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10일 정권교체와 함께 경제 회생의 희망을 꿈꾸던 국민들의 가슴은 숯덩이로 타들었다. 한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전소되는 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숭례문 화재는 지난해 국민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문화계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물론,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혔다. 특히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관리와 화재예방 시스템은 모두를 경악케 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재의 관리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 화마에 쓰러지며 국민의 가슴을 시리게 했던 숭례문.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온몸을 불사르며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숭례문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가를…
< 재난포커스 - 최정환 기자  jhc75@di-focus.com >

조선 태조 때 건립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물론 한국전쟁마저도 꿋꿋이 이겨낸 숭례문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훌륭하게 복원한다 해도 조상의 숨결, 정신, 얼까지 살려낼 수 없기에 비통함은 더 한다.

사라지는 국보(國寶)…‘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쳐(?)’
당시 국보 1호라는 상징적인 문화재였음에도 제대로 된 화재 대응 매뉴얼은커녕 매년 한 차례씩 실시되던 화재 훈련에서도 제외됐던 사실은 안타까움을 더하는 대목이다. 결국 문화재에 대한 허술한 관리가 숭례문 화재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대한 관리 부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남 화순에 위치한 쌍봉사 대웅전(보물 163호)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보기 드문 목탑 양식의 건축물이었으나 1984년 불에 타 소실됐고 사찰건축물인 금산사 대적광전(보물 476호) 역시 1987년 화재로 사라졌다.

2005년에는 신라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강원 양양)의 원통보전 등 경내전각 16개동(1337.26㎡)이 숯덩이로 변해버렸고 보물 479호인 동종을 비롯한 문화재 6점도 녹아내렸다. 2006년에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경기 수원화성(사적 3호) 서장대와 서울 창경궁 문정전(사적 123호)이 화마의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피해 속에서 관리 실태의 지적도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식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문화재청이 낙산사 화재를 계기로 중요목조문화재에 대한 방재시설 설치에 나섰지만 예산의 일시 투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120여 곳의 목조문화재 가운데 겨우 4곳에만 방재시설을 설치했을 뿐이다. 결국 화마로 쓰러진 다른 문화재들의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관리 주무부서인 문화재청은 심각성을 간과한 채 애써 눈과 귀를 닫고 있다는 얘기다.

허술한 규정 여전…‘맞춤형 안전대책 시급’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의 ‘문화재 부실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국감 질의자료를 통해 “중요 목조문화재가 있는 123곳 중 화재경보기를 설치한 곳은 35곳에 불과하고 화재 감시카메라(CCTV)도 72곳이 미설치돼 있으며, 소화전이 없는 곳도 7곳이나 되는 등 화재에 여전히 취약하다”면서 “숭례문 화재의 교훈은 어디로 간 것이냐. 소방방재시스템의 선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한선교 의원도 “문화재청이 2007년까지 설치한 도난경보장치는 136점에 불과해 전국 1853점의 국보 및 보물 수 대비 설치율은 7.3%에 그치고 있으며, 그나마 설치한 도난경보장치도 전기료 절약을 위해 가동을 중지하는 등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도난 경보장치를 저조하게 설치하고 관리자 교육도 엉성하게 하는 문화재청의 행태는 마땅히 시정해야한다”고 질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국보·보물급 이상 목조문화재 123곳 가운데 화재경보기가 설치된 곳은 28%인 35곳에 불과했다.

	그림1. 소방시설 현황 통계(건국ENI 2007) 그림2. 예방 및 유지관리 외 현황(건국ENI 2007)

화재 대응 매뉴얼도 일정한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이라 문화재 소실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그동안 다소의 보완이 이뤄지긴 했지만 문화재에 대한 허술한 관리 규정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문화재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화재 안전 대책의 모색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나마 소방방재 시설의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는 관련 법률도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숭례문 화재 당시 문화재보호법 88조 ‘화재예방 등 법률’에 따르면 문화재 화재예방 및 진화를 위한 구체적 기준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시행령에는 아무런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방 설비를 강제할 근거가 없었고, 문화재 관리주체인 지방자치단체나 소유주들도 소방법을 준용해 최소한의 소방시설 설치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예로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의 경우 야간 경관을 위해 설치한 조명과 각종 전선이 2층 누각에 어지럽게 널려있고, CCTV도 현장초소에서는 볼 수 없게 설치돼 있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당시 법적으로는 관리 실태를 문제 삼을 수 없었다. 개정 전 소방법은 문화재의 특성이 아닌 면적에 따라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돼 있어 간이소화기만 설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적이 18만 제곱미터가 넘는 종묘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 7대의 CCTV가 있었지만 정문과 관리사무소 근처에만 설치돼 있어 정전, 영녕전 등 주요 문화재에 접근하는 방문객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개인 소유 유형문화재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사진1. 처마 밑 난립된 전선줄 사진2. 방치된 LPG가스 실린더 사진3. 목재로 구획된 보일러실

먼지가 쌓인 소화기에는 점검표를 찾아볼 수 없었고, 가스통이나 각종 인화물질이 문화재 이곳저곳에 방치돼 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숭례문 화재 이후에도 크게 나아진 건 없어 보인다. 지난해 말 서울시의 경우 주요 목조문화재 11곳의 화재 위험성을 평가한 결과 흥인지문 등 6곳의 안전관리가 미흡했고, 그나마 양호한 곳도 단 1곳에 불과했다.

경기도의 경우도 도내 목조문화재 200곳을 조사한 결과 88%인 176곳에 화재감지기가 없었고, 74.5%인 149곳에는 소화전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특히 5곳은 소화기조차 비치돼 있지 않아 심각성을 더 했다. 숭례문 화재 이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 면적에 관계없이 소방시설을 의무 설치토록 규정은 강화됐지만 현실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방재선진국 일본은…‘사전 예방에 중점’
화재, 홍수, 지진 등의 재난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그 만큼 재난은 사전에 충분한 예방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와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고, 예산의 집행이나 법의 제·개정에도 적극적이지 못한 실정이다. 언제나 사건이 터진 뒤 복구에 매달리는 현실에서 방재선진국으로 이름난 일본의 문화재 관리 실태를 비교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문화재를 등급화해 그에 걸맞는 방재시스템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 개별 문화재의 특성에 따른 맞춤 소방 설비를 개발해 화재 진압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으며, 문화재 보호를 위한 지역주민의 교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의 이런 대응에는 과거의 아픔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깔려 있다. 일본도 숭례문 화재와 같은 어이없는 사건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50년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유적지인 교토의 긴카쿠지(金閣寺, 금각사)가 한 행자승의 분풀이 도구로 전락해 방화로 소실됐던 사건이 있었다.

	사진1. 일본 고야산 단상가람 어영당의 상향방수식 수막설비 살수장면 사진2. 일본 고야산 단상가람 부동당의 지붕살수장비 살수장면

하지만 일본의 대처방법은 사후복구에 머무르는 한국과는 달랐다. 화재진압이 아닌 화재감지와 화재 시 문화재 격리를 기본으로 한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으로 문화재 방재시스템을 정비했다. 그 결과 긴카쿠지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지만 무엇보다 문화재 중 세계 제1의 방재시스템을 자랑하는 곳으로 변모했고, 일본은 방재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일본의 방재시스템을 살펴보면 방수총 및 소화전을 하나의 수납함에 수납해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으며, 화재의 조기진압을 위해 불꽃감지기를 건물 외곽의 처마 밑이나 마루 밑에 설치하고 있다. 또한 화재의 확산을 막기 위한 수막설비와 지붕살수설비 등도 완벽하게 설치해 예방은 물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방재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긴카쿠지도 목조건물의 틈새에 센서를 달아 출입 외 지역을 출입하거나 작은 화재의 징후만 보여도 사이렌이 울리도록 돼 있다. 주변 순찰도 주간 2명, 야간 4명이 하루 종일 풀타임으로 돌고 있다. 특히 긴카쿠지의 방재설비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65mm구경 소방호스가 연결된 소화전 30개를 비롯해, 땅속에 매장해 놓은 자동 소화전이다. 사찰 주변의 미관을 고려해 매장해 놓은 자동 소화전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지상으로 올라와 어느 때든 불을 끌 수 있는 첨단장치다. 일본의 문화재 관리 상태를 보면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이 엿보인다. 한국도 이제는 배워야 한다. 소방 설비의 완비와 체계적인 방재시스템의 구축은 물론 관리체계도 일원화해 예방과 대응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다시는 문화재 소실이라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 빨리 문화재의 철저한 점검과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