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얼굴을 보여준다. 기다리던 단비는 축복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는 재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인간은 자연에 더 가까이 가고자 노력해왔다. 다시 이야기하면 인간은 자연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기상청은 재난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첫 단계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계속되는 기상청의 오보는 올해도 큰 재난을 불러왔고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여론을 반영하듯 기상청예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80.1%에서 55.6%로 대폭 하락했다. 기상청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보인다. 이에 기상청은 왜 오보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점검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요즘 들어 국지성 호우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또 외국에서는 폭염에 의한 사망사고 발생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이상기후는 이제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그만큼 피해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가장 곤욕을 치르고 있는 곳이 기상청이다.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는 것이 일부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는 비단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가 겪고 있고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인해 기상관측이 힘들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나 이로 인해 예보가 수시로 빗나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기후로 인해 예보의 중요성과 기상청의 역할이 더 커졌다.

민간기상업체와 갈등 계속
요즘 우리나라 기상청에 대한 신뢰도와 달리 기상시장은 각광받는 사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기상정보 활용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는 3조 5000억원에 달하고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300억원의 기상시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 1조원, 일본 5000억원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 수준으로 기상시장을 끌어 올렸을 때 경제적 가치는 연간 6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다. 기상산업의 성장은 기상업계의 활성화를 가져와 예보품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간기상사업자는 존재하긴 하지만 역할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이에 반해 기상사업을 경쟁력 있는 신성장동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계속돼왔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기상사업자들의 참여와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기상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우선적으로 기상청과 민간기상업체와의 갈등을 풀어야 한다.

지난 7월29일 민간기상사업자도 일반대중에게 언론을 통해 기상예보를 발표할 수 있도록 허용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자는 제안서를 기상청에 전달하면서 갈등이 드러났다. 현재 우리나라 기상법 17조에 명시된 내용이다. <기상청장 외의 자는 예보 및 특보를 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경우와 기상사업자가 등록한 사항에 대하여 예보를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법에 따르면 기상청장만이 예보·특보를 발표할 수 있으며 다만 기상사업자가 등록한 사항에 대해 예보를 하는 경우에는 민간업체도 가능하도록 단서규정을 두고 있다.

기상청은 서로 다른 기상예보로 인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이유로 민간사업자들의 예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상청이 근거로 제시하는 국민들의 혼란이 현재 기상청의 오보로 인한 혼란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기상청과 민간기상사업자의 갈등은 예보 공개 논란에 국한 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현재 민간기상업자들은 기상청에 매월 200~300만원의 정보사용료를 내고 기상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민간기상사업자들은 이에 불만을 표시했다. 기상청이 원시(초기)자료 중 일부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자료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예보 경쟁을 하고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의 제공은 보장 돼야한다. 정보의 가치가 없거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는 타당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정보 활용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원시(초기)자료 중 공개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사용료를 내고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민간기상사업자들은 외국기상정보에 눈을 돌리고 있어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장비업체와도 대립
또 기상청은 기상장비업체 A사와 ‘기상장비 납품비리’건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 기상청이 도입한 기상관측장비 라디오존데가 부실장비였다고 밝혔으나 8월 검찰의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A사가 “기상청이 악의적으로 불리한 데이터를 감사원에 제공한 것이고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감사원의 요청에 의해 자료를 제출한 것이고 데이터를 A사에게 불리하게 악의적으로 만들어 제공한 적은 없으며 기상청도 자세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해 조사받았던 관련자를 수소문해 알고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또 올해 기상장비 사업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A사를 배제했다는 A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2007년 경찰청 수사이후 기상청은 장비구매 절차를 대폭 강화하여 외부전문위원이 참여하는 가운데 절차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이든 기상사업의 발전은 기상청과 민간기상업체, 기상장비업체가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때 이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 먼저 서로의 발에 얽혀있는 끈을 풀어야 할 것이다.

국내수치모델 개발, 기상전문가 육성 노력 뒷전
기상청은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낙후된 예보수치모델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 5월부터 영국기상청과 협정을 맺고 영국형모델을 도입해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2010년부터 세계 2위수준의 영국형모델을 실제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또 환경부는 기상청에 해외우수인력을 영입하겠다고 언급했고 기상청청장은 환경부장관과 이견이 없으며 앞으로 외국인 기상 전문가 영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기상청은 슈퍼컴퓨터에 집착해왔다.

1997년 이전에 기상청은 슈퍼컴퓨터를 들여놔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외쳤고 1997년에 200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1호기를 샀고, 2004년에 500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2호기를 들여놨다. 이제 내년이면 550억원의 슈퍼컴퓨터 3호기가 들어온다. 하지만 기상청의 오보는 계속됐고 수백억원이 들어간 슈퍼컴퓨터를 보며 치솟는 물가에 허리띠를 조여 매고 있는 국민들은 또 분통을 터트렸다.

국민들의 원성에 기상청은 이번에 수치예보모델은 영국에서 들여오고 기상전문가는 미국과 일본, 영국등 기상선진국에서 영입을 타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외국의 기술과 인력으로도 예보의 정확도가 좋아졌다고 할 수 없게 되면 기상청은 다음으로 무엇을 할까? 우리나라에서 기상청의 예보관 자리는 인사관리상 순환보직으로 잠시 거쳐가는 자리로만 인식됐다.

예보관의 자리에 한번 앉으면 은퇴할 때까지 예보를 하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2~3년마다 한번씩 예보관이 교체되는 실정이다. 또 예보관의 능력향상 과정이라 일컫는 교육은 단순히 오보에 대한 분석만 하고 넘어가는 것이어서 능력향상에 도움이 되는 체계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없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예보관의 축척된 노하우나 능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상황이 이러한데 외국전문가 영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기상예보는 각각의 국가 특성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또 다르다.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외국인이 국내의 특성과 상황을 인식하고 반영하는 것이 쉬울 것이 아니라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치예보모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쓰고 있는 수치예보모델은 1997년 일본에서 도입한 것으로 이 모델은 이미 낙후됐다. 낙후된 모델을 수준 높은 선진형으로 바꾼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내기술 발전이 얼마나 고려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일본의 모델이나 영국의 모델은 자국에 맞춰 개발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후에는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해야한다. 세계적으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수치예보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13개국이다. 13개국 중 11개국이 세계기상기구(WMO)에 모델의 정확도를 보고하는데 정확도면에서 일본은 3위이지만 일본모델을 쓰고 있는 한국은 9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마가 없는 영국의 모델을 들여왔을 때 우리의 실정에 얼마나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상청은 통합형 수치예보모델의 기술기반 위에서 수치예측 기술 분야에 대한 기상연구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협력을 확대해 오는 2015년까지 독자적인 수치예보시스템을 점진적으로 갖춰 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수치예보모델 개발 인력은 25명인데 이것은 미국 370명, 영국 250명, 일본 71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수치예보모델 운영만으로도 벅차 보이는 기상청이 영국의 수치예보모델의 국내화와 국내수치예보시스템의 연구 및 개발을 함께 진행한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예보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까?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고 외국 인력을 영입하는 것은 당장은 더 쉬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위해선 더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국내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