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글로벌 보건의료 비정부기구(NGO)인 메디피스(MediPeace) 의료진 파견을 위한 선발대로 고은경 메디피스 전문위원과 함께 2월2일부터 19일까지 18일 동안 아이티를 다녀왔다. 필자가 아이티 구호활동을 통해 보고 듣고 겪고 느낀 바를 공유하여 보다 효과적인 재난 대응에 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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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길 메디피스 긴급구호팀

아이티에 일어난 지진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티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중앙아메리카의 열대 섬나라 아이티에 강진이 일어난 것은 2010년 1월12일 오후 4시53분(현지시각)이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남서쪽 약 15㎞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은 사망자 25만명과 부상자 30만명을 발생시킨 대재앙이었다. 또 가옥 25만채와 상업시설 3만채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틀 걸려 아이티 도착
지진 후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은 민항기 운항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인 도미니카를 통해서 육로로 입국해야 했다. 인천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도미니카 수도인 산토도밍고로, 산토도밍고에서 포르토프랭스까지 가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필자는 운 좋게도 한국 조계종 구호팀의 버스를 얻어 타고 포르토프랭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계종 국제협력팀, 불교계 NGO 더 프라미스(The Promise), 동국대병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조계종 구호팀은 아이티 입국 이후 지진 참사 현장에서 자비어린 눈부신 의료봉사를 펼쳤다.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포르토프랭스까지는 8시간이 걸렸다. 도미니카와 아이티의 국경은 아이티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과 아이티로 들어가는 구호인원과 물자를 실은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국경을 넘는데 여권검사조차 없었다. 국경을 넘자 바로 느껴지는 것은 도로의 차이였다. 도미니카는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주를 이루었으나 아이티는 도로의 포장상태가 비포장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열악해서 육로로 구호품을 실어 나르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로 향하는 길에는 중장비와 구호물자를 싣고 가는 국제연합(UN) 차량이 계속 눈에 띄었다. 포르토프랭스에서 내가 머문 곳은 지진 전부터 한국인들이 이-파워(E-power)라는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던 공사현장이었다.

시설이 전혀 없는 야전생활을 각오하고 갔는데, 비록 자갈밭이지만 둘레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비원도 있어서 안전이 확보되고 최소한의 씻을 시설과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으니 마음이 제법 놓였다. 이-파워 공사현장에는 도미니카 주재 공관 직원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이 파견되어 구호활동가들을 지원해주고, 대한적십자사 의료진, 기아대책, 더 프론티어즈(The Frontiers) 등 단체에서 나온 분들이 숙영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텐트를 설치하고, 매트를 깔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가져간 식량을 점검하는 등 채비를 단단히 갖춘 후에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현지 조사를 시작했다.

UN서 구호활동 주도
메디피스 선발대로서 내 임무는 현지의 피해상황을 정확히 조사하고 특히 어떠한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지를 파악하여 보고하고, 본대가 도착하면 지체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구호의 중핵을 맡고 있는 UN과 미군, 난민촌, 현지 병원, NGO, 타기관의 구호활동가 등의 접촉이 필요했다. 지진 이후 생존을 위한 구호품 약탈 등으로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를 동행하고 차량으로 이동할 것이 권고되었으나 해외 원조단체들이 갑작스럽게 많은 차량을 고용했기 때문에 차량 대여료가 급등한 상태였다.

그래서 대부분은 걷거나 현지인들이 시내버스처럼 이용하는 탑탑(tap-tap) 혹은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다녔다. 우리는 이틀 동안 차량을 빌려서 주요 난민촌과 이번 지진의 진앙인 레오간과 까르푸 지역을 다녀왔다. 열대지방인지라 뙤약볕을 아래서 조금만 걸어도 금방 지치고 또 시기가 건기인지라 먼지가 많아 도보로 조사를 다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구호에 필요한 정보수집을 위해 가장 먼저 간 곳은 UN 로그베이스(LOGBASE)라 불리는 UN기지였다.

아이티는 정치혼란으로 인해 1993년부터 UN 아이티 안정화 임무단(MINUSTAH)이 설치되어 UN군이 진주하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101명의 UN직원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아이티 정부가 지진으로 사실상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에 구호활동은 UN이 주도하고 있었다. UN의 구호활동은 치안, 의료, 식량, 식수, 난민, 아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 중 인도적문제조정사무소(OCHA)가 피해상황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배포를 담당한다.

텐트로 만들어진 OCHA 현장 사무소는 구호에 참가하는 NGO의 등록을 비롯하여 지진 피해상황, 이재민들의 이동현황, 병원 소재지 등 중요한 정보를 담은 지도 배포, 민간 구호기관들의 회의 조율과 기타 지원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었다. OCHA뿐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인구기금(UNFPA),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식량계획(WFP), 국제이주기구(IOM),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R) 등 유엔기관들이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구호활동을 벌였다. 국제적십자연맹(IFRC)과 각국 적십자사를 비롯해 국경없는 의사회(MSF) 등 전세계에서 찾아온 민간단체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국의 발빠른 아이티 지원
아이티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300만명에 달했다 하니, 아이티의 전체 인구가 약 900만명임을 감안할 때 아이티 사람 3분의 1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진도 7.0 정도의 지진이면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이라 말하기 힘들지만, 지진이 발생한 곳이 바로 수도 근처라서 피해가 심했다. 심지어 대통령궁, 국회, 재정부, 법원, 교도소, 유엔평화유지군 본부건물 등 주요 기관조차 지진으로 붕괴되고 수많은 정부 관료들도 죽음을 당했으니 말 그대로 한 나라가 풍비박산이 난 셈이다.

지진 발생 직후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고 미국, 프랑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긴급구조대와 구호물자를 파견하여 지진구호에 나섰다. 아이티 강진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구호를 위한 움직임이 신속히 시작되었다. 아이티에는 우리나라 대사관이 따로 없고 이웃 나라인 도미니카 대사관에서 아이티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로 도미니카 주재 한국 공관 관계자와 도미니카에 근무하고 있던 KOICA 단원들이 가장 먼저 아이티로 들어가 구호활동을 펼쳤다.

바로 뒤이어 소방방재청 중앙119구조대, KOICA 국제보건의료재단, 대한적십자사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조대가 아이티로 파견되었다. 민간단체들도 발 빠르게 움직여서 구호 노력을 더했다. 여러 종교 및 비종교 NGO가 의료진 및 전문구호인력으로 구성된 긴급구호단을 파견했고 한국인 특유의 신속함과 억척스러움 그리고 넘치는 정(情)으로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인프라 허술해 피해 증가
아이티 지진 피해가 심각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진원이 지표에서불과 10㎞밖에 떨어지지 않은데다 진앙이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서 20㎞도 안 되는 곳이었다. 수도가 통째로 강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것이다. 아이티는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세계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1804년 라틴아메리카 국가로는 최초로 흑인노예혁명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났으나 프랑스는 계속해서 아이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200년 동안 약 30번의 정변이 발생했을 정도도 정치적 혼란은 경제발전을 저해하여 아이티를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렇게 가난한 아이티 사람들이 내진설계를 생각하며 집을 짓고 살았을 리 만무하다. 그 지역에서 200년 만에 발생한 강진은 조악한 철근 몇 개가 들어간 콘크리트 기둥과 열악한 시멘트 블록으로 만들어진 허술한 건물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사람들은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다가 중장비가 없어 거의 맨손으로 더디게 이루어진 구조작업 속에 숨져갔다. 아이티는 또한 도로, 항만, 통신,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후 대응에 느릴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물품이 쇄도해도 이를 효율적으로 운송하고 분배할 만한 시설과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신속한 구호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피해가 늘어난 원인이다.

목불인견 아이티 참상
OCHA에서 기본 정보를 수집하고 피해상황 및 의료 활동 상황, 난민촌 현황파악에 나섰다. 발길 닫는 곳곳마다 크고 작은 규모의 난민촌이 들어섰으며, 운이 아주 좋으면 텐트, 그나마 운이 있으면 방수포, 그마저도 없으면 침대 시트, 이불, 비닐 등을 이용하여 얼기설기 만든 난민촌의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가족과 친지를 잃고 집마저도 부서진 사람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지진이 발생한지 3주가 지났기 때문에 지진 직후 방송으로 보도되었던 것처럼 시체가 나뒹구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도시는 아직까지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난민촌 책임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난민촌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텐트, 식량, 식수였다.

일부 난민촌은 자치기구를 구성해 순찰을 돌고 구호품을 배분을 위해 호구 등록을 하는 등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대표로 나와 구호기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형편을 호소했다. 내가 만난 난민 중 많은 수가 미국 구호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에서 나누어주는 쌀과 옥수수 등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외국인을 보면 물이나, 먹을 것 또는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곤 했다.

너무 열악한 의료환경
화장실 시설의 미비는 난민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됐다. 지진 전부터 위생관념과 시설이 부족했던 아이티 사람들은 지진으로 사회시스템이 마비되어 더욱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진 발생 직후 긴급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부상자들은 치료를 계속하지 못해서 2차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열악한 위생환경 탓에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은 전염성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모기가 많기 때문에 말라리아는 너무나 흔한 질병이고, 정수 처리된 식수가 부족해서 사람들은 상수도와 하수도가 잘 구분되지 않는 물을 그냥 마셨다. 수인성 전염병 창궐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적십자에서 아이들을 위해 예방약을 투약하고 있지만, 백신텐트 앞에서 예방접종을 위해 아이를 안고 기다리는 엄마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열대지방이라 상처가 한번 생기면 잘 낫지 않고, 한국이라면 항생연고 한 번 바르면 쉽게 나을 가볍게 긁힌 상처조차도 기초 의약품이 워낙 갖춰지지 않은 아이티에서는 심하게 곪곤 한다. 지진으로 시내 중심가에 있던 병원이 상당수 무너졌는데 대통령궁 근처에 있는 아이티에서 가장 큰 병원은 다행히 피해가 적어서 적십자를 비롯한 많은 해외 의료진이 그곳에서 진료를 펼칠 수 있었다. 몇몇 난민촌에는 민간단체의 이동진료소가 설치되어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환자는 넘쳐나는데 엑스선 등 검사장비가 부족하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원활한 전력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렵게 외국으로부터 가져온 고급의료장비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상태가 심한 환자가 찾아오면 그나마 시설이 잘 갖추어진 미군 병원이나 적십자 병원으로 보냈다. 지진에 부서지지 않은 병원 몇 군데를 돌아보았는데, 원래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지진이 아니었더라도 제대로 된 진료는 어려웠을 듯 싶었다.

아이티인 자립시스템 희망
아이티에서 한국 의료진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아이티는 프랑스어와 크레올(Creole)이라는 현지어가 공용어이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꽤 있었으나 진료는 대부분 통역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동국대 의료진 같은 경우는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에 200명에 달하는 환자를 진료했고,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파견된 인하대, 대한의사회 의료진도 외국 의료진이 놀랄 만큼 신속하고 우수한 실력을 발휘했다.

진앙인 레오간과 까르푸 지역은 피해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거의 모든 건물이 붕괴되거나 회복불능의 피해를 입어서 우리나라 평화유지군은 레오간에 주둔하여 복구를 지원하게 되었다. 다소나마 치안이 확보된 포르토프랭스와 달리 까르푸와 레오간은 아직까지 위험하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구호단체가 별로 들어와 있지 않았다. 항상 구호활동의 선두에 서는 적십자와 국경없는 의사회 외에는 다른 단체를 볼 수가 없었다. 여기 난민촌도 상황은 비슷했다. 텐트, 식량, 물이 필요했고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미군부대가 마련한 NGO모임에서는 원조를 줄 NGO와 원조를 받을 NGO 사람들이 만나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현지 NGO와의 접촉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많은 아이티 사람들이 해외원조를 체계적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의식 있는 아이티 사람들은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여 자립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원했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인력과 물자 지원이 필요하고 이런 문제들은 NGO들이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우리나라도 6·25동란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이런 상황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이티의 복구와 재건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사실 아이티에서 한국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헤아릴 수 없다. 아이티는 국가 시스템 전체를 개선해야 하는 나라이고 식량, 농업, 의료, 교육, 위생, 모자보건, 아동복지, 상하수도, 고아원, 도로, 전력, 산업투자 등 모든 방면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

지속가능한 구호활동 필요
우리나라의 뜻있는 사람들이 이번 지진을 통해 아이티 원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60년 전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이 오늘날 눈부신 성장의 열매를 맛보도록 만든 밑바탕은 바로 해외원조였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한국이 아이티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많다. 아이티 구호활동을 마치고 귀국할 때에는 UN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는 NGO관계자에게 제공하는 항공기 서비스(UNHAS)를 이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버스로 8시간 걸렸던 산토도밍고~포르토프랭스를 비행기로 단 1시간 만에 도착했다.

산토도밍고 공항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뉴욕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한국 스튜어디스가 영어로 말을 건네기에 내가 얼마나 햇볕에 타서 까매졌는지 알았다. 많은 민간단체가 아이티의 복구와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단체 사이 정보 공유와 협력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현지의 필요보다는 기부자가 원하는 대로 구호성금을 사용하기를 고집하는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마치 재난이 교세확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인 듯 선교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구호활동과 조직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일시적 과시성 구호활동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지속가능한 구호활동이란 넘어진 상대를 와락 안아 일으켜 주기보다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와 민간단체 모두가 이번 아이티 지진 구호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잊지 않고 더욱 성숙한 재난 대비 자세를 갖추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재난현장에서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최선을 다해 구호단체의 활동을 지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구호단체의 활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도 꼭 강조하고 싶다. 주도미니카 대사관 강성주 대사님을 비롯한 모든 대사관 직원들, 특히 이언우 영사님과 KOICA단원 송준권님은 필자가 아이티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계속 캠프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민간단체의 구호활동과 평화유지군 파병 등을 지원해주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다.

대한적십자 김재율님, 나종언님, 이재승님은 의료팀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다. 현장에서 목격한 적십자의 눈부신 활동은 그 동안 내는 것을 귀찮게 여기던 적십자회비를 앞으로는 꼬박꼬박 잘 내겠다고 결심하도록 만들었다. 기아대책의 김현석 간사님은 몸을 아끼지 않는 구호활동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현지에 계신 백삼숙 선교사님도 구호단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예정된 발전소 건설이 지연됨에도 불구하고 지진으로 고통받는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흔쾌히 건설 부지를 구호단체의 캠핑장으로 내주신 이-파워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