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유종기 영국 BCI(Business Continuity Institute) 한국대표

오늘날의 공급체인은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공급망(Supply Chain)과 협력업체, 유통업체와 운송업체, OEM 제조업체, 도매업체와 소매업체들을 포괄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이들 참가자들은 극히 복잡한 구조를 이룸으로써 어느 연결고리가 취약한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서로에 대한 상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기업들, 글로벌 공급체인 적극 활용
오늘날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제품을 시장으로 내보내는 데 관련된 수많은 기업들이 서로 엮여 있는 네트워크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체인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에서 이들 네트워크는 정보와 제품, 그리고 돈을 전세계로 유통하는 데서 전례 없는 수준의 효율성을 이뤄냈다. HP, IBM, 인텔(Intel),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유명한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중소규모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들도 글로벌 공급체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체인은 복잡성 그 자체로 인해 대다수의 경우 사전에 취약성을 파악하기가 힘들어졌다. 예를 들어 필립스(Phillips) 공장의 생산차질에 대해 에릭슨(Ericsson)이 취약했던 것은 단 하나의 공급선에 의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주요 경쟁사가 똑같은 공급선에 의존하고 있었던 결과이기도 했다. 노키아(Nokia)가 신속하게 대응해서 필립스의 생산여력 및 전세계 다른 반도체 업체들로부터 필요한 칩을 전부 확보해 가자 에릭슨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글로벌 공급체인에 대한 가능한 충격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 있는 직접원인은 자체 공장에서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공급업체 공장에서의 차질, 운송시스템의 문제, 통신과 정보시스템의 장애, 또는 고객 측에서의 문제 등 어느 쪽에서든지 생길 수 있다. 또한 전세계가 연결됨에 따라 충격에 취약해진 것은 공급체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의존해야 하는 모든 기업들도 충격에 상당히 취약하다.

충격의 여파가 극소화될 수 있게 준비
많은 기업들에 있어서 취약성이 높아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보다 격화된 경쟁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지식이 전세계로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개도국들이 세계무역에 참가하게 됐고 이에 따라 기술이나 노하우에 기반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소비자들이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반면, 기업들은 더욱 열심히 일해야만 하고, 한 회사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실패하게 되면 다른 경쟁업체들이 언제든지 이 회사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기업은 경쟁업체들보다 더 높은 탄력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여하한 종류의 충격에 직면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자신의 고객들에게는 그 충격의 여파가 극소화될 수 있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제공해야 하는 필요에서 많은 기업들은 과잉재고를 없애 나갔다.

1980년대 도요타 자동차를 선두로 많은 기업들은 JIT(Just-In-Time) 생산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JIT 환경은 잘 보이지 않는 비용을 수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드 자동차는 9.11 테러사건 후 부품을 실은 트럭들이 캐나다와 멕시코 등 국경을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생산라인이 여러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포드는 당초의 생산목표에 비해 2001년 4분기의 생산량이 13% 줄어들었다.

도요타의 경우에도 비슷한 위기가 닥쳐 항공기 운항 중단에 따라 독일로부터 공수될 예정이던 스티어링 센서들이 한 협력업체에 도착하지 못함으로써 인디애나에 있는 시콰이아 SUV 공장이 불과 수 시간 차이로 전면 중단될 위기를 면하기도 했다. 포드, 도요타, 크라이슬러 및 다른 제조업체들도 여분의 재고가 거의 없는 빡빡한 공급체인을 운영했기 때문에 원자재라고는 수일, 때로는 수 시간의 작업분량밖에 보유하지 않았으며 그만큼 운송망에 대한 충격에 취약했다.

사보타주·컴퓨터 해킹·노사분쟁 등도 포함
9.11 테러사건은 미국 기업인들에게 테러공격에 따른 충격을 실감케 해 줬다. 그러나 단순 사고나 사건, 즉 이상기후나 지진 등도 테러에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인 공격이 더 위협적인데 왜냐하면 이 같은 공격은 적응성이 있어서 시스템을 어느 일부분에 대한 방어 내지는 탄력성을 보강하면 다른 부분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공격은 비단 테러뿐만이 아니라 규모는 좀 다르긴 하지만 사보타주나 컴퓨터 해킹, 그리고 노사분쟁을 포함키도 한다.

한 기업의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려고 할 때에 경영자는 보안의 강화, 즉 충격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는 한편 탄력성(Resilience, 복원력으로도 해석한다)의 증대, 즉 충격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양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보안의 강화는 여러 겹의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기반해 ‘아슬아슬한(near-miss)’ 사건들을 추적해 대응하고 모든 직원들이 보안에 참가토록 하는 한편 정부기관 및 거래처, 그리고 때로는 경쟁자들과도 협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충격의 핵심은 생산능력이 감소함으로써 수요에 공급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예기치 못한 수요의 증가로 인해 수급의 큰 불균형이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수급의 불균형에 신속히 대응키 위해 기업들은 비용을 증가시키지 않고도 여력을 축적해야 한다. 또한 가능한 한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사양이 결정되는 공급체인을 개발해야 한다.

이 같은 시스템에서는 초과공급 품목이 초과수요 품목 쪽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된다. 부품과 플랫폼을 통일하고 제품의 디자인을 모듈화함으로써 같은 부품이 여러 제품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며 특화된 부품이 아닌 표준화된 부품을 가능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공급업체들과의 계약에 유연성을 부여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공급량과 공급시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탄력성은 거래처들과 협력관계에도 의존
그러나 견고한 공급체인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각 기업은 자신이 속한 공급체인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탄력성을 갖게 되는 만큼 탄력성은 거래처들과의 협력관계에도 의존한다. 고객과의 관계가 돈독하고 그 고객과 고유한 공급선이라면 필요한 시기에는 도움을 제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또 바람직한 기업문화가 있어야 한다.

즉 성공을 향한 공통의 정열이 위기에 강하고 탄력적인 기업을 창출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지난 2002년 미국 서부지역 항만에 항만폐쇄 조치가 내려졌을 때 서로 다른 기업문화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몇몇 운송업체들은 당시의 항만폐쇄 조치를 불가항력으로 간주한 나머지 델(DELL) 컴퓨터과 P&G 같은 고객들은 이들 운송업체로부터 변명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즉, 솔루션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델, P&G 및 여타 기업들은 이들 운송업체들의 철학이 자신의 급박하고 정열적인 사고방식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른 거래선과 협력업체를 찾게 됐다. 충격은 언제든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일어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형태로 기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취약점을 파악해서 이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프레임워크를 도입해야 한다. 또 프레임워크는 여러 회사가 하나의 특정 충격에 대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결정할 수도 있고 한 특정 회사가 여러 가지의 가능한 충격에 대해 얼마나 취약한지를 파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