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고층건물 그림자에 가려 있어도 600살 나이답게 주변 고층 건물들을 압도하는 당당함으로 기억되던 한국의 아이콘이자 한국인의 자존심이었던 숭례문이 화마의 제물로 한 순간에 사라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남대문 지붕에서 내려다보며 세상을 지켜왔던 ‘어처구니(기와 지붕위에 사람이나 동물모양의 흙 인형)’들이 불에 타 버렸으니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어진 셈이죠.

남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숭례문의 붕괴는 한국인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뜨리는 참극이었습니다. 그렇게 원통하게 무너져 내렸지만,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충분히 지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 멀쩡하게 뜬 채로 숭례문을 화마(火魔)에 희생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국가위기관리가 얼마나 엉터리였냐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우왕좌왕하게 되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게 되는 진리를 모른 것은 아닐 테죠? 그런데다가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세우자고 제안합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 국민들처럼 성금 잘 내는 국민들이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앞장서서 분노하고, 성금 운동도 자발적으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숭례문 화재의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분이 ‘국민 성금’을 운운하면서 내려던 사람도 고개를 절레절레 돌립니다. 국민이 스스로 내는 게 성금이지 “지도자가 내자고 하는건 세금이다”라는 네티즌들의 말이 계속 귓속에서 메아리 칩니다.

“정부 예산보다는 오히려 국민이 십시일반 참여하는 성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게도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뒤 며칠 안 돼 “정부예산집행은 기본으로 한 것인데 본 취지를 몰랐다”고 해명하는 인수위원장은 감성적 접근을 시도한다는 사견입니다. 사태의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에 대한 이성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요? 이른바 ‘평화의 댐’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에 걸려들어 폐품을 팔고, 벽돌 한장은 ‘의무적’이었다는 압박감에 시장에 나가 키워온 호박도 팔았더랬습니다.

숭례문 화재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만 종합한다면 전형적인 ‘인재’에 해당합니다. 관련기관들이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치고받고 하든 말든 정부가 미숙해서 저지른 ‘인재’에 대해 국민들이 왜 성금을 내야 하는 지와 사건의 조속한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들이 성금을 모으든 재산을 각출하든, 그것은 대통령 당선자가 아니라 국민들이 합의해 결정할 몫이며 정부가 앞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다음에 꺼내도 되는 말입니다. 일단 내뱉은 말은 주워 담기 어렵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을 터인데 막상 국민들이 반발하고 나서니 해명하기에 분주한 모습에 우리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이번에는 나라가 잘 돼야 할 텐데’ 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