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6월18일 공개한 ‘국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 타당성 재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통합지휘무선통신망(이하 국가통합망) 사업의 비용편익비율(BCR)이 0.75로 ‘경제성이 없다’고 돼 있다. 이는 KDI가 지난 2004년에 발표한 사업타당성 수치 17점대를 뒤집는 결과이고 앞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평가한 2점대를 뒤집는 결과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BCR이 1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통합망 구축에 드는 총 사업 예산에서 재난피해절감액을 빼더라도 기존 통신망을 유지 할 때 보다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KDI의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사업 2009년도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통합통신망을 재추진할 경우 2009년부터 10년간 1조3076억원이 소요되지만 재난피해절감액은 4086억원에 불과하다고 분석됐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 이달곤)는 국가통합망 사업을 전면 재검토키로 하고 재난안전실 산하에 TF팀을 빠르면 6월말까지 10명 안팎으로 구성할 예정이며 올해 말까지 새로운 사업계획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 재난포커스 - 장영광 기자  jang@di-focus.com >

테트라(TETRA, 유럽 표준) 방식의 주파수공용통신(TRS)망을 이용한 국가통합망 사업은 대규모의 재난상황에서 공동으로 대응하는 다수의 기관이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확보치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됐다. KDI의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사업 2009년도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통합망 사업을 분석한 결과 ‘경제성’을 확보하기 곤란하며 정책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통합망 사업의 비용편익비율이 0.75로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을 가지기 위한 기준인 1을 넘지 못했다.

보고서는 “지난 2004년 예비타당성조사에 비해 정보화전략계획(ISP) 등을 거치면서 통합망 구축을 위해 실제 소요되는 비용이 대폭 증가한 반면, 주파수공용통신(TRS) 망의 일부 사용 경험에 의해 사업시행을 통해 발생할 경제적 편익의 추정치가 일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유철 한나라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은 “국가가 벌이는 사업에 있어서 비용·편익 분석은 간접비용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따라 다르게 산출된다”며 “국가 인프라와 관련된 사항은 실제 편익 분석에 있어 경제성 이외의 편익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800억원 예산 매몰 위기
국가 통합무선지휘통신망 사업은 현재까지 시범사업과 확장사업을 거치며 교환기, 중계기, 재중계기 670억원과 단말기 129억원 등 총 800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사업이 당초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올해 테트라 방식의 주파수공용통신망이 전국에 깔리고 경찰청, 소방방재청, 산림청, 지하철공사 등 전국 1441개 기관에 단말기가 지급될 예정이었다.

김사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은 “소방방재청이 애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방과 경찰 위주로 테트라 망을 구축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연계망 구축 비용이 많이 줄어들어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항이나 지하철, 철도 외에 꼭 연계할 필요성이 있는 산림청이나 해양경찰청이 빠져 있고 필요성이 떨어지는 기관이 포함되는 등 통신망 운영 범위 16개 공공기관의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원유철 의원은 “공공기관 선정 대상 기준에 있어 문제점이 지적되는 있다”며 “논란이 거세지기 전에 전담반을 꾸려 국가통합망 추진의 동력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 평가의 대상, ‘아니다’
“‘화재, 테러, 지진 등 재난 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통신망 사업이 경제성 평가의 대상인가’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충조 민주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은 국가통합망 사업 경제성 논란에 대해 “대규모 특수재난의 다양성·의외성·돌발성 등에 대비하는 대응체제 구축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한 국가의 기본적·필요적 업무인 만큼 경제성 평가 여하에 따라 추진 여부가 결정될 성질의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유철 한나라당 의원은 똑같은 질문에 “국가통합망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이라는 점”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사업성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원유철 의원은 또 “다른 것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니 만큼 국가통합망 사업의 시행에 더 이상의 지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희철 민주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도 BCR 1 이하 시행사업으로 여수세계박람회, 광대역통합망(BcN) 인프라 구축, 각종 도로공사 등을 예로 들며 “국가재정법시행령 제13조에 따르면 500억원 이상 재정이 투자되는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은 3035억이 소요돼 예비타당성조사대상 사업이므로 당연히 경제성 평가는 실시해야 하지만 국가통합망 구축사업은 국방이나 치안처럼 시장실패가 발생해 국가의 기본책무인 재난관리를 위해 추진되는 만큼 경제성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재난관리책임기관인 한국전기안전공사의 한 관계자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헌법에 정해진 사항으로 경제성 평가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상당한 문제”라며 “인명을 경제성과 비교한다는 것에는 인명경시 풍조가 그 저변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향후 대규모 재난이 발생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라며 “단적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측면의 인식에서 후진국에 있다고 할 수 있고 경찰이 경제성이 없다고 범인을 검거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되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소방방재청 한 관계자는 “경제성 평가 대상은 아니”다라며 “시행하는 방법의 개선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SOP, 상당한 시간 소요 예상돼”
보고서는 국가통합망 사업이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이번 사업이 통합망 구성에 관한 계획만을 주로 담고 있고 실제 업무처리방식에 대한 계획은 충분히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표준업무지침(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이 단기간에 소방방재청만의 고민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기관이 공동으로 작업하기 위한 기관 간 합의와 상당한 시간 소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독점 문제 전체 10~15%에 ‘불과’
보고서는 이번 사업의 정책 측면 분석 결과, 추진에 앞서 선결돼야 할 다양한 쟁점을 지니고 있지만 현재 소방방재청의 계획에서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준비가 충분히 제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사업의 타당성 확보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TRS 기술이 충분히 표준화되지 못한 관계로 하나의 제조사를 선택해 국가통합망을 구성할 경우 해당 기업에 독점력을 제공하게 된다.

반대로 한 기업에 독점력을 주지 않기 위해 여러 제조사의 장비를 혼용할 경우 TRS의 기능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전문가는 “KDI가 특정업체 독점 여부에 대해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 했다”며 “독점 문제가 제기되는 테트라 교환기가 전체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1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국가통합망 사업이 KDI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 결과 경제성이 없다고 확정됨에 따라 국내 테트라 관련 업체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국산 테트라 단말기 전문업체 유니모테크놀로지는 국가통합망 사업을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어렵게 단말기 국산화에 성공했는데 이제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국가통합망 사업 무산이 일부 업체에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국가통합망에 대비해 구축을 미뤄왔던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등 각 기관들이 개별적으로 테트라망 구축에 나서면 정부의 중복 투자가 되더라도 오히려 시장의 규모는 전체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통합망은 ‘필수’ 재난관리시스템
김유정 민주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은 “국가통합망 구축은 OECD 국가를 비롯 세계적인 추세이고 국가의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재난관리시스템 구축은 반드시 필수적인 요건”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사안임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기술동향과 외국사례를 보다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철 의원은 “국가통합망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필수 시스템이고 경제성과 비용편익의 문제를 벗어나 꼭 필요하다”며 “천재지변과 각종 사고로 대형참사의 피해가 줄고 있지 않는 시점에서 중단한지 3년째 접어든 국가통합망 사업으로 인해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다.

원 의원은 또 “국가통신망 사업은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그 장점을 인지하고 사용 중”이라며 “비용문제 등을 이유로 교각살우(矯角殺牛:조그만 일에 힘쓰다가 큰 일을 그르친다)의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철 의원은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점에서 홍수·지진·화재 등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국가통합통신망 사업은 필요하고 또 철저한 준비를 통해 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소방방재청 한 관계자는 “국가통합망 구축은 재난에 있어 각 기관 간에 통신이 원활하게 하기 위한 계획인데 전 부처 및 기관이 국가통합망을 구축하는 것 보다는 각 시·도에서 통합해 무전기를 보유하고 있다가 재난 발생 시 유관기관에 배부해 지휘통신용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라며 “지휘통신망 이외는 통신은 각 기관별 무선망을 이용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예를 들면 소방이 경찰에게 지원요청을 하면 경찰은 경찰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지원을 할 수 있는데 개개인의 무전기 지급은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며 “자체 무선망을 이용하다가 지원사항 발생 시 국가통합망을 이용 지원기관과 통신하는 것이 경제적이나 사용측면에서는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한 관계자는 “경제성이 있다고 하고 없다고 안하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어떻게 따르겠냐”며 “통합망사업의 지속 추진으로 단 한 명의 생명을 구한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 강성주 재난안전정책과장은 “국가통합망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해 TF팀을 빠르면 6월말까지 10명 안팎으로 구성해 올해 말까지 새로운 사업계획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