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는 사람에게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곤충이어서 흡혈귀로까지 그려진다. 모기가 멸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7월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 기자가 세계 각국의 생물학자와 생태학자들에게 “모기를 아예 지구상에서 멸종시켜 버리는 게 어떨까요?”란 물음을 던져봤다.

< 재난포커스 - 김용삼 기자 >

모기는 사람을 귀찮게 하고 때로는 몹쓸 전염병까지 옮겨 백해무익한 곤충으로 여겨진다. 특히 말라리아모기는 매년 2억4700만명을 말라리아에 감염시키고, 100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무서운 재앙을 부르는 곤충인 셈이다. 게다가 말라리아뿐 아니라 황열, 뎅기열, 일본뇌염 등 무서운 질병들을 옮긴다.

때문에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되면 ‘모기가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과학자들은 모기를 아예 멸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기를 멸종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해충이어도 모기란 종(種)이 사라지면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켜 예기치 못한 인재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북극 툰드라 ‘생태계교란’ 확실
<네이처>(7월22일자)가 소개한 ‘모기 멸종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 가운데 미국 월터리드육군연구소(WRAIR) 지타와디 머피(Jittawadee Murphy) 연구원은 “‘모기 없는 세상’은 과학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는 “모기는 약 1억년 전 지구상에 나타나 다른 종들과 함께 진화해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3500종의 모기 중에서 인간을 깨물거나 괴롭히는 것은 불과 10여종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또 “모기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기를 멸종시킨다면 모기 포식자는 먹이를, 식물들은 꽃가루 매개자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머피 연구원은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자리한 월터리드육군연구소에서 말라리아모기를 연구하고 있다.

모기가 멸종될 경우 가장 큰 생태계 변화를 겪게 될 지역은 북극 툰드라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에서 눈이 녹으면 모기 유충들이 알을 깨고 나와 3~4주 만에 성충으로 성장한다. 캐나다 북부와 러시아에서 모기가 창궐하는 시기 일부 지역에는 엄청난 모기 군락이 생겨나 ‘마치 구름이 자욱하게 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환경자원부 브루스 해리슨(Bruce Harrison) 박사는 “북극의 모기가 사라질 경우 새의 먹이도 사라질 것이므로, 툰드라 지역에 둥지를 트는 철새의 개체수가 50%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이처>에 따르면, 모기는 순록 한 마리당 하루 300㎖까지 피를 빨아 먹는다. 순록은 모기떼를 피해 바람을 거슬러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모기가 없어져 수천 마리 순록떼가 따른 쪽으로 이동하면, 순록떼가 밟고 지나가는 지역의 땅과 식생,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 분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극의 모기가 사라질 경우 북극의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게 분명하다.

‘지구생태계’에서 모기의 역할
포식자 입장에서 모기는 맛있고 잡기도 쉬운 먹이다. 모기 유충이 사라지면 수백 종의 물고기들은 먹이를 바꿔야 살 수 있다. 특히 모기가 없어지면 모기의 천적인 모스키토피시(Gambusia affinis) 같은 물고기들은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스키토피시는 모기를 없애기 위해 논과 수영장에 방류되기도 한다. 한 물고기의 멸종은 먹이사슬 전후에 있는 다른 물고기의 멸종을 부르는 등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크다.

모기가 사라지면 모기를 먹이로 하는 많은 곤충과 동물들(거미, 도롱뇽, 도마뱀, 개구리 등)도 먹잇감을 잃게 된다. 올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 카마르그 지역에 모기약을 뿌려 모기를 소탕하고 난 뒤 흰털발제비(house martins) 움직임을 추적해보니, 모기약을 뿌리기 전 한 둥지에 3개의 알을 낳던 게 모기약을 뿌린 뒤 2개로 줄었다고 한다.

모기 보존론자들은 “모기 유충은 전 세계 수중생태계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천이 범람하는 평원에서부터 일시적으로 생긴 물웅덩이기까지 모든 물속에 모기 유충이 우글거린다. 모기가 사라질 경우 수중생태계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다. 모기 유충은 썩은 나뭇잎, 유기물 찌꺼기, 미생물을 먹어 치운다. 모기가 없어진다면 누가 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모기 보존론자들은 또 “모기 중에서 사람 피를 빠는 것은 일부 종의 암컷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식물 즙을 빨아 먹으면서 꽃가루 매개자 역할을 한다. 모기가 없어지면 수천 종의 식물들은 번식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모기 없어지면 더 안전한 세상”
모기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해충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모기 박멸론자들은 보존론자들과 달리 “모기 멸종으로 인한 생태계의 타격은 다른 대체생물에 의해 빠르게 복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곤충생태학자인 스티븐 줄리아노(Steven A. Juliano) 박사는 “모기와 사람은 어차피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관계다. 모기가 없어지면 인류의 삶은 전과 변함없거나, 오히려 더 편해질 것이다”고 말한다. 브라질 산타카타리나 연방대학 의료곤충학인 카를로스 브리솔라 마르콘데스(Carlos Brisola Marcondes) 박사도 “모기가 없으면 인류에게 보다 안전한 세상이 될 것”이라며 “특히 말라리아를 옮기는 아노펠레스(Anopheles) 모기를 멸종시키는 게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극 툰드라 지역의 생태계 교란 위험에 대해서도 모기 박멸론자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모기 보존론자들의 주장이 과장이라는 것이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FWS)에서 일하는 야생생물학자 캐티 커비(Cathy Curby) 박사는 “우리는 자욱한 모기떼에 놀라 북극의 모기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철새들의 위장을 확인해 보면 모기 시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새들은 모기보다 다른 날벌레들을 주식으로 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북극 툰드라와 비슷한 사례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미국 농무부에서 의료곤충학 및 도시곤충학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대니얼 스트릭만(Daniel Strickman) 박사는 “캐나다 북부와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엄청난 모기 군락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며,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는 주장을 폈다.

‘생태계교란’ 걱정할 수준 아니다
모기 박멸론자들은 모기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모기가 사라졌을 경우 예상되는 생태계 교란이 모기 보존론자들의 주장처럼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의료곤충학자 재닛 맥앨리스터(Janet McAllister)는 “모기를 먹는 새들은 대부분 다른 곤충으로 먹이를 바꾸고 ‘포스트 모기’가 나타나 모기의 빈자리를 메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타 곤충을 먹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박쥐의 주식은 이끼이며, 박쥐의 위장관에서 발견되는 모기의 양은 2% 미만이다. 결국 모기가 없어져도 대부분의 식충동물들은 굶어죽지 않을 것이다. 모기의 멸종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근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모기 유충의 역할에 대해서도 모기 박멸론자인 줄리아노 박사는 “모기 유충이 아니더라도 많은 미생물들이 유기분해물을 처리할 수 있다”면서 “비행기 날개에서 나사 하나를 빼낸다고 해서 비행기가 날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란 비유를 들었다. 모기 박멸론자들은 또 “인간에게 필요한 작물 가운데 모기에 의해 가루받이가 이뤄지는 것은 없다”며 모기가 없어지면 수천 종의 식물들이 번식할 수 없을 것이라는 모기 보존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처럼 모기 박멸론자들은 모기가 멸종되더라도 생태계에 큰 영향은 없으며, 조만간 다른 대체종이 출현해 모기의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예상한다. 그들은 또 북극처럼 일부 지역에선 모기의 멸종이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은 일부 지역에 한정될 뿐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