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국내에선 채소 값 폭등으로 커다란 혼란을 겪었다. 올 초부터 폭설, 한파, 폭염, 태풍, 집중호우 등 이상 기온과 자연재난이 끊이질 않아 수확량이 크게 떨어진 게 주요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연재난이 발생한 지구촌 여러 나라가 농작물 피해로 물가상승 등 살림살이에 타격을 받았다. 특히 자연재난이 잇따르거나 미증유의 재난이 발생한 일부 나라는 나라 전체 살림살이가 휘청거릴 만큼 피해가 컸다.

<재난포커스 - 김용삼 기자>

 마야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앙아메리카 북부 과테말라는 올 들어 자연재난이 잇달아 발생했다. 5월 말 화산이 폭발하고 허리케인(열대성 폭풍우)이 강타한 데 이어 9월엔 집중호우까지 퍼부으면서 과테말라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자연재난 끊이지 않은 과테말라
5월27일 저녁(현지시간) 과테말라 수도 과테말라시에서 25㎞ 떨어진 파카야(Pacaya) 화산이 폭발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미리 대피해 별다른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커다란 돌덩이와 화산재, 유황가스 등이 분출되며 적지 않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파카야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과테말라시에까지 날아와 도시 전체를 잿빛으로 바꾸었다.

파카야 화산 폭발 이틀 뒤인 5월29일, 올해 처음 발생한 허리케인 ‘애거사(Agatha)’가 과테말라를 강타했다. 이 허리케인으로 과테말라 대부분의 도시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심각한 산타로사(Santa Rosa)·아마띠뜰란(Amatitlan)·솔로라(Solola) 주 등에선 400명이 넘는 인명 피해와 4만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2200만 달러의 농작물 피해, 20만 달러의 사회 인프라 손실 등 재산 피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허리케인 ‘애거사’는 과테말라시 2구역(Zona 2)에 지름 160m, 깊이 40m에 이르는 거대한 구멍을 뚫었다.

이 구멍은 3층 건물 1동과 시민 3명을 집어삼키며 과테말라 시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왜 갑자기 이 구멍이 뚫렸는지 아직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지반이 약한 장소에 하수처리시설을 설치한 데다 강한 폭풍우가 퍼부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9월엔 집중호우에 따른 홍수가 발생했다. 허리케인에 대한 복구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또다른 재난이 몰아친 것이다.

국가경제 전반에 심각한 피해
5월29일 과테말라를 강타한 허리케인 애거사는 과테말라 경제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애초 예상보다 피해가 컸던 까닭은 화산재를 미처 깨끗하게 치우지 못한 상태에서 폭우가 쏟아져 수도 과테말라시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하수구가 막혔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직후 공기 중에 남아있는 화산재로 인한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 눈병 등과 도시 곳곳에 고여 있는 빗물 탓에 뎅기열 감염의 위험이 높아지기도 했다.

잇단 자연재난으로 과테말라 경제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분야는 농업이다. 커피, 바나나, 옥수수 등이 주력 수출품인 과테말라는 농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여서 농업의 피해는 과테말라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 5월 발생한 화산 폭발과 허리케인으로 과테말라 전역에서 많은 농작물이 침수되거나 화산재를 뒤집어썼다. 피해 면적은 약 2만5000㏊로 추정된다. 관광 산업도 큰 피해를 입었다. 화산 폭발에 이은 화산재 제거 작업으로 350편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이로 인해 승객 2만5000여명의 발이 묶였으며, 과테말라 관광 업계는 약 23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과테말라 정부는 지난 2007년 과테말라를 강타했던 허리케인으로 한동안 관광객이 급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허리케인 뒤 최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관광시장에 또다시 악재가 드리울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허리케인과 집중호우는 과테말라 사회 인프라 시설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허리케인으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주택과 다리, 고속도로 등이 무너졌다. 23만 채가 넘는 주택이 파손되고, 크고 작은 다리 300여개가 무너지면서 교통망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이 같은 피해에 대한 복구가 완료되지 못한 상태에서 9월 집중호우가 쏟아져 피해를 가중시켰다.

잇단 자연재난으로 농업 황폐화
화산 폭발부터 허리케인과 집중호우까지 올 들어 계속된 자연재난으로 과테말라 농업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농업 의존도가 높은 과테말라 특성상 농업 쪽의 피해는 과테말라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농업은 과테말라 국내총생산(GDP)의 11.6%를 차지하고, 농업종사자는 경제활동인구의 13.5%에 이른다.

게다가 농산물은 과테말라의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다. 9월 집중호우에 따른 홍수로 농산물 피해는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피해가 확산되는 이유는 복구 작업이 늦어지며 농경지가 추가 침수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테말라 정부는 농업을 복구하는 게 가장 시급함을 강조하며 복구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홍수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농작물은 커피와 사탕수수다. 과테말라 농작물 수출의 20%와 10% 정도를 차지하는 커피와 사탕수수의 피해로 과테말라 정부는 예산 확보 및 외화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커피의 경우 재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5~15% 정도의 손실이 예상된다.

 특히 과테말라 전체 커피의 5%를 생산하는 베라파스(Verapaces) 지역의 손실은 최대 20%에 이를 것으로 베라파스커피협동조합은 내다봤다. 과테말라 농축산식품부는 조사결과 산타 로사(Santa Rosa), 치키물라(Chiquimula) 등에서 모두 34㏊의 커피 재배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사탕수수 농업의 피해도 심각하다. 과타말라설탕협회에 따르면, 100만t 이상의 사탕수수가 홍수로 피해를 입었다. 때문에 올해 설탕 수확량은 지난해에 비해 5%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홍수로 인한 사탕수수 농장의 피해는 1998년 ‘미치(Mitch)’, 2005년 ‘스텐(Stan)’, 올해 ‘애거사’ 등의 허리케인 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중미설탕연합은 이번 홍수로 중미 지역 전체에서 사탕수수 재배에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 중에서도 과테말라의 피해가 가장 크다고 밝혔다. 그 밖의 농작물 피해도 적지 않았다. 지반이 약한 치말테낭고(Chimaltenango), 산타로사, 에스쿠인틀라(Escuintla), 사파카(Zacapa) 지역에서 옥수수, 바나나, 깨, 쌀 등 21개 농작물이 이번 홍수로 수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테말라 정부 등은 모두 4000㏊의 농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 복구비용 마련에 허리 휠 판
과테말라 의회는 9월8일 자연재난 피해 복구비 1억6000만 달러를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9월22일에는 과테말라 정부가 추가로 피해 복구비 조달을 위해 2억5000만 달러에 이르는 채권을 발행했다. 또 과테말라 정부는 10월11~12일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과테말라가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의 큰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해 눈길을 끌었다.

과테말라 정부는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과 대만에 복구사업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자연재난으로 파손된 기반시설을 복구하지 못한 처지에 집중호우로 인한 추가 피해가 발생한 탓에 과테말라 정부가 부담해야 될 재해복구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재해복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과테말라 정부는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는 앞으로 과테말라 정부에 큰 짐이 될 것이다. 또 도로, 교량 등 파괴된 교통시설 재건이 완료될 때까지 물류와 수출에 큰 차질을 빚을 게 확실하다. 게다가 농작물 수출과 관광객 감소로 과테말라 외화수입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과테말라에선 10월 말까지 우기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추가적인 수해 피해와 GDP 감소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과테말라 정부는 적극적으로 복구 예산을 편성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도 꾸준히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코트라 등에 따르면, 과테말라에서는 현재 도로와 교량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과테말라 주요 산업 중 하나인 농업에 피해가 심각한 만큼 정부는 농업 분야 복구사업에 많은 예산을 편성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채권 발행, 국제사회의 지원 등으로 상당한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 복구사업 추진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다.

파키스탄, IMF 대출금 지불연기 요청
지난 9월 파키스탄 정부는 IMF와 내년 상환 예정 금액인 12억 달러를 1년간 지불유예 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중이라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검토중인 모라토리엄은 IMF 대출금에 국한하며, 다른 나라나 기관에 대한 상환액은 예정대로 지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파키스탄 정부가 IMF에 모라토리엄을 요청한 것은 올 여름 발생한 최악의 홍수 피해를 복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파키스탄은 지난 8월 초 시작된 60년 만의 대홍수로 1603명이 숨지고, 1300만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생겨났다. 재산 피해도 엄청나 가옥 120만 채가 파손되고, 농경지 624만8000에이커가 침수됐다. 정확한 피해액이 집계되기 전인 9월 초 관련기관에서 추산한 피해액만 43억 달러가 넘는다. 특히 수확을 앞둔 면화와 밀 등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어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따라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 극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코트라 카라치코리아비즈니스센터(KBC)가 9월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는 세계경제위기로 외화가 고갈되면서 IMF와 2008년 11월 113억 달러의 대기성차관협정(Stand-By Credit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파키스탄은 그동안 순조롭게 차관을 받아 왔으며 올해 11월에 마지막으로 20억 달러를 제공받기로 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또 홍수 피해 복구비 마련을 위해 내년 회기연도 동안 모든 수입품에 대해 2%의 홍수세를 메길 예정이다. 이와 함께 연 30만 루피 이상의 개인 및 법인 소득에 대해서도 5~10%의 홍수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 정부는 국채발생, 개발예산 동결, 홍수세 도입 등을 통해 30억 달러 규모의 재난복구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파키스탄 정부는 홍수로 국민의 약 10%가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중이다. 복구자금 마련을 위해 IMF, 세계은행 등에서 5억5000만 달러를 지원받을 예정이며 IMF와 벌이는 부채상환 재조정 협상도 원만히 잘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코트라 보고서는 내다봤다. 코트라 보고서는 또 파키스탄 정부도 IMF 외에 다른 국가와 기관에 상환해야 할 부채는 예정대로 갚는다는 계획이어서 국가 전체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까지는 확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