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진 농어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상 현상으로 국내 많은 농가가 냉해와 일조 피해를 입었다. 어민들도 지구온난화에 따라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해파리가 기승을 부리고 적조가 잦아져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한국농어촌공사(사장 홍문표)와 기상청(청장 전병성), 국회환경포럼(대표 박주선 의원)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어업?농어촌 국민 대토론회’를 6월1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했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기후변화는 농어민들에게 재난이나 다름없다. 생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탓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상 현상과 지구온난화로 농어업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농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봄에도 이상저온 현상으로 토마토 착과율이 절반에 머물고 감 생육이 평년보다 늦어지는 등 농작물 피해가 잇달았다. 기후변화는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별·농작물별 재배면적의 변화를 불렀다. 어업도 마찬가지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한반도 연근해에서 잡히는 어종이 크게 바뀌었다.

기후변화와 국내 농어업 환경변화
기후변화가 국내 농어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대한민국’을 보면, 기후변화에 따른 국내 농어업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농특산물 지도가 크게 변한 모양새다. 통계로 보는 대한민국에서 통계청은 “지구온난화로 한반도 내 아열대 기후대가 증가하면서 온대 과일인 사과 재배 면적이 감소한 반면에 복숭아는 온난화에 따라 재배 주산지가 경북에서 충북, 강원 등으로 북상”했다고 설명했다.

온도가 높아져 복숭아 재배지역이 늘어났으나, 사과는 국내에서 농사짓기 어려운 과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아열대 과일로 제주도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던 감귤도 오래 전부터 ‘제주 특산물’로 불리지 않는다. 전남, 경남 등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농가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일뿐 아니라 곡식의 주산지 지도도 바뀌고 있다. 쌀보리 주산지가 전남에서 전북으로, 가을감자는 강원도까지 북상했다. 강원도가 감자로 유명하지만 여름감자였을 뿐 가을까지 감자농사를 지을 수 없었는데 이젠 가을감자를 재배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녹차재배도 전남 보성에서 강원도 최북단 고성으로까지 확대됐다. 기후변화는 국내 농업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수온이 올라가 오징어·고등어·멸치·청어 등의 어획량이 늘어났다. “1970~80년대 오징어와 청어의 어획 비율은 15%에도 못 미쳤으나, 2008년엔 60.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통계청은 또 “온수성 어종인 오징어는 주 어장인 동해는 물론 수온 변화로 이동경로가 바뀌면서 서해에서도 많이 잡히고 있으며, 섭씨 15~19℃에서 서식하는 대표적인 온수성 어종인 고등어와 멸치도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어획량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주요 냉수성 어종인 명태와 도루묵의 어획량은 크게 줄었다. 1970~80년대 동해의 전체어획량에서 40%를 차지했던 명태·도루묵은 2008년 1.2%로 감소하고 말았다. 특히 과거 동해의 대표적 생선이었던 명태는 이제 국내에선 거의 잡히지 않게 됐다.

올봄 이상저온으로 농작물 피해
6월18일 농어촌공사와 기상청이 마련한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어업?농어촌 국민 대토론회’는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농어업 관련 기관·단체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농어촌공사는 “기후변화가 농어업·농어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 관련 기관·단체와 함께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대안 수립의 계기 마련”이 토론회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홍문표 농어촌공사 사장은 이날 토론회 개회사를 통해 “올 들어 이상저온과 일조량 부족 등으로 많은 작물에서 수확량이 감소하고 병해충이 증가해 농산물 생산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경북 성주의 참외를 비롯해 수박, 복분자, 배, 복숭아 등 과일과 감자, 고추, 마늘 등 거의 모든 농산물이 심각한 이상저온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또 “기후의존 산업인 농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후변화에 대해 종합적인 관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전략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농어촌공사는 가뭄과 홍수, 농업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기반을 정비하고 농업분야 저탄소 녹색성장을 통해 선진국형 농업으로 발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악속했다. 홍 사장에 이어서 전병성 기상청장은 “기후변화 위기의 시대를 맞아 우리 생존과 직결된 먹거리의 안정적 수급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농림수산정책, 기후예측과 농업연구 기능 사이의 융·복합 연구와 협력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유의존 줄이고 친환경으로 가야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우기종 기획단장은 ‘기후변화에 대비한 한국 농어업의 지속발전 전략’이란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농어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농어업 부문 녹색성장 추진계획을 소개했다. 우 단장은 농어업 녹색성장을 녹색성장 위해 9대 실천과제와 50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라 밝혔다.

2013년까지 약 24조2000억원을 9대 실천과제에 투자해 71만명에 이르는 녹색일자리 창출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 단장이 밝힌 투자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그는 먼저 “친환경적이라고 알고 있는 농어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이 제조업의 2배에 달한다”며 “석유 의존율이 높고 농약과 화학비료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 단장은 바이오매스 에너지 공급 확대, 녹색기술 및 장비 보급, 농약·화학비료 사용량 감축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 단장에 따르면, 정부는 농어업의 석유 의존율을 줄이기 위해 오는 2013년까지 바이오매스 에너지 공급을 83.9%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가축분뇨 자원화를 지난해 85%에서 2013년 90%로 확대하고, 에너지화 시설도 올해 3개소에서 15개소로 늘리기로 했다. 녹색기술 및 장비 보급을 위해선 녹색기술 인증제를 도입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며 지열히트펌프, 수막보호커튼 등을 활용해 난방비 비중을 25% 줄일 계획이다. 또 친환경 농업 기반 육성을 위해 농약·화학비료 사용량을 OECD 최저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농업 위한 자연재해 대응체계 필요
우기종 단장이 기조연설을 마친 뒤 국내외 기후변화 전문가 4명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미 농무성 기상국장인 레이몬드 모타(Raymond P. Motha) 박사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농업날씨 및 기후정책 개발’에 대해 설명했다. 모타 국장은 “지난 수년간 전 세계에서 극단적 기상재해가 자주 발생해 적지 않은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지역 농업생태를 파괴하는 피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업기후 정책의 핵심은 기본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건전한 과학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한 사용자 커뮤니티를 파악하는 것”이라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기상분야의 대응전략으로 개별 농장단위의 주요 날씨, 기후 및 농업지표들을 모니터링하는 농업날씨 전략을 개발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자연재해 대비, 피해절감 및 대응전략과 비상구조 등에 초점을 맞춘 종합적인 대응체계 구축이 필요함”을 내비쳤다.

‘온실가스 관리와 농작물 안정생산 전략’에 대해 발표한 이덕배 농촌진흥청 기후변화생태과장은 온실가스 감축과 농경지 보전 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9%를 차지하는 농업의 온실가스 관리를 위해 국가기관이 온실가스 저감기술 개발, 농산물·농자재에 대한 탄소배출량 산정 등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심화되는 수자원 부족, 생물종 멸종, 식량부족 등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녹색국토인 농경지 보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대비해 고온기 등숙이 양호한 벼 품종 개발, 고온에 적합한 과수품종 개발, 방제방법 개발 등 농작물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출신 기후변화 전문가인 켄 크로포드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은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열팽창하면서, 지난 20년간 평균 해수면 온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많은 생물종이 멸종하며, 농산물 생산에 타격을 받아 기아에 허덕이는 지역이 늘어날 것”이라 내다봤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크로포드 단장은 철저한 기후변화 대비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수자원의 효율적 관리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극한가뭄·홍수 대응능력 향상 요구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조진훈 수석연구원은 ‘기후변화 대비 한국농어촌공사의 역할과 대응방안’이란 주제를 통해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13000여개 수리시설에 대한 재난관리 대책과 안정적 용수 공급방안 등에 대해 발표했다. 조 연구원은 “농어촌공사는 농어촌용수를 관리하는 전문기관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 농어촌용수의 안정적 확보·공급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용수 이용관리, 수리시설 기능 강화 등을 중점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농어촌용수의 안정적 확보·공급을 위해선 다양한 용수 수요 반영 및 수요관리 강화, 극한가뭄 대비 비상대처능력 향상, 농어촌 환경개선을 위한 지역용수 확보, 지역특성을 고려한 효율적인 수자원 개발·관리 등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극한가뭄 대응능력을 갖추기 위한 모든 수리시설 대상의 내한성 평가와 더불어 국가 차원의 가뭄관리계획 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홍수대응능력 강화 등 수리시설 재난관리시스템 선진화 필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조 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농어촌용수의 체계적 이용관리를 위해선, 홍수대응능력 강화 및 위험관리체계 구축, 수리시설 개보수 및 현대화, 농어촌 수자원 관리의 정보화 및 기술 선진화 추진 등이 요구된다. 즉, 기후변화에 의해 태풍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므로 홍수대응능력을 높이면서, 홍수예보 시스템을 구축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위험관리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밀 물 관리를 위한 물 관리 정보화·과학화를 통해 관측 및 계측관리가 가능하도록 필요한 시스템을 전체 수리시설에 적용해야 한다.

기후변화시대 농어촌지킴이 역할
조 연구원은 또 “이상기후 같은 재해에 대비해 저수지의 설계기준 개정 등 수리시설 기능을 강화하고, 해수면 상승에 따른 방조제 보수·보강 추진, 배수갑문 홍수배제 능력 확충 등 수리시설물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방조제 및 하구둑과 관련해 그는 “상류의 홍수량 증가에 따른 홍수배제능력이 새로 검토돼야 하며, 배수갑문 관리를 첨단시스템으로 교체함으로써 상류의 수문예측과 연동해 최적의 운영계획에 맞춰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과 녹색성장 분야에서 농어촌공사의 대응방안도 제시했다. 환경 분야에 조 연구원이 제시한 대응방안은 유역환경 및 생태시스템의 보전을 위한 갈수기 수량 확보 및 수질보전 대책과 피해가 발생한 경우 유역환경과 생태시스템 회복능력을 강화하는 방안 마련이다. 녹색성장 분야에선 신재생에너지 개발, 탄소배출권 거래제 추진, 미래형 녹색도시 농장시스템 개발, 농촌형 에너지자립 녹색마을 조성, 첨단농업단지 조성 등을 제시했다. 또 간척지, 유휴농지 등에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에코팜(Eco-farm)랜드를 조성해 사료작물 재배단지와 신재생에너지를 접목한 탄소흡수 녹색산업공간으로 개발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조진훈 수석연구원은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한 한국농어촌공사의 역할을 △합리적인 물 관리 정책 개발 △수공시설물 설계기준 강화 △수자원시스템 운영방법 개선 △첨단기상기술을 활용한 유역관리 △수자원 영향 평가체계 구축 △국정관리체계 및 국가상호협조체계 구축 등 6가지로 정리했다. 한편, 국내외 기후변화 전문가들의 주제발표 뒤에는 국회의원, 농식품부 공무원, 농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전문가 패널토론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