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도 어김없이 지구촌은 대재난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이티, 칠레, 중국은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파키스탄을 초토화시킨 대홍수를 비롯해 집중호우, 태풍, 폭풍우 등 풍수해 피해도 잇따랐다. 재난뿐 아니라 각종 대형사고도 빈발하는 추세다. 갈수록 안전이 위협받는 환경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는 셈이다.

<재난포커스 - 김용삼 기자>

재난과 사고는 질병을 빼면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과 가족, 나아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처럼 자연환경이 크게 바뀌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예기치 못한 재난과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폭설, 황사, 폭염, 집중호우 등 갖가지 재난에 시달렸다. 특히 올해는 최근 몇 년간 잠잠했던 태풍이 연달아 한반도에 상륙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화재 등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민관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크고 작은 재난과 안전사고가 빈발하자 지구촌 곳곳에선 무엇보다 소중한 안전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주로 정부가 주도하는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집 안에 폭풍피난시설 설치

미국은 매년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로 심각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미국인들은 집 내부에 폭풍 피난시설(Storm Shelter)을 설치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코트라 보고서 등에 따르면, 대서양에서 발달하는 허리케인(시속 120㎞ 이상)이 연평균 8회 이상, 열대성 폭풍(시속 120㎞ 이하)은 연평균 14회나 상륙한다.

토네이도는 2007년 1098회, 2008년 1691회, 2009년 1156회 등 최근 3년간 연평균 1315회가 발생했다. 올해도 6월 말까지 809회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토네이도는 깔때기 모양의 회오리바람으로 바람속도에 따라 시속 37마일(60㎞)에서 318마일(512㎞)에 이르기까지 6단계로 구분된다.

미국 정부는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에 대응하고 복구하는 데 매년 수백 억~수천 억 달러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때문에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선 개인주택에 폭풍피난 시설물을 설치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재난관리국이 지원금 보조

미국 해안 지역 개인주택에 설치되는 폭풍피난 시설물은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다. 설치비용은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4500~6900 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수송비와 시설물 안에 들어가는 가구와 조명기구, 환풍구, 응급처지기구 등은 별도다. 이에 미국 연방정부 재난관리국은 가구당 1000 달러씩 지원하면서 폭풍피난 시설물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

폭풍피난 시설물 가운데 듀퐁(Dupont)사의 스톰 룸(Storm Room)은 시속 200마일(322㎞)가 넘는 무서운 폭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주택 바깥에 언제든지 설치할 수 있는데, 설치비 4500달러에 수송비 1000달러가 더해진다. 빌려 쓸 경우 매월 500달러를 내야 한다. 재난관리국으로부터 세이프 룸 규격(Safe Room Spec) 320 인증을 받았다.

스톰 세이프(Storm Safe)사의 허리케인 셀터(Hurricane Shelter)는 두꺼운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육면체다. 무게가 360㎏에 이르지만 물 위에 뜨도록 해 홍수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2명이 6개의 사이드패널과 12개의 마무리 조각을 4~5시간 안에 조립해 완성한다. 가격 6900달러다. 스톰 셀터(Storm Shelters)사의 패밀리 세이프(Family Safe)는 약 5만㎏ 무게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두꺼운 철판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설치하며 원하는 크기에 맞춰 주문 제작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어린이 안전’ 히트상품 열쇠

일본에선 최근 김이 나지 않는 전기밥솥, 모든 모서리가 둥근 가구 등 다치기 쉬운 어린이의 안전을 고려한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신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코트라 오사카 코리아비즈니스센터는 지난 8월 발표한 시장동향보고서에서 “어린이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인기몰이 중”이라며 기능이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안전을 중시한 점이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 먹혀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어린이 안전을 위한 제품으로 인기를 끄는 것들 가운데 대표주자는 미쓰비시전기가 내놓은 ‘김이 나지 않은 고기능 전기밥솥(증기 리스 IH 밥솥)’이다. 이 제품은 쌀의 감칠맛을 내기 위해 김이 나지 않도록 했지만 어린이 화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인기요인으로 꼽힌다. 개당 6만 엔이 넘는 비싼 제품임에도 지난해 2월 출시 이후 1년간 약 5만대나 팔린 데에는 아이의 안전지킴이라는 인식이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도쿄의 한 상점에서 김이 안 나는 밥솥을 구입한 34세 주부는 “찬장에서 사용해도 증기가 가득 차지 않을 뿐 아니라 어린이가 만져도 안전하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전기는 올 7월 출시한 ‘IH 쿠킹 히터’에도 어린이와 노인의 안전을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밥솥 외에 어린이가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설계된 냉장고도 부모의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주택 설계, 가구에도 접목

어린이 안전을 배려해 인기를 모으는 것은 전기 전자 제품만이 아니다. 모서리가 둥근 가구는 물론 아이들 손이 끼지 않는 현관문 등도 일본에서 인기몰이중이다. 심지어 주택설계와 호텔 객실까지 어린이 안전을 강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주택전문 건설업체인 다이와 하우스 공업의 ‘어린이 배려 2세대 목조 설계주택(xevoYU)’은 어린이와 노약자의 동거를 고려한 주택으로 손이 끼지 않는 현관문 등을 표준 설치했다. 이에 대해 다이와 하우스 쪽은 2세대, 3세대가 함께 사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한 것으로,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안락함’이 ‘안심’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밝혔다.

지바현 우라야스시 도쿄 디즈니랜드 옆에 자리한 오리엔탈 호텔 도쿄 베이는 3세 이하 영유아를 위한 51개 객실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설했다. 부드러운 코르크 바닥에 모서리가 모두 둥글게 만들어진 낮은 침대와 가구가 설치된 이 객실들은 단골고객이 많아 이용자가 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 호텔은 올 3월 4~6세 어린이를 동반한 투숙객들을 위한 ‘키즈스위트’를 48실이나 선보였다. 객실 내 가구와 인테리어는 모두 어린이들의 안전을 배려한 것이다. 7살배기 딸과 1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이 객실을 2번째 이용하는 한 어머니는 “아이들을 걱정해 뒤쫓아 다닐 필요가 없어 스트레스가 적다”고 말했다.

어린이 안전을 중시한 제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일본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일본 못지않게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탓이다. 이에 대해 코트라 보고서는 “저출산(소자녀화) 영향으로 어린이들에 대한 안전성이 앞으로 히트상품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만큼 절약을 중시하는 소비자도 어린이를 위한 상품이나 서비스엔 지갑을 열 공산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