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수도 도로 항만 등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기간서비스가 중단되거나 원활하지 못할 경우 또 위기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더 크게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 및 자부심 결여로 조국을 떠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1999년 6월30일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에서 일어난 사고가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당시 화재로 잠자고 있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이후 진행된 원인규명 과정에서 피해유족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고 결국 몇몇 가족이 조국을 버리고 해외로 떠났다.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국방장관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유사시 신속한 대응을 위한 미국의 국가시스템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사례로 그들은 갖췄으나 우리는 갖추지 못한 정부의 업무연속성에 대해 점검해 보고 어떻게 보완해 나가야 할지 대안을 찾아보려 한다.
< 재난포커스 - 이규복 기자  kblee@di-focus.com >

미국 현지시각으로 1월20일(한국시각 21일 오전 2시)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아프리카계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남녀성 대결과 인종 대결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번 당선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두려움 보다 희망, 갈등과 반목 보다 목적을 위한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미국의 개조’를 위한 작업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국가의 위대함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P·로이터통신 등 미 언론들은 현장 관람객 숫자를 200만명 정도로 추산했으며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역에서 최소 10억명 이상이 취임식 생중계를 지켜본 것으로 추정했다. 이날 진행된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향후 거대 강국인 미국의 행보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기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날 행사가 세계의 이목을 끈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취임식보다 중요한 위기관리
지난 정권 각료 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로버트 게이츠(사진) 국방장관이 취임식에 불참한 사유 때문이다. 이유가 어쨌든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중징계감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수장이 임명되는 자리에 최 측근 각료가 자리를 함께하지 않는 상식 밖의 일이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벌어진 것이다. 더욱이 전임 부시 행정부 각료로서는 유일하게 버락 오바마 새 정부에서 자리를 유지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자리를 함께 하지 않은 것은 구구한 억측이 나돌만한 일대 사건이다.

하지만 사연인 즉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취임식에 불참한 것은 취임식 행사에서 테러나 자연재해 등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백악관 데이너 페리노 대변인은 취임식 전날인 19일 “정부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취임식 당일인 20일 하루 동안 게이츠 국방장관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했다”며 “퇴임하는 정부와 차기 정부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미국 시간으로 20일 낮 12시를 기해 대통령 자리를 주고받았다.

정서상 불가능한 위기관리?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이 핵 공격 등으로 국가위기발생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제정한 ‘대통령직 계승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 하원의장→ 상원 임시의장→ 국무장관 등의 순으로 대통령 권한을 승계할 수 있도록 순서를 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어 대형 테러가 발생할 경우 동시에 희생될 수 있는 위험이 높았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을 지정해 안전한 곳에 격리시켜 놓는 것이다.

국방부 제프 모렐 대변인은 “게이츠 장관은 20일 워싱턴DC 외곽의 군기지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런 조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대통령·부통령·하원의장과 주요 장관들이 한자리에 참석하는 대통령 연례 국정연설 행사 때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정됐다. 2007년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때는 앨버토 곤잘러스 법무장관이,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국정연설 때는 댄 글리크먼 농무장관이 현장에서 격리된 대행 역할을 맡았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유고시에는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되어 있으나 미국처럼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각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서 임시로 권한을 위임하지는 않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임 대통령의 권한이 자정을 기해 신임 대통령에게로 자동 이임되며 미국처럼 이후 대통령과 각료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고 해서 권한을 이임하거나 하지는 않다”며 “미국의 시스템이 재난이나 테러 등 각종 우발적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에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는 정서상 그런 시스템을 갖추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3년 10월9일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으로 비록 대통령은 참사를 면했지만 부총리와 외무부장관 비서실장 등 무려 10여명의 각료들을 한꺼번에 잃음으로써 국정공백을 경험한 바 있다. 더욱이 그 사건을 주도한 것이 북한임이 밝혀지며 국가안보 및 위기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상(?) 미국과 같은 체계적인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답변이었다.

국제적인 사회안전 표준 절실
업무연속성계획(BCP)이 중요한 것은 이윤을 추구하고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일반기업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안전과 생명,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솔선수범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모든 안전사고나 재난재해는 우리가 예측하거나 인지하기 전에 발생한다. 때문에 지금 당장은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비무환의 자세로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전세계 모든 국가가 재난재해에 대한 표준을 마련하고 이를 시스템화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쓰나미 사태이후 세계의 시각은 달라지고 있다.

	아웅산사태 사고직전

이미 자국의 재난안전에 대한 표준을 보유한 미국 영국 호주 이스라엘 일본 등 방재선진국을 포함한 전세계 50개국 이상의 국가들이 ‘ISO/TC223 사회안전’ 총회에 자국의 대표들을 참석시키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도 ISO/TC223 사회안전 부문 정영환(한국BCP협회 부회장) 한국대표의 요청으로 지난해 5월 제5차 총회를 서울에 유치한 바 있다. 당시 서울 총회에는 총 52개국에서 15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국제표준의 조속한 제정을 논의했다. 이 같은 열의에 힘입어 서울 총회 이후 개최된 제6차 총회에서 국제 사회안전 표준으로 ISO/PAS22399가 제정됐다.

향후 적용과 보완이 관건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이렇게 제정된 국제표준을 지난 해 12월18일 한국산업표준으로 제정하고 고시했다. 기술표준원이 고시한 ‘KS A ISO/PAS22399'는 사회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지침을 담고 있으며 기관 및 조직이 이를 바탕으로 각종 사건사고에 대비하고 운영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해 준다. 늦었지만 사회안전 분야에 대한 국가표준을 국제표준으로 마련한 점은 인정해 줄 만한 성과지만 문제는 이 표준이 아직은 속이 채워지지 않은 채 틀만 갖췄다는 점에서 향후 보완 및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ISO/TC223 사회안전 총회 회의모습

IPOCM(Incident Preparedness and Operational Continuity Management 사고대비와 업무연속성관리) 개념을 제안하고 규격개발을 주도한 미국의 마크 시갈(Dr.Marc H.Sigel) ISO/TC223 사회안전 워킹그룹 컨비너는 “표준은 법규가 아니며 법규는 표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각 나라마다 버전이 다른 사회안전 표준을 일원화 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 역시 ISO/TC223 사회안전을 통해 제정된 국제표준을 바탕으로 업무연속성계획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 분야의 국가표준인 KS A ISO/PAS22399가 제대로 정착하고 이를 통해 국가와 기업들이 업무연속성계획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통한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세계화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연 2회 개최되는 ISO/TC223 사회안전 총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 한미 FTA 문제 등에서 각각의 정당이 국익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기초는 지식이며 지식은 기준과 표준으로 정의될 수 있다. 국가의 존위를 위한 업무연속성계획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더욱 빛난 이유를 분명히 알고 내부적으로는 국제표준을 통한 체질강화를, 외부적으론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해 우리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