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포커스

홈 > 뉴스 > 재난포커스속보

[기고]정보서비스 시스템의 복잡·다양화에 따른 디지털 블랙아웃

-디지털 블랙아웃 위협 고조: 초연결 사회의 숨겨진 재난 위험 경고

2025년 09월 30일 (화) 13:50:11

편집국

정영환 (사)한국비시피협회장
ISO T/C292 재난안전보안위원회 한국대표
KS A ISO22301 BCMS : 업무연속성 가이드라인

초연결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정보 서비스 마비 사태의 잠재적 위험 요인과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심층적으로 분석 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행정안전부 원장 이재용)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전면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운영하는 647개 대국민 행정 서비스 관련 업무 시스템과 정부 업무 전산망인 '온나라시스템'이 동시에 먹통이 되면서 국가적인 대혼란이 야기됐다.

이번 화재는 전력 공급 안정성을 담당하는 무정전 전원 장치(UPS)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과정에서 하나의 배터리가 폭발하며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한 화재 위험은 수년째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광주와 대구에 백업 체계가 존재했음에도 647개 시스템이 동시다발적으로 멈춰 선 것은 명백한 시스템 '설계 결함'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가적 전산망 마비 사태와 맞물려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원장 오금호)이 최근 발표한 '2025 잠재재난위험 분석보고서 No.02'는 '디지털 블랙아웃' 위험이 증대하고 있다는 경고를 현실로 보여주는 보고서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행정, 공공, 민간 전반에 걸쳐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초연결 사회로의 진입이 이루어지면서, 화재, 기후재난, 장비 오류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대규모 서비스 마비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단일 장애 지점(SPOF), 자연재해와 기술재난이 결합된 복합재난(NaTech), 그리고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종속 심화 등이 주요 잠재적 재난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이러한 '단일 장애 지점'과 '장비 오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국가 핵심 시스템을 마비시킨 직접적인 사례로 해석된다.

주요 위험 요인으로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한 초연결망 전체 마비 가능성인 '시스템 충돌', 홍수나 한파 등 기후재난이 데이터센터나 통신망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인프라 위협'이 꼽혔다. 또한 클라우드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장애 발생 시 의료, 금융, 항공 등 핵심 서비스의 동시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정보 집중화' 문제도 제기되었다. 더불어 부실한 사업 관리와 기술력 부족으로 공공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는 '구축·운영 역량 부족' 역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 되었다.

디지털 블랙아웃 발생 시 파급 효과는 광범위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 분야에서는 정부24, 홈택스, 복지 시스템 마비로 국민들의 민원 처리 및 지원에 큰 차질이 예상되며, 민간 분야에서는 항공, 금융, 병원, 메신저 서비스의 동시 마비로 막대한 일상 및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클라우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한 번의 장애가 사회·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2022년 대형 데이터센터 화재로 주요 메신저와 포털 서비스가 수일간 중단됐고, 2023년에는 지방행정전산망 장애로 정부24와 조달청 나라장터 등 공공서비스에 큰 차질이 빚어진 바 있다. 해외에서도 프랑스 OVH 데이터센터 화재, 영국 브리티시항공 데이터센터 정전, 호주 옵터스 통신장애 등 유사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국정자원 사태는 정부의 핵심 전산망이 마비되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현재 정부는 전자정부법 기반의 '행정정보시스템 재난 매뉴얼' 제정 및 「방송통신발전기본법」·「정보통신망법」 등 디지털 안전 3법 개정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등급별 점검과 클라우드 안전성 기준 마련, 통신 3사 및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등 국가핵심기반 확대 지정 등 안전관리 노력도 병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국정자원 화재에서 드러났듯이, 소규모 장애 정보 공유 미흡, 지하 시설 침수 위험에 대한 기후위기 대응 부족, 단기 복구 중심의 훈련 한계, 하도급 구조로 인한 사업자 역량 부족 등 여러 문제점이 여전히 산적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통합 법제화, 즉 「디지털 재난 안전관리법(안)」 제정이 필요하다. 또한 사고·장애 사례의 데이터화 및 학계·산업계 공유를 통한 정보 공유 강화, 지하 데이터센터 침수 방지 및 극단 기온·폭우 대비 설계를 통한 기후대응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순 복구 위주의 훈련을 넘어 장기간 디지털 마비 시 업무·사회 유지 훈련을 포함하는 훈련 고도화와 대규모 사업에 대한 기술·품질 검증 강화 및 전문사업자 육성을 통한 전문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제시된다.

이번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디지털 블랙아웃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예측이 아닌, 우리 사회의 핵심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선제적인 법·제도 통합, 기후위기 대응, 사고정보 공유 활성화, 그리고 전문성 강화가 국가적 재난 대응 시스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