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26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50여명이 국회 부의장이 사용하는 문을 통해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했다. 또 민주당은 9일째 점거중인 국회의장실과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를 비롯한 3개 상임위원회도 최소한의 인력을 배치해 점거를 이어가기로 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한나라당이 26일부터 연말까지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을 통해 국회 본회의 강행처리에 나설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것이다.

회의 상임위원회 상정법안도 그렇고 국회 본회의에 상정법안도 그렇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폐지할 법안과 수정할 법안, 원안 그대로 가결할 법안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모습을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까? 국회가 항상 이런 모습이다 보니 이런 상황을 악용(?)해 잘 못된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공무원들도 있는 것 같다. 이번에도 여야 대치의 극환 상황을 내심 바라는 공무원들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다름 아닌 행정안전부에서 지난 2008년 10월 말 입법예고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재난포커스 2008년 11월호 18쪽, 12월호 18쪽 참고>이 그 한 예이다. 이 법안은 정부 부처간 이견이 많아 법제처 심사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 2008년 12월4일 법제처 심사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 12일 차관회의, 16일 국무회의를 거쳐 이명박 대통령 승인을 득한 후 지난 2008년 12월22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은 지난 2008년 12월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통합적재난안전관리체계구축’을 위한 기반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의 일부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예상외의 빠른 진척이다. 이 법안 내용 중 ‘표준’이라는 용어가 입법 예고됐을 때까지도 그대로였지만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는 ‘표준’이라는 용어가 ‘기준’으로 모두 바뀌었다. 이 법안을 입안한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 방기성 재난안전관리관이 ‘표준’과 ‘기준’의 차이로 인해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상황을 모를 리 만무하다. 또 지난 2008년 12월18일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서 재난안전 분야 국제표준인 ‘ISO / PAS 22399’를 국가표준으로 고시(KS A ISO / PAS 22399)한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의 정부입법안에 결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알고도 결재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치욕’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회의원들이 이런 상황을 알고도 이 정부입법안을 수정하지 않고 원안 그대로 가결한다면 WTO/TBT 협정 위반으로 국가적 망신을 넘어 ‘사회안전망 구축’은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 재난포커스 - 윤성규 편집장  sky@di-focu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