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위기관리연구소 정찬권 연구위원

지난해 태안기름유출사고에 이어 올해 초에 이천 냉동창고 화재, 그리고 숭례문 소실(燒失)사고로 인해 평시 위기대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다양한 평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실시된 「2008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을 시작으로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규모로 실시하는 을지연습이 오는 8월에 그리고 10월에는 지정된 시도를 대상으로 충무훈련 등이 군(軍)훈련과 연계해 실시토록 계획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국가위기대비훈련이 아직도 업무소관 부처에 따라 분야별로 각각 실시되고 있어 훈련내용 중복과 불필요한 행정부담 가중으로 비효율적이라는 한계를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지금까지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 그리고 업무담당자들 사이에 현행 국가위기대비훈련 개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가시적인 조치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원화된 지휘통제 기능 발휘가 필수적
오늘날 전·평시를 불문하고 다양한 위협이 복합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서 위기관리는 동시성과 통합성 그리고 일원화된 지휘통제 기능 발휘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표1-1〉국가위기대비훈련 현황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평시 훈련이 분산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기능발휘가 구조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더욱이 현행훈련체제는 포괄적 안보개념(comprehensive security)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요구에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점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현행 우리나라의 분산돼 실시하는 위기대비훈련체제의 문제점은

첫째, 현 정부의 실용중시 국정이념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정부조직 기능통합 정신과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전시 인적·물적 자원동원을 제외한 재난, 테러, 이재민구호 등과 같은 훈련은 내용의 유사 중복으로 각 훈련별로 차별성이 거의 없어 훈련성과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셋째, 중앙부처가 통제하는 연습훈련에 참가하는 지자체는 전문 인력과 예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연중 훈련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인해 행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위기대비 필수핵심과제의 선택과 집중이 아닌 잘하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훈련으로 인해 각종 계획 검증과 발전은 고사하고 실제상황발생시 제대로 써먹을 수 없게 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장차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고 실용과 효율이 담보된 국가위기대비훈련으로 발전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국가위기관리종합연습’ 통합·재설계하자
우선 현행 을지연습을 포괄안보개념에 맞게 아래의〈표 1-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시대비, 재난안전, 테러 등 다양한 위협에 동시대응이 가능한 「국가위기관리종합연습」으로 재설계해 년 1회 민·관·군이 참가, 강도 높게 집중적인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현행 개별법상 훈련통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이기 때문에 단계화해 추진하되, 단기적으로 각 이해상관자(stakeholder)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도출, 년 1회 지정된 일정한 기간에 모든 훈련을 통합실시하고, 장기적으로 법령 및 조직을 재정비해 일원화된 훈련으로 통합 실시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국가위기대비훈련을 정부평가에 반영해 각급 기관장이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훈련을 실시토록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생존과 안전에 대한 국가사무는 공공재(public goods)적 성격으로 인해 적절한 강제가 수반되지 않으면 부작용과 유명무실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훈련방법도 다양한 위기상황에 본능적으로 대응 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도상연습을 최소화하고 실제훈련위주로 실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위기대응의 성격상 이론보다 행동숙달이 더 요구되는데 그 중요성은 최근 태안기름유출사고와 숭례문소실사태가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위기대비연습훈련이 돼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와 민주화 진전은 국가통제력의 약화와 국민들의 참여를 확산시켜 주어 과거 국가중심의 일방통행식 정책수행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위기의 직접적인 이해상관자인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기업 등이 긴밀하게 연계된 협력체제(partnership)를 구축해 평소 훈련과 위기대응도 함께 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각종 훈련의 통합은 선택 아닌 필수
오늘날 21세기 위기관리는 과거 사후대응(reaction)중심에서 사전 예방활동(proaction)을 통해 위기발생을 방지하는 개념으로 진화돼 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중국의 쓰촨성(四川省) 지진과 미얀마 홍수, 그리고 우리나라의 AI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내 국가간 상호협력과 공동 대응을 위한 협의체 구성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고, 과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땜질처방이라는 부끄러운 유산을 단절시키고 안전하고 행복한 선진국가로 가기 위해서 국가위기대비훈련의 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된다.

위기는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현행 분산해 실시하고 있는 국가위기대비훈련을 통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그리고 안전한 삶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온 국민들의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한다. 일찍이 손자가 ‘위기대비는 나라의 중대사로 생사와 존망이 달려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갈파한 손자의 경구를 우리는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