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이하 일부 개정안)’<재난포커스 2008년 11월호 18쪽, 12월호 18쪽 참고>이 2008년 12월4일 법제처 심사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 12일 차관회의, 16일 국무회의를 거쳐 이명박 대통령 승인을 득한 후 지난 2008년 12월22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통합적재난안전관리체계구축’을 위한 기반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의 일부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예상외의 빠른 진척이다.

한국산업표준 반영 조항 삽입
정부 부처간 마찰도 많았지만 결국 입법예고안에 ‘표준’이라는 용어를 모두 ‘기준’으로 바꿨고 ‘<산업표준화법> 제12조에 따른 한국산업표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한국산업표준을 반영하여야 한다’라는 단서 조항도 포함시켜 정부 부처간 마찰은 피해갔다. 재난포커스는 지난 2008년 10월17일 행정안전부가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이 법안’을 분석해 지난 2008년 11월호에 ‘올바른 재난관리표준 제정을 위한 긴급 제언’이란 제목으로 진단했다.

이어 지난 2008년 12월에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 통과는 재앙’이라는 제목으로 긴급 진단했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입법안인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는 두개의 ‘재난 안전’ 관련 법안을 갖게 된다. 대형화되고 복잡화하고 있는 재난, 재해 상황에서 국제적 정보공유와 공조가 빈번해지고 있는 요즘 국가 표준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국제표준을 잘 도입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란 전문가들이 지적이 많다.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 52개국 재난 안전 분야 전문가들이 국제적인 재난, 재해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국제재난안전관리표준’인 ‘ISO/TC223 Societal Security(사회안전)’ 기구에서 국제 표준(ISO/PAS22399)을 만들었다. 이 국제표준을 기반으로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지난 2008년 12월18일 이미 ‘재난 안전’ 관련 ‘국가 표준인 ‘KS A ISO/PAS22399’’를 제정, 고시했다. 이는 국제 표준을 우리나라가 ‘재난 안전’ 분야 국가 표준으로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12월22일 국회에 제출된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는 이제부터 ‘재난 안전’ 분야 국가표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국회에 제출된 ‘일부 개정안’에 ‘표준’이라는 용어를 모두 ‘기준’으로 바꿨지만 대형 재난, 재해로 인한 국제 공조가 필요할 때 국제사회는 ‘표준’으로 우리나라는 ‘기준’으로 표기하는 차이일 뿐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또 국제사회에서 ‘표준’이 제정됐고 추가 조항에 대해 개발되고 있는 것을 감안해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서 국가 표준으로 고시했는데 행정안전부는 이제 ‘표준(기준)’을 만들겠다고 선포한 수준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말하는 ‘표준(기준)’의 실체는 아직 초안도 없는 상태이다. 이번 제18대 제279회 국회에 제출된 ‘일부 개정안’이 어떻게 행정안전위원회심사, 체계자구심사, 본회의심사를 거쳐 정부로 이송돼 공포될지 12월23일 현재 알 수 없다.

목적은 같으나 표기만 다르게
하지만 원안대로 가결된다면 언젠가는 행정안전부(장관 원세훈) 재난안전실(실장 김진항) 방기성 재난안전관리관이 입안한 이번 ‘일부 개정안’ 중 ‘기준’이라는 용어를 ‘표준’으로 바꿔야 하는 일대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욕 중으로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오?”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안전부는 ‘일부 개정안’ 제안 이유로 “모든 유형의 재난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국가재난관리기준’의 제정, 체계적인 홍보계획을 수립, 상황보고체계 개선 등으로 통해 재난대비활동의 안전성과 책임성을 제고하는 한편 어려운 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며, 길고 복잡한 문장은 체계 등을 정비해 간결하게 하는 등 국민이 법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정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국가재난관리기준의 도입(안 제34조의3부터 제34조의5까지 신설)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는 ▲종전의 재난대응 방식에 따를 경우 다른 유형의 사건사고와 복합적으로 이어져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에 대해 유연하게 관리하기 어려워 대형 재난의 발생 원인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모든 유형의 재난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국가재난관리기준’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기준을 각급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소관업무에 적용토록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게 한다. 셋째는 ▲각종 사고와 재난의 특성에 맞는 기준을 제정해 활용함으로써 재난예측의 불확실성과 재난관리체계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재난대비활동의 안전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제1장 총칙 제3조(정의) 9에 따르면 ‘국가재난관리기준’이란 모든 유형의 재난에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재난관리의 전 과정을 통일적으로 단순화, 체계화 한 것으로 제14조 제2항에 따른 중앙본부장이 고시한 것을 말한다고 돼 있다. 제14조 제2항은 중앙대책본부의 본부장(이하 “중앙본부장”이라 한다)은 행정안전부장관이 되며, 중앙본부장은 중앙대책본부의 업무를 총괄하고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제34조의3(국가재난관리기준의 제정 등) 제1항에는 중앙본부장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의견을 들어 국가재난관리기준을 제정, 개정 또는 폐지할 수 있다. 다만, <산업표준화법> 제12조에 따른 한국산업표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한국산업표준을 반영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지경부 장관 ‘표준’… 행안부 장관 ‘기준’
결국 행정안전부(소방방재청)는 지금까지 ‘국가재난관리표준’을 만들기 위해 수십억원의 연구용역비를 몇 년간 소비했으나 ‘표준’의 제정·개정·폐지의 권한을 가질 수 없어 기존 ‘일부 개정안’의 내용 중 ‘표준’이라는 용어를 ‘기준’으로 바꾼 것이다. 이 연구용역과제는 동국대학교 이영재 교수가 맡아왔다.<재난포커스 2008년 11월호, 12월호 참고>

산업표준화법 제12조(한국산업표준)는 ▲① 제11조에 따라 고시된 산업표준을 한국산업표준(KS)이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산업표준이 아니면 한국산업표준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산업표준화법 제11조(산업표준의 고시)에는 ▲지식경제부장관은 제5조 제1항에 따라 산업표준을 제정·개정·폐지한 때 또는 제10조 제1항에 따라 산업표준의 적부를 확인한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체 없이 이를 고시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산업표준화법 제5조(산업표준의 제정 등)에는 ▲①지식경제부장관은 산업표준을 제정·개정 또는 폐지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산업표준안을 작성하여 고시하고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돼 있다. 산업표준화법 제10조(산업표준의 적부확인 등)에는 ▲①지식경제부장관은 산업표준을 제정 또는 개정한 날부터 5년마다 그 적부(適否)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지식경제부장관은 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돼 있다.

< 재난포커스 - 윤성규 기자  sky@di-focu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