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종수 한국BCP협회 연구소 연구소장

왜 우리에게 국제표준이 절실하게 필요한가?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직접적인 이해 관계자 임에도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 산소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산소에 대한 고마움이나 필요성을 항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처럼 국제표준 역시 우리들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부로 느끼며 그 존재의 필요성과 고마움을 깨닫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 표준에 관한 관련법을 살펴보면 헌법 제127조 제2항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국가표준기본법과 산업표준화법 및 하위규정 등에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표준기관으로는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KATS)이 있으며 국제표준화기구로는 ISO(국제표준화기구), 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 ITU(국제전기통신연합) 등이 존재한다.

문화차를 극복하는 길
국제표준이 왜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사례는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으며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이에 있다. 90년 대 초 유럽에 사는 한인들이 고국의 향수를 달래는 방법의 하나는 한국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막 유학 온 학생들이 고향이 그리워 들뜬 기분에 비디오를 빌려와도 볼 수가 없었다. 이유는 한국과 유럽의 방송방식이 달라서였다.

유럽은 PAL(Phase Alternate Line)방식 표준 TV를 시청하도록 채택 하고 있었는데 반해 우리는 미국, 일본, 대만 등과 함께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방식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프랑스가 개발한 SECAM(Sequential Color with Memory)표준 방식은 프랑스와 구 동구권에서 사용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온 비디오를 보려면 NTSC방식을 PAL방식으로 바꾸거나, TV와 비디오기계를 한국에서 가져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디오테이프와 비디오레코더, TV가 같은 방식이어야 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유학생들은 유학 와서 가장 먼저 구입하는 것이 TV이다. 현지 언어를 배우는 도움은 되겠지만 우리 문화를 접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 현지에서 제작발매 된 아무리 좋은 비디오프로가 있어도 무용지물임을 알아가는 것으로 첫 유학생활의 고단함을 시작한다. 이런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이것이 문화차이이며 현지 적응을 위한 첫 단추인 것이다.

시장규모를 제단하는 표준
이처럼 표준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한 대 이상을 소유하고 없어서는 안될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대폰의 인터넷서비스가 국제표준에 의해 제공된다. 그리고 그 표준이 순수 우리기술로 개발한 WiBro(와이브로, Wireless Broadband Internet)로서 지난 2007년 ITU(국제전기통신연합)에서 3세대 이동통신의 기술표준으로 채택됐다.

TV와 휴대폰 모두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하지만 TV는 세 가지의 다른 표준으로 인해 시장이 분리돼 있는 반면 3세대 이동통신은 와이브로라는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됨에 따라 기기와 사용자 모두가 편하게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표준화가 돼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시장의 크기는 물론 국제무역에서의 한계를 만들고 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가장 큰 비즈니스가 바로 수출이다. 우리가 현재의 부를 이룰 수 있었던 것 역시 수출의 힘이다.

박정희 정부 때 초석을 다진 것이 바로 1960년 초 여의도 공항에서 눈물로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한 것이다. 이때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76달러이었고 태국은 220달러 필리핀이 170달러였다. 국민소득 100달러를 넘어서기 위한 필사의 각오로 이뤄진 것이 인력수출이다. 그 후 중동의 건설현장과 베트남 전쟁 등에 흘린 많은 땀과 희생을 기반으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산업부흥을 통한 기술발전을 통해 우리의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면서 불과 40여년 만에 세계경제 규모 13위에 올라섰다.

국제표준은 국가성장의 미래
이명박 정부가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전략으로 글로벌스탠다드와 내셔널스탠다드의 조화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수출을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바로 국제규격인 국제표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 해도 국제적으로 통용이 안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제교역을 위해서는 국제표준이 필수적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수출만이 살 길이며 수출을 위한 전략이 바로 국제표준을 활용하는 것이다.

국제표준은 우리가 선택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필수적으로 갖추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국제표준 안에는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국제비즈니스는 하나의 무역으로 재화를 교환 또는 거래를 하는 것 외에 상품의 정보 교환과 각국의 정보를 파악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ISO의 표준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표준이 개발되며 그 표준으로 인해 수출제품의 문제점은 없는지 등등 수많은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용함으로써 미래를 선도하는 제품을 국제무대에 선보일 수 있다.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뛰는 이유도 자국산업의 보호와 세계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당연히 지식경제부가 소관부처로 이를 추진해야 한다.

자국 산업보호와 시장선점의 길
국제표준은 WTO(세계무역기구)/TBT(technical barriers to trade, 기술무역장벽)협정에 따라서 진행된다. FTA 역시 상대국의 기술 규정, 표준 및 적합성평가 등이 재화교역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기위한 절차와 방법 등을 협상한다. 한미 FTA건도 미국무역대표부(USTR)에서 바로 TBT에 대해 의제로 요구한 바 있다.

지금부터는 국제표준 개발의 한국대표로 ISO/TC223 Societal security(사회 안전)총회에 두 차례 참석해 지켜본 국제표준 개발의 과정을 소개하려 한다. 1992년 ISO9000시리즈를 번역해 한국에 소개한 것이 국제표준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일깨우게 된 동기였다고 본다. 이후 ISO14000(환경경영), ISO/TS16949(자동차분야 품질경영), ISO13485(의료기분야), ISO17799(정보보호) 등 이외에도 많은 표준들이 소개됐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ISO/TC223 Societal security는 ISO/WD22300, ISO/NP22301, ISO/WD22320, ISO/WD22321, ISO/PWI22322, ISO/PWI22397, ISO/PWI22398, ISO/PAS22399 등이 있다.

개발되는 과정은 총 6단계로 1단계가 NWIP(New Work Item Proposal)로 신규제안, 2단계 WD(Working Draft) 작업초안, 3단계 CD(Committee Draft) 위원회초안, 4단계 DIS(Draft International Standard) 국제표준안, 5단계 FDIS(Final Draft International Standard) 최종규격표준안, 마지막 6단계는 IS(최종표준규격)로 총 소요기간은 약 36개월 정도가 예상된다. 5단계에서는 찬성 또는 반대 투표만 할 수 있으며 조건부는 허용하지 않는다. PAS(Publicly Avaliable Specification)는 긴급을 요할 때 WG차원의 합의를 반영하는 규범적 문서이다. NWIP 등록 시 TC/SC 차원에서 논의를 거쳐 국제규격으로 제정할지 또는 PAS로 제정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최종 발간은 해당 WG 소속 TC/SC P멤버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ISO/TC223 사회안전
이번총회는 5차 한국총회보다 하루가 더 길었고 참석은 투표권을 가진 멤버 35개국 중 23개국, 참관멤버는 17개국 중 2개국, 10개 교섭(Liaison)기관 중 3개 기관, 초대 받은(Guest) 국가로는 7개국(아르메니아, 방글라데시, 부루라이, 카자스탄, 팔레스타인, 우즈베키스탄, 스리랑카) 등 총 30개국이 참석했다. 또한 WG가 WG1(프레임워크), WG2(용어정의), WG3(명령 및 통제와 조정과 협력), WG4(대비 및 연속성) 등 총 4개와 하나의 특별기술 그룹으로 진행됐다.

개발 중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 중 ISO/WD22321을 제외한 7개였다. 첫날은 일본을 시작으로 마지막에 한국의 정영환 대표(한국BCP협회 부회장)가 인사말을 전했고 이어 각국의 소개와 함께 자유 발언이 진행됐다. 이번 회의의 이슈는 지난 한국총회에서 논의됐던 신설 WG4로 개발 중인 하이레벨 보고서의 관리시스템에 관한 범위설정 등의 설명이 있었다.

자국의 이익을 만드는 자리
WG4는 ISO/DIS22399를 개발한 마크 시갈(Mark Siegel)의 주도하에 법적인 검토와 상세디자인을 개발토록 했다. 특히 사회 안전에 대한 보고에서는 연간 사망자수가 지진으로 1만3000명, 산업재해 2900명, 테러로 2500명 등에 이르며, 인터넷 해킹 사고도 연 14만 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세르비아 조란 케코비치(Zoran Kekovicd)의 여행산업의 보안 및 안전(Management of Safety and Security in the Tourism Industry)에 대한 제안 설명에서는 특히 호텔과 리조트, 다른 시설들 등 관련 사업에 정부도 포함하는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됐다. 유럽생활을 오래 한 본인으로서는 진행하는 방법 등이 낯설지 않았다.

각 그룹별로 소속돼 각자의 소개가 끝나면 이어 분과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 한다. 개발되는 제품의 첨가와 수정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협의를 통해 바로 입력한다. 토론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방식이 당황스럽고 조금은 낯설 수도 있다. 비록 한 단어 때문에 수 시간의 격론이 있어도 신기하리만큼 합의가 이뤄지고 다음으로 과정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우리가 배워야 하는 민주주의식 협의과정이다.

모두가 국가 대표로 참석했기 때문에 다들 밤 낯으로 열심히 하지만 특히 분과 위원장과 간사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전날의 토의내용을 정리해 와서 다시 협의를 이끌어내고 수정한다. 모든 국제회의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첨예하지만 이 회의에서 우리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보다는 개발돼는 과정과 거기서 얻는 정보를 취합해 대처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국제표준은 유럽이 중심이었고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이상 비영어권이 주도하기에는 매우 어려웠다.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 입장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자기네 고유의 전통술과 과자를 공수해 와서는 회원들이 쉬는 시간과 만찬에 제공하고 이를 기회로 자기네 문화를 소개하고 논하는 소위 로비(?)를 벌였다는 점이다. 술과 과자가 별거냐 하겠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준비해 온 것은 물론 그것을 빌미로 다른 나라 대표들의 틈을 파고들어 자국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보유토록 한 그들의 전략과 준비성이 놀라웠다.

일본이 ISO 국제회의에 지독하리만큼 꾸준히 참석해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우리와의 차이이며 부러운 점이다. 이제 우리도 이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다음번 또 그 다음번 회의에도 참석해 우리의 이익을 반영한 국제표준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