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방재청 국립방재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색다른 연구를 시작했다. 옛 지명 연구를 통해 재난특성을 반영한 지역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앞으로 지역개발과 재해위험지구 관리 등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방재연구원 연구팀은 ‘온고지신형 방재대책 수립 방안 연구’(온고지신 방재 연구)란 이름으로 지난해 3개월간 연구를 진행했다. 방재연구소를 찾아 연구결과와 향후 계획에 대해 알아봤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 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엮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따라서 온고지신 방재 연구는 조상의 지혜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 재해를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온고지신 방재 연구팀도 이 연구의 목적이 “우리나라 옛 지명과 첨단기술을 병행해 조상의 지혜로부터 합리적 재난관리체계 강구”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 과거 홍수와 가뭄기록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해 현재 기록을 보완하는 작업과 병행해 목민심서, 조선왕조실록 등으로부터 재난관리정책 개선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명 연구해 방재대책에 활용
연구팀은 “지명은 특정 장소에 대한 인간의 시공간적 이미지와 심상부터 생활권 주변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해현상에 이르기까지 생활환경 전반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표현이자 역사·문화적 산물”이라고 지명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연구팀은 지명 안에 깃들어 있는 각종 재해현상에 주목했다. 때문에 연구도 포함된 재해관련 지명어를 찾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재난특성을 반영한 지역을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위함이었다.

연구팀은 먼저 지도와 문헌, 인터넷 자료를 대상으로 재해관련 지명어를 조사하고 분류했다. 그리고 지명어 검색과 분석을 위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지역별, 유형별로 지명 분석 작업을 거쳤다. 연구팀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진행한 연구를 통해 모두 128개 재해관련 지명어를 뽑아냈다. 128개를 자연재해에 따라 분류하면 대기권 36개, 수권 47개, 암석권 31개, 기타 14개 등이다. 국내 지도를 통해 128개 재해지명어를 분석한 연구팀은 오만분지일 지형도에서 모두 3989개의 지명을 찾아냈다.

재해지명어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라남도로 657개로 조사됐다. 이어서 경기도 634개, 경상북도 567개, 충청남도 522개, 전라북도 478개, 강원도 425개, 경상남도 342개, 충청북도 289개, 제주도 75개 순으로 나타났다. 재해지명어 따뜻할 온(溫)은 충남, 경기, 전남 등에서 많이 발견됐다. 반면 찰 한(寒)·냉(冷)은 강원, 전남, 충북, 경북 등에서 우세해 위도에 따른 남북 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 풍(風)자가 들어간 지명은 전남지역에 특히 많았고, 안개 무(霧)는 경남, 홍수 홍(洪)은 강원과 충남, 파도 파(波)는 전라도와 충남, 물결·파도 랑(浪)은 경기와 전남, 소금 염(鹽)은 충남과 전남, 경기, 눈 설(雪)은 경기와 강원도 등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과 관련해선 마를 건(乾)이 경기, 전북, 충남, 경북 등에서 우세했고, 여울 탄(灘)은 충북, 경기, 강원에서, 모래 사(沙)는 경북, 전남, 경기, 충남 등에 많았다.

방재 관련 지명에서도 둑 제(堤)의 경우 전북과 경북에서 탁월한 반면, 막을 방(防)과 쌓을 축(築)은 경기, 충남, 전남에서 우세했다. 그리고 둑 언(堰)과 보 보(洑) 지명은 충남에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불 화(火), 물 수(水), 비 우(雨), 질박할(들) 야(野), 수원 원(源) 등은 지명 개수와 상관없이 전국적인 분포를 보여 지역적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4대강유역 소하천중심 연구 계획
연구팀은 사례지역 연구를 위해 서울을 비롯해 전북 김제, 충남 천안 연기 등을 찾아 현지조사를 했다. 한반도 서해안에 접한 기복이 매우 작은 전형적 평야지형으로 국내 대표적인 곡창지대 가운데 한 곳인 김제 지역에선 지형적 특성 탓에 내수의 범람에 의한 홍수피해가 많아 하천의 범람과 관련된 지명어를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서 뽑아내 재해위험도와 비교했다. 김제시의 경우 화포리(火浦里), 용수리(龍水里), 수록리(水祿里), 홍산리(洪山里), 평사리(平沙里), 고사리(古沙里), 제월리(堤月里) 등 7개의 재해 관련 지명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고사리는 저지대에 자리해 상습적으로 침수가 일어나는 지역으로, 1910년대 발행된 지형도 에선 습지 또는 갯벌로 표시된 곳이다. 그리고 상수(上水)내 하수(下水)내는 현지조사 결과 확인된 지명으로, 재해 지명어인 수(水) 자가 이름에 포함된 마을이다. 한강은 과거에 홍수가 자주 발생했으며, 이 지역에서 발견된 홍수관련 지명을 1925년 을축(乙丑)년 홍수 때 범람한 지역을 지도에 표시했다.

	온고지신 방재 연구의 필요성과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국립방재연구소 정태성 박사(정보분석센터장).

현재 경인운하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굴포천(掘浦川) 주변으론 벌말로 불리는 상야리(上野里)와 하야리(下野里) 주변이 1925년 을축년에 범람했고, 김포대교 아래 신곡양수장이 대규모로 증축된 이후인 1984년에도 범람한 바 있다. 일산 송포지역에선 상습침수구역으로 지도면(知道面)과 내곡리의 섬말(島村) 등이 있으며, 상류쪽 창릉천을 따라 벌말과 강매리(江梅里)라는 두 개 지명이 재해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양주군과 구리시 주변도 을축년 홍수 때 상당한 면적이 침수되었으며, 지명으로는 수석리(水石里), 수택동(水澤洞), 토평동(土坪洞) 등이 확인됐다. 그밖에 한강 하구에 인접한 지역 가운데 재해지명어에 해당하는 석탄리(石灘里), 후평리(後坪里), 하사리(霞沙里), 도사리(道沙里), 수참리(水站里) 등도 범람 지역에 해당된다. 방재연구소 정태성 박사(정보분석센터장)는 이 연구를 통해 미래 재난 가능성을 알 수 있어 대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태성 박사는 성신여대, 연세대 등이 수행한 온고지신 방재 연구에 용역감독관으로 참여했다. 정 박사는 “과거 경험을 무시해선 안 된다”며 온고지신 방재 연구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문제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명은 경험”이라면서 “성과를 당장 써먹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래의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구”라고 말했다. 앞으로 연구 계획에 대해 정 박사는 “4대강유역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며 올해는 4대강 가운데 낙동강의 소하천유역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