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순간 지구 내부의 외핵이 움직임을 멈춰 지구의 자기장이 사라지면서 온갖 기상이변이 발생, 인류에게 재난이 닥쳐온다? 이러한 가정은 지구 내부의 ‘핵’을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 ‘코어’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재난영화 소재들과는 다른 ‘핵(core)’이라는 소재는 일단 영화의 재미를 떠나 그 참신함과 신선함으로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미국 정부에선 인공지진으로 적을 공격하는 비밀 병기 데스티니를 개발 한다. 그로 인해 지구 핵, 코어(CORE)의 회전이 멈추면서 지구엔 갖가지 기상 이변이 발생, 재난이 속출한다. NASA측은 대학에서 지구 물리학을 가르치는 조슈아 키스박사(아론 에크하트)에게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부탁하고 박사는 이런 상태라면 1년 안에 지구가 전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화성 크기의 지구 핵을 다시 회전 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 끝에 미 정부와 NASA측은 조슈아를 비롯, 지구 물리학의 거두 콘라드 짐스키 박사(스탠리 투치)와 시스템 전문가인 서지 레베크 박사(체키 카르요), 엄청난 열과 압력에 견딜 탐사정 ‘버질’호를 만들 브래즐턴 박사(델로이 린도) 그리고 우주 비행사 이번슨(브루스 그린우드)과 차일스 소령 (힐러리 스웽크) 등 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이들을 지구의 코어로 내려 보내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코어에 들어가 핵 폭탄을 터뜨려서 지구 핵을 다시 회전 시킨 뒤, 그로 인해 발생될 거대한 충격파를 피해 지상으로 다시 귀환하는 것. 그러나 몇 천도의 지열과 엄청난 압력을 뚫고 코어로 들어가는 여정엔 뜻 하지 않은 수 많은 변수가 이들을 기다라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원들은 차례로 죽어가고, 짐스키는 지상 관제소에 프로젝트를 포기하겠으니 ‘데스티니’ 프로그램을 가동하라는 최후통첩을 한다. ‘데스티니’로 인해 코어의 회전이 멈췄으니, 그것으로 다시 회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 지상에선 ‘데스티니’를 발사할 준비에 들어가지만, ‘버질’호의 남은 대원들은 이번 임무를 끝까지 이행 시키기로 결심하는데….

지구 내부 ‘핵’ 소재 다룬 이색영화
영화 ‘코어’는 기존의 재난영화 중 과학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재난영화라 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자연재해나 우주공간 등의 배경을 벗어나 지구 내부를 선택 한 것이다. 지구 외핵이 운동을 정지하면서 지구가 큰 위기를 맞게 된다는 설정은 영화 소재로서의 신선함을 더한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지구 외핵은 지구 중심에서 1200~3500km 사이에 분포하는 층으로 내핵보다는 바깥쪽에, 맨틀·지각보다는 안쪽에 자리해 있다.

온도는 4000도에 달하며, 철과 니켈 등이 흐물흐물하게 녹아 돌고 있는 액체 상태라 한다. 이러한 외핵의 운동 정지로 기상이변 등 지구에 재난이 닥치자 영화 속 주인공들을 외핵으로 파견해 핵폭탄을 이용, 핵을 다시 돌려 멸망이라는 극한 위기에서 지구를 구하게 된다. 땅을 파서 핵을 넣는다는 설정은 영화 ‘아마겟돈’과 비슷하고, 기상이변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투모로우’와 유사하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지구의 내부를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무한의 상상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재미는 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영화 ‘코어’는 정말 가능한 일들 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는 ‘아니올시다’이다. 영화에서는 엄청난 온도를 돌파하고 외핵까지 접근에 성공했지만, 사실 지각부터 맨틀을 거쳐 내핵을 거치고 외핵까지 도달 하는 자체부터가 불가능하다. 설사 그 엄청난 압력과 열을 견딜 수 있는 선체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맨틀을 뚫고 지나가는 레이저를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미래에 레이저와 열에도 녹지 않고 압력에도 찌그러지지 않는 신소재가 발명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또한 핵의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우주복 등의 개발도 어렵다고 봐야한다. 지구속의 엄청난 압력속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선 가볍고 압력에 견뎌야 하는데, 활동복이 얇아서는 압력을 견딜 수 없으며 두껍게 만들면 활동하는데 많은 불편함이 있다.

더욱이 영화에서는 핵폭탄만으로 핵의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했는데, 이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외핵은 아직까지 액체로 이루어져 있는 엄청난 불덩어리로, 핵폭탄의 열보다 몇십배에 달한다. 이런 외핵에다가 핵폭탄을 터뜨려 봤자 외핵이 이 충격을 흡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물론 전부다 허구인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비둘기 떼가 방향을 잃고 벽이나 창문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고, 심장박동기를 착용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무너지는 등의 원인은 지구자기장이 사라진 결과라고 말한다. 과장과 비약이 섞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론이다. 실제로 비둘기는 몸에 자석을 붙이면 원래의 목적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실험결과가 있으며, 고에너지 입자가 인체의 세포에 들어가면 염색체 이상이나 암을 일으키고, 지상의 전자기기나 지구궤도의 인공위성이 오작동하거나 망가진다.

참신한 소재, 일단은 ‘흥미롭게’ 감상해야
적지 않은 과학적 오류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지구 내부의 ‘핵’이라는 소재로 신선함을 살린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 참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지는 내용들과 재난영화의 공식인 위대한(?) 인류의 희생과 영웅심리 등은 영화의 재미를 한층 더 높이는데 뒷받침 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아마도 과학적으로 미지의 영역인 지구 내부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이 영화를 ‘흥미롭게’만 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