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대표이사 곽영균)가 지난 3월5일 경기도의 ‘담배화재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 답변서에 대한 연기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경기도는 “KT&G가 이번 소송에 대한 시간끌기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세계적인 담배판매제조회사들 중 6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인 만큼 행동에도 더욱 더 책임감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또 “KT&G는 지난 2004년부터 해외에만 ‘화재안전담배(FSC)’을 수출하고 국내 담배는 더 잘 타고 안 꺼지게 하는 연소물질을 첨가해 왔다”며 “KT&G는 화재로부터 안전한 담배를 제조할 법적·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며 제조업자로서 이에 대해 손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 재난포커스 - 장영광 기자  jang@di-focus.com >

소방방재청(청장 최성룡)이 발표한 ‘2008년 화재발생현황’ 원인별 분석에 따르면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2만4058건으로 전체 48.5%를 차지했다. 특히 부주의에 의한 화재원인에는 담배꽁초 방치로 인한 화재가 7223건(30.0%)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전체 4만9631건에 14.6%나 달하는 수치다.<재난포커스 2009년 3월호 51쪽 참조> 국제화재방지협회(NFPA)에 따르면 가정 화재에 의한 사망원인의 25%가 담뱃불에서 발생된다. 또 담배화재로 인해 연간 700명에서 900명이 사망한다. 부산소방본부(본부장 변상호)도 지난해 10월15일 화재원인을 분석한 결과 “9월까지 2270건의 화재 중 담배꽁초가 525건(23.1%)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소비자단체협, “‘담배법’ 조속히 마련해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는 홈페이지에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는 게시판을 만드는 등 '담배화재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회장 김천주)가 지난 2월5일 성명서를 통해 “담뱃불로 인한 화재로 비흡연자의 인명피해와 공동체의 소중한 재산피해가 심각하다”며 “경기도가 담배화재와 관련해 KT&G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을 지지하고 이에 정부가 법적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서에 따르면 KT&G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담배는 피우다가 놔두면 자동적으로 담뱃불이 꺼지는 반면 한국에서 파는 담배는 피우다가 놔두면 더 잘 활발하게 타들어가는 바람에 주변의 물건에 인화해서 화재를 발생시키기 쉽다고 나타났다. 이에 소비자단체협은 “KT&G도 수출용 담배는 화재안전담배를 만들면서 국내용 담배는 연소성이 높은 담배로 만드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KT&G가 담배로 인한 화재에 대한 책임의 불씨를 제대로 끄지 않은 흡연자의 과실로 돌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우며 KT&G의 책임이 더욱 크다”고 비판했다.

경기도, ‘담뱃불 소송’ 불붙여
경기도는 지난 1월13일 담뱃불 화재로 재정손실을 입고 있다며 담배 제조사 KT&G를 상대로 수원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 민간인이나 공공기관이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화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소송 결과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경기도는 화재에 안전한 담배를 만들지 않는 담배 제조사 탓에 794억원의 재정손실을 입었다며 KT&G를 상대로 1차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정손해배상 청구소송을냈다.

경기도는 지난 10년간 경기도가 지출한 담배 관련 화재로 인한 소방비용은 3417억원에 이르며 지난 2005부터 3년간만 1125억원이라고 전했다. 경기도는 소장을 통해 “제조물책임법에 모든 제품 제조자는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 방지대책(대체설계)을 세우도록 돼 있다”며 “KT&G는 지난 2005년부터 외국에 화재안전 담배를 수출하면서도 국내에는 시판조차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담배가 잘 타도록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기도는 “담배제조물의 설계상 결함으로 유발된 화재로 소중한 도민의 세금이 지출됐으나 피고는 책임진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KT&G 측은 “담뱃불 화재의 원인을 제조사에 묻는 것은 자동차 매연 피해 책임을 자동차사와 정유사에 묻는 것과 같다”며 흡연자 당사자에게 화재 책임을 전가했다.경기도소방재난본부(본부장 최웅길)는 지난 2007년 경기지역에서 발생한 화재 1만784건 가운데 11.9% 1291건이 담배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로 인한 재산피해는 16억4000여만원이라고 집계했다.

원유철 의원, 화재안전담배법 입법 추진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현장

지난 2월23일 ‘지방소방재정 지원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한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이 최근 화재예방부담금 부과로 연간 1100억원의 세수 증대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담배의 화재안전 기준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경기도는 KT&G에 대한 소송에 앞서 지난해 7월8일 ‘경기소방재정 개선추진 상황보고회’에서 소방재정 재원 확보를 위해 국내에 시판되는 모든 담배를 ‘화재안전담배’로 생산·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기존의 일반담배로 생산·판매할 경우 ‘화재예방부담금’을 갑당 100원 정도 부가하는 것도 관련 방안으로 함께 제안한 바 있다. 화재안전담배(Fire-Safe Cigarette)는 피우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2∼3초가 지나면 저절로 꺼지도록 설계돼 있는 담배(Self-Extinguishing Cigarettes)다. 원유철 의원실 한 관계자는 “소방방재청, 특허청 등과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를 거치고 있다”며 “외국의 법안을 그대로 도입키에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궐련지 로열티 문제 등의 무리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화재안전담배법은 세계적인 추세
미국에서는 지난 2004년 6월 뉴욕주를 시작으로 현재 37개 주가 담배로 인한 화재를 감소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화재안전담배법을 제정해 시행 중에 있다. 미국에서는 또 국제화재방지협회(NFPA)를 비롯 화재, 청소년, 의료 등 관련 단체 60여곳 이상이 참여하는 ‘화재안전담배(Fire Safe Cigarettes)라는 연합체가 조직돼 미국 전역으로의 관련법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이 단체는 조만간 미국 인구의 85%가 담배화재로부터 예방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EU는 오는 2011년까지 이 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배금자 변호사(경기도 소송대리인, 해인 법률사무소)는 “미국의 담배회사들이 그동안 화재안전담배의 기술이 축적됐음에도 자발적으로 생산하기를 꺼렸던 이유는 담배화재에 대해 제조물 책임을 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미국의 담배회사들은 지난 2000년 필립모리스가 최초로 화재안전담배를 출시하기 이전까지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화재안전담배를 만드는 기술이 없다'고 거짓말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KT&G, 담배 첨가물 일부 밝혀
KT&G는 “화재예방도 좋지만 안전장치를 넣으면 한갑 당 50원 정도 값이 올라갈 수 밖에 없고 특히 미국 담배제조사들도 미국내 판매용에는 화재안전장치를 적용하지만 한국으로 수출하는 담배에는 이 장치를 적용치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현 상황에 KT&G의 이같은 발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보다 자사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고 여겨진다.

KT&G는 폐암 환자와 가족 30여명을 상대로 제기된 ‘담배 소송 항소심’과정에서 KT&G는 스스로 담배를 잘 타게 하는 첨가물을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KT&G는 “담배 종이를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담배종이는 제조단계에서부터 구연산칼륨이나 탄산칼륨 같은 조연제가 첨가돼 판매되고 있다”며 “담배를 빨아들이지 않는 동안에도 담뱃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첨가되는 것일 뿐 니코틴 흡수를 돕거나 촉진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KT&G는 또 “연소성의 증진이나 담배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첨가제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는 이 사항을 들어 KT&G와의 이번 소송을 승소로 이끌 예정이다. 이에 따른 KT&G의 대응과 소송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배 변호사는 “화재위험을 현저히 낮춘 화재안전담배를 만들 충분한 기술이 있으면서도 미국 등 해외에 수출하는 담배는 화재안전담배를 제조 판매하면서 국내용 담배는 오히려 화재위험이 높은 담배만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며 “KT&G의 이러한 이중적 행동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완전히 도외시한 비도덕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