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리비아, 인도 등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여객기 추락사고가 일어나면서 항공안전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이은 항공사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공항에선 날마다 수많은 여객기가 뜨고 내린다. 그 여객기들엔 수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깃들어 있다. 하늘 위에서 재난 위기를 맞은 여객기를 배경으로 봄바람처럼 산뜻한 웃음을 실어 보내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 재난포커스 - 안재근 기자  ajg@di-focus.com >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전일본항공(ANA) 소속 호놀룰루행 여객기가 이륙한다. 기장 승격시험을 앞둔 부기장 스즈키(다나베 세이치)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베테랑 기장 하라다(토키토오 사부로)와 함께 비행에 오르고, 수시로 주어지는 기장의 테스트 앞에 극도의 긴장감을 느낀다. 국제선 데뷔를 하는 스튜어디스 에츠코(아야세 하루카) 역시 무서운 팀장 밑에서 승객이 주문한 서비스를 뒤바꿔 기억하는 등 실수를 연발한다. 고객담당업무와 후배교육업무를 동시에 맡아 정신없이 바쁜 나츠미(타바타 토모코)는 어리버리한 동료와 끊임없이 밀려드는 탑승객들의 불평 때문에 항상 골머리를 앓는다. 그런데 좌충우돌 사건 속에서 호놀룰루로 향하던 여객기에 갑자기 기체결함이 발생한다. 도쿄 관제탑에선 긴급 회항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과연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이들의 행복한 비행
<해피 플라이트>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 부분을 통해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포스터와 카피문구에서까지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의외로 코미디의 비중이 적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코미디영화이다. 때문에 배꼽이 빠질 만한 웃음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크게 터지기보다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일본 코미디영화 특유의 잔잔함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그들의 삶이 녹아든 ‘끈끈한’ 웃음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보통 기껏해야 90~120분 분량의 영화 내에서 수많은 인물들과 상황을 등장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드라마나 시트콤과는 달리 영화는 하나의 주제를 잡고 그를 뒷받침하는 굵은 줄기의 중심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등장인물과 상황이 많아질수록 산만해지고 초점이 흐려져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해피 플라이트>는 항공 관련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일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폭넓게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무리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의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디테일이다. 치밀한 취재 없이는 그릴 수 없는 여객기 운항의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내 관객들이 여태껏 쉽게 알 수 없었던 정보를 전달한다. 비행기 하나가 이륙해서 목적지에 착륙하기까지, 또한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기장, 승무원, 관제팀, 조류제거팀, 정비팀, 통제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컴퓨터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 관제팀 베테랑 직원과 지상근무의 지루함에 진저리치는 젊은 스태프 등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평소 어떠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지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감독은 2년여에 걸친 취재기간과 100명이 넘는 항공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객기 운항의 모든 그림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주인공이 전하는 안전 메시지

	* 2009년 7월 국내 개봉 뒤 DVD로 출시됨.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전작 <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 등과 같이 유쾌한 등장인물들과 따뜻한 분위기를 통해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주는 데 성공했다. 지난 두 작품이 성장기 청소년들의 일상을 담았다면, 이 영화에서는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서 분투하고 있는 어른들의 성장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꾸지람을 듣고 화장실에 틀어박혀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하고, 간단한 일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어른들.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연발이지만 그들의 노력을 통해 세상은 안전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각자 맡고 있는 일들은 작게 보이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부품이 되어 하루를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가 된다는 것이다. 주연은 일본드라마 <백야행>과 <호타루의 빛>, 영화 <싸이보그 그녀>등의 주연을 맡아 일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인기배우 아야세 하루카가 맡았다. 그녀는 2007년 작 <호타루의 빛>에서 ‘건어물녀’ 돌풍을 일으키며 20대 일본여성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건어물녀’는 ‘초식남’과 함께 쓰이기 시작한 신조어로, ‘연애나 사랑에 관심 없이 휴일에 집에서 TV를 보고 뒹굴며 건어물을 씹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딱히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 없는 이 영화에서 그녀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첫 비행의 긴장과 설레임을 동시에 겪는 신입승무원의 역할을 매력적으로 소화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아야세 하루카가 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는 관객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