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맥, 대두, 옥수수 등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등 주요 곡물생산국의 기상재해로 공급불안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국가가 곡물수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물가격 상승은 애그플레이션(곡물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현상) 우려와 함께 식생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 재나포커스 - 김용삼 기자 >

수급 불균형 전 세계 곡물가격 급등
최근 수급 불균형으로 전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난 및 폭동사태 재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지는 지난 9월 2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곡물 수출금지 기간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 2007∼2008년 발생한 식량난과 식량을 얻기 위한 폭동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곡물 수출금지 조치를 2011년 작황 결과가 나온 뒤에만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초 올해 말까지였던 곡물 수출 연장기간을 최소한 내년 중반까지 더 연장한 것이다.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대형 산불과 극심한 가뭄으로 올해 밀 수확량이 예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우려되자 밀 수출 중단을 결정한 바 있다.

이 같은 원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주요 곡물 생산국에서 가뭄, 홍수와 같은 기상재해가 발생하여 공급불안이 확대됐으며 이에 따른 가격상승의 주원인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가뭄이 심각하고, 중국과 캐나다는 폭우 피해가 발생하는 등 기상재해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을 맞아 130년 만에 최악의 가뭄 피해를 입었으며, 중국은 랴오닝 성 일대의 폭우로 23만 3,5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가뭄으로 인해 2010년 소맥 생산량이 전년 대비26% 줄어들고, 이에 따라 GDP가 0.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불안 가능성이 확대됨에 따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은 곡물수출을 제한하는 자원민족주의 조치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3위 소맥 수출국인 러시아는 2010년 8월 자국 내 재고유지와 가격안정을 위해 연말까지 곡물수출 금지를 시행했으며, 세계 4위 옥수수, 세계 5위 소맥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도 2010년 연말까지 곡물수출량을 250만톤으로 한정하여 전년동기 대비 절반수준으로 수출쿼터를 제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제 밀 가격은 올해 들어 70%나 급등했고 러시아의 수출금지 결정과 호주의 밀 작황 부진 등을 고려할 때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욱 불안한 것은 2010년 하반기에도 곡물가격 상승세가 지속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기상재해에 따른 생산축소가 예상되며 수요 측면에서도 달러화 약세로 투기자금이 유입되고 신흥국을 중심으로 실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하반기 소맥 평균가격은 상반기 대비 35.7%, 대두는 20.5%, 옥수수는 17.1%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일 기상이변 심화로 공급이 더욱 감소하면 2010년 하반기에는 소맥 52.7%, 대두 42.2%, 옥수수 39.8%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국제곡물가격 상승이 4∼6개월 시차를 두고 물가상승으로 파급되기 때문에 인상효과는 2010년 11월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식품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어 서민의 물가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상이변의 빈도가 늘어나고 파급 규모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곡물의 공급불안 및 가격변동이 확대될 전망이다. 엘니뇨와 라니냐가 발생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발생 시의 강도도 커지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기상 불안요인이 증가하기 때문에 곡물가격 변동 폭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가격변동 주기는 짧아지고 있다.

올 여름 북반구 기상재해, 겨울에는 남반구 기상재해 예상
한편 2010년 여름 북반구에 기상재해가 집중 발생한 데 이어 겨울에는 남반구에도 기상이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곡물 공급불안이 지속될 전망이다. 저수온 현상인 라니냐가 2010년 겨울 브라질 등 남반구 곡물 생산지대에 피해를 줄 위험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반구의 곡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할 전망으로 2010~2011년 브라질의 생산량은 대두 5.8%, 옥수수 6.2% 감소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곡물의 공급불안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어, 곡물가격은 하반기에는 더욱 상승할 전망이다. 2010~2011년도 소맥 생산량은 전년 대비 5.1% 감소하고, 대두는 같은 기간 2.4% 감소할 전망했으며 극단적인 기상재해가 발생할 경우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실례로 지난 2007~2008년에도 주요 곡물수출국은 내수시장 보호를 위해 수출제한조치를 시행했으며, 당시 세계 1위 쌀 수입국인 필리핀은 국제곡물시장에서 고가를 수입가격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량의 60%만 조달받는 공급난을 경험 한 적이 있다.

한편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모잠비크에서는 식량과 관련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모잠비크 정부가 빵 가격을 30% 인상하기로 결정하자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7명이 사망하고 28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영국 FT지는 "농업 당국자들과 거래인들은 밀과 다른 곡식 공급이 2007∼2008년 당시보다는 풍부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모잠비크에서 발생한 소요가 재현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07∼2008년 식량난 당시에는 아시아 방글라데시에서 남미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폭동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아이티와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붕괴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실태를 파악한 결과 2007∼2008년 식량난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번 긴급 회동에는 곡물 수출 및 수입국들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재키 실리어스 안보연구소장은 "식량난 영향으로 2008년 소요사태 재현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서 "이는 결국 아프리카 정치권에 군대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국제곡물시장 가격변동 취약
한편 현 한국의 식량 자급구조와 수입구조는 국제곡물시장의 공급불안 및 가격변동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8년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6.2%로, OECD 31개국 중 28위의 최하위 수준이다. 또한 주요 곡물 중 73%가량을 4대 글로벌 곡물 메이저(56.9%)와 일본계 종합상사(16.0%)에 의존하고 있어 곡물 확보력과 협상력이 취약하다.

특히 한국은 소비식량의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며 사료까지 포함한 곡물은 이보다 더 높은 해외의존도를 나타내 생산기반이 취약한 실정이다. 쌀은 국내생산으로 거의 자급이 가능하지만 쌀 이외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매우 낮으며 특히 밀과 옥수수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국민 식생활의 서구화가 가속화되면서 쌀 소비는 줄고, 수입에 의존하는 밀과 사료용 곡물 수요가 증가하여 곡물소비의 구조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라 더욱더 주의를 요하고 있다.

반면 OECD 주요국은 한국에 비해 매우 높은 곡물자급률을 보유하고 있어 공급충격 발생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한국보다 곡물자급률이 낮은 국가는 일본, 포르투갈, 네덜란드에 불과하다. 공업국인 슬로바키아(133%), 체코(130%), 스웨덴(127%), 독일(105%)도 곡물자급률이 100%를 상회하고 있다. 한국은 대표적인 수입 곡물인 옥수수, 소맥, 대두를 대부분 미국, 중국, 호주, 브라질 등으로부터 조달하고 있으며, 옥수수는 매년 약 800여 만톤을 미국, 중국, 브라질, 아르헨티나로부터 수입해 대부분을 사료용으로 소비하고 있다.

또 한국은 곡물 메이저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곡물 확보력과 협상력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국의 곡물수입은 영미계 곡물 메이저와 일본계 종합상사에 의존하며, 3대 곡물수입의 약 57%(2003∼2008년 평균)를 카길, ADM, BUNGE,LDC (62.4%(옥수수), 46.8%(소맥), 46.3%(대두)) 등 세계 4대 곡물 메이저가 차지하고 있다.

영미계 곡물 메이저뿐만 아니라 마루베니와 같은 일본계 상사도 한국 곡물시장에서 1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두의 경우 수입물량의 절반 이상을 일본계 상사가 장악하고 있다. 곡물 메이저가 한국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향유함에 따라 곡물가격이 상승하면 전반적인 식료품 가격의 상승을 초래하고 소비자도 그 여파를 받는다. 한국 정부와 종합상사가 원유를 포함한 에너지자원의 개발 및 보급을 우선시한 것도 메이저에 대한 곡물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반면 유럽의 선진국은 높은 곡물자급률을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 지원, 농지보전 및 생산성 제고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EU는 1960년대부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공동농업정책(CAP)을 도입함으로써 가격보조와 생산보조를 통한 식량자급률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농촌이 유럽 전통의 근본이라는 인식과 내수경제 확대의 주역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농지보전 정책을 통해 충분한 농지면적을 확보하는 한편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곡물자급률을 높이고 있다

국적 곡물 메이저 육성 글로벌 메이저의 과점화 대응시급
한편 이 같은 세계적 식량위기에 대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지난 8월 18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 참석해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밀을 중심으로 크게 상승하면서 2008년과 같은 국제 곡물가격 급등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나 "세계 곡물 수요를 볼 때 이같은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앞으로 대농개발을 통해 안정적인 곡물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 곡물가격 변화가 서민생활의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식량 자급률 확대, 해외 농업 직접개발 등 근본적 대책에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곡물가격 상승은 경기상승세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는 현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부추겨 서민의 체감경기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번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은 수요보다는 공급 요인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긴축 등 거시적 차원의 대응보다는 수급안정 등 미시적 차원의 대책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기상이변의 빈도가 늘어나고 파급규모도 커져 곡물의 공급불안 위험이 커지고 있는 데다 한국의 곡물 자급 및 수입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단기적 곡물가격 변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곡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식량수입구조의 다변화가 필요하며 수입곡물의 비축재고량을 늘리는 한편, 곡물의 공동 구매 및 직접 구매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와 함께 국적 곡물 메이저를 육성해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곡물 메이저의 과점화로 한국의 곡물 수입환경이 악화되는 싱황에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할 정도로 글로벌 곡물 메이저의 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가격 협상력과 독자적 수입여력이 약화되어 가격변동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고 있다

이를 대비하기위해 국적 곡물 메이저를 육성해 글로벌 메이저의 과점화에 대응하고, 가격변동 리스크를 경감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중소 곡물수입회사의 합종연횡을 유도하고 아시아 내 중소 곡물수입회사의 인수합병을 유도하는 등 규모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특히 레드오션화된 구미나 중남미보다는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아시아지역에서 활동하는 곡물 메이저를 우선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식량자급률 외에도 에너지 자원처럼 자주 개발률 및 도입률을 관리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편 국내에 농지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품종개발, 신영농기술 도입 등을 통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지자체와의 협력하에 유휴지, 개척지 등을 일정기간 농업용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추진하고, 자급이 가능한 쌀은 현 생산기반을 유지하는 한편 소맥은 자급률을 우선적으로 제고할 필요성이 있다.

또 식품산업 발전을 통해 농업생산성과 생산기반을 제고하는 노력도 병행해 식품산업의 육성과 글로벌화를 통해 한국농업의 동반성장을 달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식품산업의 발전은 국내 농산물, 식자재 등의 활용을 촉진함으로써 농업생산 증가 및 안정적인 판로 확보에 기여하는데도 한몫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자료 - FT, 삼성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