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월26일 발생해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고 슬픔에 잠기게 한 해군 천안함 침몰 사고에 가려 사고 직후 곧 잊혀지고 말았지만, 지난달 유럽에선 엄청난 대재난이 있었습니다. 4월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정부 각료와 수행원, 승무원 등 132명이 탄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해 탑승자 모두가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빚어져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에 충격을 안긴 사건입니다.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이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옛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폴란드군 2만2000명이 처형되고 집단 매장된 러시아 카틴숲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전용기에 올라 바르샤바를 이륙한 탓에 폴란드인들의 슬픔이 컸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제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투폴레프(Tu)-154 추락원인이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러시아 스몰렌스크 주 페체르스크 시 세베르니 비행장 착륙하려 했기 때문이라지요. 이를 보고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으로, 목숨의 길고 짧음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명은 재천이다”고 말하곤 하지요. 지난 2월말 국회에서 열린 한 공청회에 참석한 대학교수 한 명이 ‘안전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명재천이란 말이 우리 국민의 허술한 안전의식을 대변한다고 지적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안전문화가 성숙된 사회에서는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린 게 아니라 관리하기 나름”이라고 그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1993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목포공항에 무리하게 착륙하려다 추락해 66명이 숨진 사고를 예로 들더군요. 악천후 속에서도 안전을 경시해 위험을 무릎 쓰고 착륙하려던 게 사고 원인이었다는 겁니다. 당시 사고 여객기 기장은 활주로가 짧은 목포공항에 무리하게 착륙하려 했는데, 결국 3번째 착륙을 시도하다가 참사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월10일 추락한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와 같은 경우지요. 공청회 때 그 교수는 “어느 항공사 사장이 우리나라 안전문화의 현 주소를 단적인 말로 나타낸 적이 있는데, 그 사장은 우리 국민이 인명재천이란 말을 너무 신봉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더라”고 소개했습니다. 외국의 경우 ‘어느 항공사 비행기가 정비에 문제가 있다’거나 ‘착륙하다가 사고가 터졌다’는 보도가 나오면 승객들이 다른 항공사로 몰려가는 현상이 뚜렷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에도 승객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게 인명재천이란 말을 신봉하기 때문이란 겁니다.

그 교수는 “인명재천이란 말이 ‘안전은 확률’이라는 기본적인 개념도 없는 일반적인 우리 국민의 인식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안전문화 정착이 가장 먼저 선결돼야 할 필수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가 올해부터 안전문화 선진화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하니 모쪼록 행안부 뜻대로 잘되기를 기대합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