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2일(현지시각) 아이티(규모 7.0), 2월27일 칠레(규모 8.8), 4월4일 멕시코(규모 7.2), 4월7일 인도네시아(규모 7.8). 올 들어 발생한 규모 7.0 이상 강진들이다. 최근엔 4월14일 중국 칭하이성 위수티베트족자치주에서 규모 7.1 강진이 발생해 4월21일 현재 2000명 이상이 숨지고 1만2000여명이 다쳤다. 이처럼 지구촌이 지진 공포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참여해 지진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4월7일 국회에서 열렸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지진과 사이버테러 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국회의원과 학계 등으로 이뤄진 안보·방재포럼이 마련한 창립토론회였다. 안보·방재포럼 대표를 맡은 송영선 의원(미래희망연대)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지진이나 테러의 위협은 언제 어느 때 닥칠지 몰라 예측하기 어렵지만 방재시스템을 철저히 해두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중국, 아이티 및 칠레 등에서 대규모 지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유발했으며, 지난 2월9일에는 수도권에서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해 국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정확한 지진전망과 대책을 논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일본보다 안전…위험한 건 마찬가지”
이날 토론회는 1부 ‘한국 지진의 안전지대인가?’와 2부 ‘보안사각지대 전자금융, 대응책은?’로 나눠 진행됐다. 지진대책을 다룬 1부 토론회엔 강병화 소방방재청 방재관리국장, 김동수 카이스트(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진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지헌철 연구원은 한반도의 지진학적 환경과 국내외 지진 방재 현황에 대한 기조발표를 통해 한반도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며 지진대책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와와 함께 유라시아판 위에 자리한 중국에서 발생한 헤이천 지진(1975년)과 당산지진(1976년), 쓰촨성 지진(2008년) 등을 분석한 뒤 한반도는 중국보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내진설계 기준 등 지진 대책 수준이 낮아 지진에 취약한 것은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지 연구원은 국내 지진 대책 수준을 지적했다. 그는 1995년 1월7일 발생한 일본 고베지진(규모 7.2)을 예로 들며 지진이 발생하면 도시가스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베지진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 오사카 가스회사 등은 지진계 설치와 블록화를 통해 철저한 지진대응시스템을 갖췄지만 국내 가스회사들은 지진 대책에 거의 무관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서 지진나면…도시가스 시설 위험천만”
예컨대 오사카지역의 경우 가스 블록 기준이 넓이에 상관없이 5만~5만5000호여서 모두 125개 지역을 블록화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가스 블록 기준은 20만호 이상인 탓에 55개 지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진계의 경우 오사카에만 238개를 설치됐지만 국내는 34개에 불과하다는 게 지 연구원의 설명이다. 지 연구원은 특히 국내 가스회사들이 지진대책에 거의 무관심한 상태여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한국가스공사와 도시가스사로 분리돼 가스 배관망을 관리하고 있는 탓에 지진 대응이 미흡하다”며 “특히 지진이 천재지변으로 분류돼 ‘피해를 입으면 국가에서 보상해주는 데 왜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가’라는 게 도시가스회사들 입장”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도시가스사에 대한 지진방재 시스템 구축 관련 세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지 연구원은 제안했다. 그리고 다세대주택이나 빌라 등 국내 저층주거용 건물을 보면 대부분 도시가스 배관시설이 1층에 집중적으로 노출돼 있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진이 발생하면 무조건 1층이 무너지는데 위험시설이 모두 1층에 집중됐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내가 직접 집을 지어서 말짱하다”
지헌철 연구원은 “5층 안팎의 건물이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며 국내 내진설계기준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앞서 지 연구원은 <건설저널>을 통해 “한반도에서 (지진)발생 확률이 낮더라도 예상 최대 규모보다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지진대비책은 각종 주요 시설물뿐 아니라, 일반 구조물에도 내진설계를 보다 확실히 적용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구조물에 대한 내진보강방법이 개선돼야 하며, 이는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대만 ‘치치(集集)지진’을 예로 들며 내진설계뿐 아니라 정확한 시공과 감리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치치지진은 1999년 9월21일 대만 중부 치치시를 강타한 강진(규모 7.3)으로, 사망자 2455명에 약 26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 지진이 발생한 직후인 1999년 10월3일부터 6일까지 지진피해 지역을 찾아 현장조사를 했던 지 연구원은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하며 내진설계보다 제대로 짓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 연구원에 따르면, 대만 지진전문가와 함께 치치지진 피해 현장을 찾았을 때 주위 건물이 모두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짱한 집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 집주인에게 “어떻게 당신 집만 무너지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다른 집들은 집장사가 지어서 무너졌지만 내 집은 내손으로 직접 지어서 말짱하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지 연구원은 내진설계기준을 강화하고 제대로 시공·감리하면 내진설계기준의 3배까지 건축물이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정부차원 지진대책 마련하자”
그는 이어서 “1층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내 다세대주택에 많이 적용된 필로티 방식 4~6층 건물이 규모 6~7 지진에 매우 취약하다”며 이들에 대한 내진 보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 연구원은 인천국제공항의 활주로 시추공 가속도 센서, 여객터미널 지진기록계 및 가속도 센서 등을 통한 실시간 지진감시시스템과 철로 고가 교각 내부 등에 설치된 고속철도(KTX)의 실시간 지진감시시스템을 지진대책의 모범사례로 들었다. 이들은 법률로 정해진 규정이 없었음에도 최고책임자(CEO)의 관심과 의지에 따라 첨단 지진대응시스템을 갖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기조발표를 정리하면서 지 연구원은 인구증가와 산업고도화 등에 따라 지진재해가 대형화되는 추세여서 지진학적 주요 단층대에 대한 정밀 지진모니터링 및 연구 필요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특히 부처별 지진대응협조체계 구축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다. 현재 지진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소방방재청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관련 부처가 모두 관심을 가지고 범정부 차원의 지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진대책에는 구조물별 내진설계 기준의 적정성, 내진설계기준 강화에 따른 기존 구조물 내진성능보장 방안, 라이프라인별 지진대응시스템 구축 및 국가지진대응시스템 연계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존·저층 건축물 내진대책 주력”
강병화 소방방재청 방재관리국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소방방재청의 지진재해 대응능력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며 앞으로 중점 추진할 과제를 설명했다. 강병화 국장이 소개한 중점추진과제는 △기존 및 저층(1~2층) 건축물 내진대책 마련 △동해안 지역 지진해일 대책 마련 △지진재해대응시스템 고도화 및 지진방재교육훈련 강화 세 가지. 강 국장에 따르면, 먼저 기존 및 저층 건축물 내진대책과 관련해 내진설계 대상에서 빠진 3층 이상 기존 민간 건축물을 대상으로 내진보강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고, 내진보강 시 인센티브 제공 방안 제도화를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한다.

1~2층 저층 건축물 내진보강 대책은 단계적으로 추진해 단기적으로 권고 및 인센티브 제공, 지진재해대책법 개정 등을 통해 자율시행을 유도하고, 장기적으로는 건축법을 개정해 내진보강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토해양부와 건축법 개정, 행정안전부와 지방세법 개정을 협의하겠다는 게 강 국장 설명이다. 또 교정시설(교도소)을 내진대상에 추가하고, 학교시설 내진 등급을 현행 1등급에서 특등급으로 상향조정하며 병원시설, 삭도·궤도시설 등에 대한 내진설계기준 제정도 추진키로 했다.

동해안 지역 지진해일 대책으로는 지진해일 전파모델 개발을 통해 올해 4개소 내년 11개소 등 2014년까지 동해안 41개 지역 침수예상도 연차적으로 작성할 계획이다. 동해안 등 지진해일 취약지역 지진해일대응시스템도 2014년까지 구축해 해역에서 지진발생시 침수예상지역의 상황전파, 주민대피로·대피장소 지정관리, 대피훈련 등에 활용한다.

이어서 강 국장은 핵심시설 피해예측 및 구조·구급 기능 추가 등 지진재해대응시스템 고도화작업을 올 12월까지 끝마쳐서 상황전파 및 대응 기능보강을 통한 최단시간 내 지진현장 출동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민방위 훈련, 지역단위 방재훈련시 지진(지진해일) 대응훈련을 강화하고 보여주기식 훈련에서 벗어나 시스템을 활용한 종합훈련, 주민참여 홍보를 통한 실제적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내진설계기준 신뢰성 제고해야”
김동수 카이스트 교수는 현행 국내 내진설계기준 변천과정을 설명한 뒤 내진설계기준 개선방안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김 교수 발표내용을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1971년 최초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내진설계 규정을 법규화하고, 1985년 멕시코지진의 엄청난 피해에 자극을 받아 1988년 6층 이상 건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시작했다. 일본 고베지진 후인 1996년 한국지진공학회가 설립되고 1997년부터 내진설계기준연구가 진행돼 댐, 교량, 항만 등 공공 시설물에 대한 상위개념의 내진기준이 마련됐다.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기준은 2005년에 3층 이상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2009년 지진재해대책법이 발효돼 종합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이어서 김 교수는 현행 국내 내진설계기준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진하중을 결정하는 지진위험도와 지반분류에 대해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역사지진 자료를 바탕으로 재현주기별 지진위험도를 작성해 암반 노두의 가속도로 사용중이다. 하지만 과거 지진피해 기록은 사람이 거주한 평야지대에서 얻은 기록으로 암반 노두의 지진강도보다 1.5~2배 정도 증폭됐을 가능성이 있기에 국내 지반특성을 고려한 지진위험도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진이 발생하면 같은 도시 안에서도 하부지반 조건에 따라 지진하중 크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현행 국내기준은 미국 서부해안 지역의 지반조건으로부터 작성된 UBC(Uniform Building Code)를 그대로 옮겨와 우리나라처럼 기반암 깊이가 얕은 경우 건물에 작용하는 하중을 과대 또는 과소평가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지반조건에 맞는 지반분류와 지반계수 산정방법을 마련해 신뢰성 있는 지진하중 산정이 필요하다.

“내진설계 검증할 실증실험 필요”
김 교수가 두 번째 지적한 것은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저층구조물 안정성 확보문제다. 김 교수는 “5층 이하 건축물은 거의 내진설계 적용이 안 됐지만, 대부분이 지진에 취약한 조적식이어서 국내 지반조건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큰 지진력을 받을 수 있고, 시공 상태도 좋지 않아 지진 발생 시 큰 인명 및 재산피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저층 구조물은 대부분 민간 소유인 탓에 자체 보수보강이 어려워 정부에서 인센티브나 보조금 지급을 통해 보수보강을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성능기반 내진설계와 대형실험시설을 이용한 검증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진선진국에선 성능기반 내진설계가 주된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능기반 내진설계는 국가와 사회, 발주자에게 다양한 목표성능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설계자에겐 선택한 목표성능을 만족시키는 설계가 되도록 한다. 국내에 이를 도입하기 위해 구조물의 요구성능 및 목표성능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고, 이를 만족하기 위한 설계절차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진설계가 적용돼 지어진 구조물이 지진발생 시 설계된 대로 견딜 수 있는지 검증하려면 실제로 지진이 발생해야 하는데,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는 피해를 부를 만큼 큰 지진이 없어 내진설계를 검증하기 어려웠다. 지진선진국에서는 대규모 진동대 시설에 실대형 건물을 탑재한 지진실험을 통해 내진설계를 검증하는 실증시험을 하고 있다. 국내에도 국토해의 지원으로 분산공유형 대형 실험시설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실험시설들을 활용한 지진 실증실험이 활성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