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본능을 그리고 있는 영화들을 그동안 꾸준히 봐왔다. 영화 ‘하드레인’도 마찬가지. 폭우라는 자연재해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아 모두들 떠나버린 한 마을에서 거액의 돈을 놓고 사람들이 접전을 벌인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없다는 것. 수해라는 재앙이 불러온 인간의 본능을 보여준 영화 ‘하드레인’은 그러나 재난영화라 하기에는 다소 아쉽다. 물에 잠긴 마을이라는 배경만이 재난영화라는 타이틀을 겨우 받치고 있을 뿐이다.

인디애나주 소읍 헌팅버그가 호우로 침수되면서 주민들이 대피한다. 현금 운송용 방탄 트럭을 운전하는 초보 운전기사 톰(크리스챤 슬레이터)은 삼촌 찰리(에드워드 에스너)와 함께 지방은행으로부터 300만 달러 수송 업무를 맡아 운송 중이었다. 업무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강의 범람으로 운송트럭은 도로에 갇히게 된다. 무전으로 부근 마을에 구조를 요청하지만 폭우로 인해 도착이 지연된다. 이때 트럭안의 현금 300만 달러를 노리는 갱단이 톰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화려한 전과경력의 짐(모건 프리먼) 일당이 톰의 무전을 듣고 구조대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홍수라는 재난이 일어났으니 실종신고는 무의미하고 경찰의 추적은 불가능한 완전범죄의 기회였으나, 톰은 목숨을 걸고 돈 가방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총격전 도중 끝에 찰리가 목숨을 잃는다. 돈 가방을 들고 강도들에게 가까스로 빠져나온 톰은 홍수로 물에 잠긴 성당으로 들어가 현금 가방을 숨기려 하지만, 톰을 발견한 복구요원 카렌(미니 드라이버)은 그를 강도로 오인하고 때려눕혀 보안관에게 넘긴다.

톰은 보안관(렌디 퀘이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만 그 또한 돈 가방을 보고 마음이 돌변해 이를 탈취해 한 몫 챙길 궁리를 하게 된다. 얼마 후 짐과 그의 부하들이 마을로 들이닥치고 현금 가방을 노리는 두 일당은 300만 달러를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총격전을 벌인다.

사태를 파악한 카렌은 이미 홍수로 물에 잠겨버린 교도소에 갇혀있던 톰을 구하고, 두 사람은 돈에 눈이 먼 두 악당 집단과 홍수에 맞서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 마을이 파괴되고, 성당은 불길에 휩싸여 초토화되는 사이 계속되는 폭우로 수위조절 능력을 잃은 댐이 폭파 직전에 이른다. 마침내, 댐이 터지면서 막대한 양이 마을을 덮치고 남아있던 기물들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파괴되고 침몰해 가는데….

극한 상황 속, 인간 생존 본능 묘사
영화 <하드레인>은 자연의 재앙을 배경으로 인간의 생존 욕망을 표현한 영화. 폭우 속을 무대로 거액의 현금을 둘러싸고 처절한 암투를 그려낸 재난 액션물이다. 그러나 재난에 당면한 인간이 재해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나 심리 묘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재난 영화도 아니고, 액션 영화도 아닌, 애매한 완성도 때문에 비난도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영화에서 폭우라는 재난은 단순한 볼꺼리의 역할은 아니다. 즉, 목숨을 위협하는 수해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인간의 모습은 감춰진 생존 본능으로 인해 범죄와 타락으로 얼룩져 있다.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 3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단호하게 그 기회의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자연재앙으로 인해 모두 떠나버린 죽음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의 암투가 한편으로는 공감되어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단순 배경으로 전락한 수해 상황 아쉬워
수해로 인해 물바다가 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설정인 하드레인은 이러한 독특한 설정에서의 인간들의 암투극을 연출해야 함에 쫓기다 보니, 우연을 남발하고 비현실적인 장면들도 이곳저곳에서 보여 지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게 큰 자연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대형 댐 근무자는 한 명밖에 보이질 않는다.

또 물속에서 오랜 시간 잠겨 있던 총이 아무런 문제없이 발사되고, 한번 장전 된 총은 더 이상의 장전 없이도 계속해서 총알이 나온다. 하지만 폭우와 홍수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 되어버린 유령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녀주인공들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중고를 줄기차게 겪고 있어, 이러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일 만큼 여유롭지 않은 숨 가쁜 영화라서, 딴지를 걸 목적으로 영화를 보지 않는 이상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무늬만 ‘재난’, 흥행 실패라는 현실적 ‘재난’을 경험
하드레인은 축구경기장 5개 크기로 지은 세트장에 약 1,892만 리터의 물을 채워 넣어 장대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모든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로 촬영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엉성한 스토리 구성과 의심스러운 영화 장르를 눈 감아 줄 정도는 아니었던가 보다.

7,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2,500만 달러 밖에 거둬들이지 못한 ‘재난’ 영화로 기록된 하드레인. 독특한 구성 및 소재와 영웅심리 등을 그린 확실한 재난영화일 것이라 기대하고 보는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