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이란 부제처럼 비극적인 돌고래 이야기를 아름다운 화면으로 그려냈다.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개봉됐던 이 영화는 환경재단이 5월20~26일 개최하는 제7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앙코르 상영될 예정이다.

< 재난포커스 - 서은미 기자 >

코브(Cove)는 ‘작은 만’이란 뜻으로, 일본 와카야마현의 어촌 마을 다이지의 작은 만을 이른다. 고래는 삼면이 깎아지른 듯 절벽으로 둘러싸인 다이지의 상징이다. 일본 포경업의 발상지라고 자랑하는 다이지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래박물관을 비롯해 돌고래와 범고래들이 펼치는 쇼를 볼 수 있는 고래공원도 있다. 다이지에선 400년 전부터 돌고래 잡이를 해왔다. 매년 9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다이지에서 진행되는 돌고래 잡이는 많은 돌고래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 돌고래 잡이 기간 다이지만(코브) 앞바다는 수시로 새빨간 색이 된다. 돌고래들이 흘린 피로 바다가 붉게 물드는 것이다.

돌고래 조련사서 보호주의자로
<더 코브>는 일본 포경마을 다이지에서 매년 벌어지고 있는 돌고래 잡이 실태를 몰래카메라로 비밀리에 찍어서 고발했다. 루이 시호요스(Louie Psihoyos) 감독 등 제작진을 안내하고 출연도 하는 등 <더 코브> 제작에 크게 이바지한 리처드 오배리(Richard O'Barry)는 돌고래 조련의 선구자로 꼽힌다. 오배리는 돌고래를 직접 잡아서 훈련을 시킨 뒤 1960년대 미국 유명 TV 시리즈 <플리퍼>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오배리는 자신이 조련했던 돌고래 ‘캐시’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숨을 끊었을 때부터 돌고래 보호주의자로 변신했다. 돌고래 조련사가 아니라 넓은 바다에서 돌고래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제캠페인을 펼치는 등 돌고래 보호운동가로서 맹활약중이다. 오배리는 “<플리퍼>를 제작하던 때에도 돌고래를 가두는 데 대해 마음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런 마음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 눈을 가렸다. 당시 나는 젊었고, 매력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플리퍼> 출연을 통해)매일 다른 포르쉐를 몰 수 있었고, 일은 하기 쉬웠다. 하지만 캐시가 죽었을 때 심장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돌고래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일본 돌고래 살리기’ 회장 등을 활동하며 거의 40년간 오락 목적으로 돌고래를 잡아 작은 탱크에 가두거나 식용으로 돌고래를 학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힘을 쏟았다. <더 코브>에선 루이 시호요스 감독과 수중촬영·녹음 전문가, 다이버 등으로 구성된 제작진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오배리의 안내에 따라 제작진은 다이지만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생생한 돌고래 잡이 현장을 스크린으로 옮길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돌고래 잡이 현장은 피가 난무했다. 다이지 사람들은 배 수십 척을 타고 소리로 귀가 예민한 돌고래들을 만에 가둔 뒤, 깊은 바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물을 치고 작살로 찍어댔다. 돌고래들은 작은 만 안에서 새빨간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

쇼 돌고래 평균수명 2년 불과
국제포경위원회는 1986년부터 상업적 포경을 금지했다. 하지만 돌고래는 ‘작은 고래’로 분류돼 포획이 허용됐다. 돌고래 포획도 막아야 한다든 보호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일본은 가난한 회원국들에 대한 원조 등을 통해 국제포경위원회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이지를 포함한 일본에선 매년 돌고래 2만3000마리가 포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일본은 해마다 이처럼 많은 돌고래를 잡는 걸까? 돌고래를 잡으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오배리에 따르면 전세계 돌고래 사업은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하며 일본은 돌고래 사업의 중심국이다. 미국에서만 20억 달러에 이르는 돌고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일본이 돌고래 사냥을 계속할 수밖에 없게 하는 주범인 셈이다. 일본에서 잡히는 돌고래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돌고래 쇼를 위해 조련되거나 수족관에서 사육되는 어린 돌고래들은 당장 죽음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식용으로 학살된다.

돌고래 쇼용은 보통 마리당 15만 달러(1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식용은 600달러(68만원) 헐값에 팔린다. 그런데 사람들을 위해 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몸값 비싼 쇼 돌고래들도 평균 2년 정도만 버티다가 죽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오배리는 “다이지의 잔인한 사냥에서 살아남은 돌고래의 53%가 90일 이내에 죽고, 남겨진 돌고래들도 우울하고 기가 죽은 상태로 대중을 위해 물탱크에 갇혔다가 결국 다른 나라 놀이동산, 동물원, 수족관 등으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오배리는 또 돌고래 쇼나 수족관 전시할 목적으로 돌고래를 사러 다이지 등을 찾는 조련사들에 대해 따끔하게 꼬집었다. 그는 “많은 조련사들이 매년 다이지만에서 펼쳐지는 참상을 ‘돌고래에 대한 조사와 교육을 위한 것’이란 명분 아래 정당화시킨다”며 “하지만 어떻게 30명이나 되는 조련사들이 어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뻔히 알면서도 패닉 상태에 빠진 돌고래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돌고래고기는 수은덩어리
<더 코브>는 돌고래 사냥에 대한 윤리 의식뿐 아니라 일본에서 유통되는 돌고래 고기가 수은 등을 함유해 이를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강조한다. 조사 결과 바다 속 생태계 먹이사슬 가장 위에 자리한 돌고래는 수은, 메틸수은, 카드뮴, 디디티(DDT), 피시비(PCB) 등 유해물질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악의 수은중독 피해는 일본 미나마타 지역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으로, 이 병을 유발한 물질은 돌고래 고기에 함유된 염화메틸수은(메틸수은)이다.

특히 돌고래 고기는 미나마타병을 불러온 미나마타 지역 물고기보다 수은 함유량이 높았다. 이에 대해 영화에선 또다시 일본 다이지 등에서 생산된 돌고래 고기가 ‘제2의 미나마타병’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오배리는 “우리가 발견한 사실은 돌고래 고기가 독과 같다는 것이지만 일본국민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년 다이지만에서 일어나는 돌고래 사냥은 일본인들에게 고기를 제공할 목적이 분명하다.

일본 근해의 돌고래, 참돌고래, 고래 등은 메틸수은에 심하게 오염됐다. 2006년 12월26일 오쿠와 수퍼마켓은 136개 전 지점에서 돌고래 판매를 금지시켰다. 일본인들에게 유독한 고기를 판매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에 전국 상점에서 돌고래 고기 판매금지를 요청하고 다이지 등의 돌고래 어부들도 돌고래 판매를 멈추길 바란다”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쇼 도중 심장마비로 죽은 돌고래
돌고래는 지능이 높고 자의식을 가지고 있어 그 어떤 동물 이상으로 사람과 교감한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인 동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돌고래 피부는 사람과 비슷해 매우 예민하고, 쉽게 상처가 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돌고래는 사람처럼 유머와 열정 등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괴로움을 느끼고 건강이 나빠진다고 한다. 전문 조련사의 조련을 거친 돌고래는 보통 약 90개의 사인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놀이공원·동물원·수족관 등에서 쇼를 하는 돌고래들이 사는 수족관은 운동부족과 영양결핍, 권태 등으로 고통 받는다는 게 오배리의 설명이다. 오배리는 “화학물질 가득한 인조 해수 수족관은 돌고래를 질식시키고 소음으로 귀를 멀게 한다”며 “돌고래를 잡아 콘크리트 통에 가두는 것은 돌고래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과 소리를 빼앗아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물원에서 공연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돌고래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전했다. “쇼가 진행될 때 돌고래 ‘신밧드’는 미소를 지으면서 무대로 뛰어올라 박수를 받았지만 공연도중 심장마비로 죽었다.

신밧드의 죽음을 모르는 관람객들은 쇼가 끝날 무렵 미소 지은 돌고래가 행복해 보여 박수를 쳤다. 그리곤 시체를 보면서도 행복한 돌고래라고 생각하면서 자리를 든다. 포획된 돌고래는 동물원의 다른 동물보다 훨씬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전설>은 3월8일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에 앞서 2009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 8번을 받으며 관객상을 수상했고, 2009 시애틀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2009 시드니 영화제 관객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