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선 ‘해외 대규모 재난의료 지원체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선 경제규모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에 비해 해외재난의료 지원체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과 함께 여러 가지 개선방안이 나왔다 특히 주제발표를 맡은 홍은석 울산의대 교수는 한국 해외재난의료지원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한국은 지난해 11월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별회의에서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으로 가입해 올 1월1일부터 정식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앞서 DAC 회원국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주요 선진국 22개국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뿐이다. DAC 가입은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수원국에서 지원을 하는 공여국이 됐음을 뜻한다. 이는 곧 아이티 대지진처럼 해외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적극 지원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해외재난 지원은 구조대와 의료진을 파견하고, 구호물자를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이 가운데 한국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의료지원이다.

일본·미국 등에 비하면 ‘천막진료소’
2월25일 공청회에서 나온 지적처럼 한국의 해외재난의료 지원체계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 실제로 1월 아이티가 대지진으로 풍비박산 나자 한국 정부는 인명구조를 맡은 소방방재청 소속 119국제구조대와 함께 23명으로 구성된 긴급 의료지원팀을 파견했다. 그런데 국내 한 언론은 당시 아이티 파견 한국 의료지원팀 수준에 대해 한 국내 언론이 ‘천막진료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많은 국내 해외재난의료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의료지원팀이 ‘천막진료 수준’이란 지적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뿐 아니라 정부도 해외재난의료 지원체계가 일본, 미국 등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축사를 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가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는 지원을 받는 수원국의 입장에서 지원을 하는 공여국이 된 우리나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에 맞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2월 중순 복지부가 아이티 파견 의료지원팀 활동 평가회의를 가졌는데, 아이티에 파견되는 과정에서부터 복귀 시점까지 체계적인 계획 준비가 부재하였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공청회를 주최한 신상진(한나라당·성남 중원) 의원도 “최근 아이티 지진 대참사로 세계 각국의 구호 경쟁이 본격화된 가운데, 우리나라도 민·관합동 지원규모가 1500만 달러를 넘는 등 규모는 나날이 확대되고 있지만, 해외 재난의료 지원은 선진국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이어서 “아이티 대참사로 인한 우리나라의 해외긴급의료지원 수준이 ‘천막진료 수준’에 불과하다는 한 언론사의 지적은 단적인 예일 것이다”고 꼬집었다.

아이티 지진 의료지원 문제 많아
이날 공청회에서 홍은석 울산의대(응급의학과) 교수는 ‘해외재난의료지원의 현황 및 문제점’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해외 재난의료 지원체계의 문제점을 일본 등과 비교해 분석한 뒤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홍 교수의 발표내용을 정리해본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촌에선 자연재해로 120억명이 영향을 받았으며, 약 1200만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게다가 재해발생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피해규모도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선진국에 비해 사회기반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은 같은 규모 자연재해에도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통계에 의하면 재난에 의한 사상자수의 90% 이상이 개발도상국에 집중되고 있다. 생존자도 난민으로 추락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2차적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에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전 인류의 인도적인 차원에서 주변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자연재해에 대한 세계 각국의 협력과 지원은 각 지원국의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어떠한 지원을 하는가는 세계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때문에 국제재난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응 및 운영체계를 갖추는 것은 우리나라 이미지를 향상하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정부도 2007년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정부차원의 국제재난 구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2007년 이후 발생한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2008년 5월), 아이티 지진피해(2010년 1월)에서 우리나라 긴급의료지원은 많은 문제점을 나타냈다.

교육·장비 부족하고 인력구성도 허술
의사, 간호사, 약사, 행정인력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해외긴급구호 의료지원팀은 파견인력 의료지원, 피해자 진료 등의 역할을 맡는다. 파견기간은 10~20일(필요에 따라 연장)이고 인원선발은 한국보건의료재단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이수한자 중에서 국립의료원,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선발한다. 해외긴급구호 의료지원팀 대상 교육과정을 개발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지난해 처음으로 교육을 실시해 30명이 수료했다.

하지만 앞으로 교육과 정의 지속을 위해 기존에 실시한 교육과정 보완과 심화과정 개발이 필요하다. 의료지원팀이 사용할 의료소모품은 드레싱 반창고, 드레싱(고정)패드, 산소마스크, 일회용주사기 등을 구비하고 신속한 이송을 위해 국제보건의료재단 남양주 의료기창고에 보관중이다. 그리고 종합감기약, 진통제, 항생제 해독제 소화제 이뇨제 등 의약품도 비축하고 있다. 일본은 1979년 캄보디아에 대한 해외재난 의료지원팀 파견을 시작으로 1982년 일본재난의료지원단(JMTDR) 창설, 1987년 국제긴급구조대 파견에 관한 법률 제정, 1992년 법률개정을 통해 실시 의료파견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의료지원파견 현황을 살펴보면 지진, 홍수, 태풍, 가뭄, 해일, 난민유입 등 다양한 해외 재난에 파견되고 있다(1987~2004년 의료지원 32건). 파견지역도 아시아(25%), 중남미(19%), 유럽(3%), 중동(34%), 아프리카(16%), 태평양(3%)등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다. 일본 해외재난 의료지원팀은 단장(1), 주임의사(1), 의사(3), 약사(1), 주임간호사(1), 간호사(6), 기타 의료진(3), 행정지원(5) 등 21명으로 구성되며, 파견기간은 2주(상황에 따라 2차대 파견)다.

주요활동에는 피해지역 환자진료와 함께 피해지역 전염병 발생·확산을 방지하는 방역활동을 포함한다. 일본은 1995년 1월17일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은 뒤 재난의료지원단(DMAT)를 설립했다. DMAT는 영국의 재난대응 표준교육 프로그램(MIMMS)을 기초로, 일본의 외상표준프로그램(JPTECTM)을 재난의료에 응용해 재난의료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하고 있다. DMAT 교육이수자는 825명에 달한다. 또 DMAT는 의료용품 90상자(5t)와 진료 전용 텐트, 방사선 장비, 검사실 장비 등을 갖추고 나리타 국제공항 인근 창고에 보관중이다.

해외 재난의료 지원체계 문제점
우리나라 해외 재난의료 지원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먼저 약품 비축량이 부족하다. 전용기 또는 군용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일반 여객기를 이용함에 따라 개인수하물 규정에 묶여 많은 장비와 약품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아이티 의료지원팀은 지난해 제작해 국제보건의료재단 남양주 의료기창고에 보관하던 보관 약품을 가지고 나갔고, 2차 의료진파견 때는 비품목록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제약회사 계약목록을 참고로 800㎏ 이하, 2000만원 미만 범위에서 준비했다.

의료장비는 1차 진료만 가능한 청진기, 혈압계, 체온계 등 기본 장비만 있고, 이동용 초음파, 엑스레이(X-ray), 기본혈액검사 등은 전무하다. 진료시설로는 현지 진료를 위한 에어 텐트(Air-tent) 2동이 있지만 운송 문제로 아이티 현장에는 가져가지 못했다. 게다가 에어 텐트 자체도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사용이 힘들어지는 등 단점이 많다.

태풍, 지진 등 재난 종류와 재난 발생 후 긴급의료진 투입시기에 따라서 준비물품과 의료진의 구성이 달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재난 유형별 혹은 투입시기에 따른 준비가 부족하다. 일본재난의료지원단과 비교할 때 그 동안 우리나라 의료지원팀은 의사가 지나치게 많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진료 인력 불균형을 초래했다. 미얀마 사이클론 구호대에는 의사 7명, 간호사 8명, 약사 2명의 의료진이 파견됐는데 의사는 일반외과 2명, 내과 4년차 1명, 응급의학과 2명, 일반의 1명, 안과 1명으로 이뤄졌다.

현지에서 많이 필요했던 소아과, 피부과, 정신과 등의 인력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이티 2차 구호대에도 이비인후과 3명, 일반외과 1명, 응급의학과 2명, 내과 2명 등으로 역시 현지에서 절실히 필요했던 정형외과, 소아과, 피부과, 정신과 등의 인력을 포함시키지 못했다. 국내엔 해외긴급 의료지원만을 교육하는 과정이 있으나, 국내에서 발생하는 각종재난(생물학적 재난, 화학적 재난, 방사선재난 등) 에도 대응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재난교육과정의 신설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티 지진 긴급의료지원은 이란, 미얀마, 스리랑카 등에 대한 의료지원과 다른 문제점을 표출했다. 아이티는 행정력이 미비하고 UN군이 상주한 국가로, 해외로부터 긴급재난팀이 도착해도 재난구호팀의 안전이나 진료소 위치선정 등 모든 분야를 UN 국제기구와 협조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아이티에서는 국제기구와의 협조를 얻지 못하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는데 UN 현장활동조정센터(OSOCC)나 인도적문제조정사무소(OCHA) 등과 긴밀히 협조할 수 있는 체계를 형성하고, 정책적으로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렇게 개선해나가자
먼저 직능별 역할과 현지 활동에 대한 매뉴얼 제작할 필요가 있다. 체계적인 매뉴얼을 만들고 긴급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에 맞춰 의료품과 의료장비를 구비해야 한다. 독일, 스페인, 미국 등 의 의료캠프는 국가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진료현장에는 발전기, 철제 이동텐트, 조립식 간이 병상 등도 구비했다. 정부통제기능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정부 파견 해외 긴급의료진이 복귀하면서부터 각 NGO들이 활동하게 되는데, 이들의 진료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또 각 NGO별로 연락이 안 되고, 어디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 아이티 긴급의료에서 야전진료실(field clinic)이 아니라 야전병원(field hospital)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NGO가 공동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러면 인력과 의료용품, 재료 등을 절감 할 수 있으며 진료 효율성도 높이고, 한국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외긴급구호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국내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

국제적인 재난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전문요원이 부족하다. 해외긴급구호도 중요하지만 국내의 대형 재난 시 외국의 긴급구호 단체를 수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운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UN 또는 국제기관과 연계성 확보해야 한다. 재난 초기에(48-72시간 내) 현장에 신속히 도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긴급의료지원단의 파견 여부는 피해 당사국이나 국제기구의 파견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파견 결정이 이루어지면 재난지역에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전세기나 군용기가 고려되어야 한다. 미얀마 긴급의료지원에서도 진료에 필요한 의약품 대다수가 무게제한 때문에 한국에서 비행기에 실리지 못하는 바람에 급히 현지에서 약품을 구입해 진료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또 아이티 긴급의료구호에서도 1차팀에 같이 갔던 진료약품은 이미 현지 병원에 기증된 상황이었고 2차팀이 갖고 갔던 추가의약품으로는 독립된 진료를 할 수가 없었다.

도미니카 현지에서 의약품 및 진료재료를 급히 구매하였고 결국 진료 일정 5일 중 1일은 진료를 할 수 없었다. 진료활동에 충분한 약품과 진료재료를 가지고, 빠른 시간 안에 재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외운송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해외긴급재난 구호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그 결과는 국가경쟁력 강화 국익과 연계성을 가지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격에 맞는 의료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 증가가 필수적이다.

정부·국회 개선방안 마련하겠다
이날 공청회에서 전재희 장관과 신상진 의원은 정부와 국회에서 각각 해외 재난의료 지원을 포함한 해외긴급구호체제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그 내용을 소개했다. 정부에서 준비하는 ‘해외긴급구호체제 선진화 방안’과 2월1일 신상진 의원을 포함해 여야 국회의원 15명이 공동 발의한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개정안)이 그것이다. 전 장관은 “아이티 파견 의료지원팀 활동 평가회의에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지금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준비해나가지 않으면 추후 또 다른 해외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면서 “정부는 아이티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긴급구호체제 선진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장관에 따르면, 해외긴급구호체제 선진화 방안에는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 △긴급 파견시스템 구축 △예산 확대 △긴급구호 활동 전문성 강화 등이 포함됐다. 특히 의료지원팀의 경우 재난 유형별 필요 물자 사전 비축을 비롯해 해외재난 지역 파견 의료인력에 대한 교육 강화 및 의료진 풀 확충을 우선 추진 과제로 정했다고 전 장관은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전 장관은 “국제사회는 개발 및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재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재난에 개발도상국가는 더욱 취약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협력은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평상시 긴급의료구호 장비와 인력, 의료체계, 국제공조시스템을 확보해 해외 재난지역에 적극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을 줘 국격을 높이고자 함”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신 의원은 일본을 예로 들면서 사전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 의원은 “‘구호 선진국’으로 꼽히는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아이티 지진 48시간 만에 컨테이너 30여개와 20여명의 의료진을 비행기에 실어 보내 이동형 종합병원을 설치하고 첨단 통신장비를 통해 환자를 진료하는 등 체계적인 구호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 뒤 “이는 평상시 구호에 대비한 의료진 및 의료장비, 약품 등 의료자원이 잘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