에서 두주인공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객기(에어포트), 초고층건물(타워링), 호화여객선(포세이돈 어드벤처) 등 같은 시기에 등장한 재난영화들처럼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LA란 거대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대작이다. 특히 음향에 큰 신경을 썼는데, 당시로선 최첨단 특수음향 시스템(센서라운드)을 사용해 아카데미 녹음상과 특별상(음향효과)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튜어트 그래프(찰톤 헤스톤)는 큰 건설회사 부사장으로 사장 딸인 아내 레미(에바 가드너)와 사이가 좋지 않다. 레미와 불화가 계속되자 스튜어트는 동료와 외도를 하는데, 레미가 스튜어트의 외도를 알게 되고 둘은 말다툼을 벌이는 도중 LA에 대지진이 발생한다. 큰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LA는 큰 혼란에 빠져든다. 스튜어트는 경찰관 루 슬레이드(조지 케네디)와 함께 무너진 건물 지하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설상가상 대지진 뒤 발생한 여진으로 전대미문의 대참사를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할리우드댐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물살이 LA를 덮친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댐’이 붕괴되는 장면은 지은 지 2년 만인 1928년 3월12일에 붕괴해 43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캘리포니아주 세인트프랜시스댐 참사를 모델로 삼았다. 세인트프랜시스댐 참사는 미국에서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의 뒤를 잇는 대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대지진>은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대도시 LA를 배경으로 지진과 댐 붕괴 등 거대한 스케일의 재난장면과 톱스타들의 출연으로 볼거리를 제공해 미국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줄거리의 짜임새가 부족해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6년 국내 개봉에서도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