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각 공공기관들은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토대로 각 기관 나름의 ‘위기관리매뉴얼’을 만들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만들고 관리하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처’가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됐다. 이후 주무부처가 흐지부지 돼버린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은 별다른 조치 없이 1년 넘게 방치됐다.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담당자들은 유야무야(有耶無耶)한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사용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이 지침을 위기관리매뉴얼에 적용하며 생긴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또 이 문제들을 어떤 부처와 상의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재난포커스는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은 현재 어떤 상황이고 공공기관이 생각하는 지침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진단한다.

< 재난포커스 - 김수한 기자  ins@di-focus.com >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이 ‘공중에 떠버린’ 지침이 된 것은 이를 관리하던 NSC사무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작은 청와대’를 표방했던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며 참여정부 당시 확대 개편됐던 ‘NSC사무처’가 없어졌다. 이를 대신하기 위해 이명박정부는 청와대에 ‘위기정보상황팀’이란 임시조직을 신설해 NSC사무처보다 기능이 현저하게 축소된 국가위기관리조직을 운영했다. 작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사건’ 이후 국가의 안보와 위기관리의 문제점이 노출되자 7월25일 다시 기능이 확대된 ‘국가위기상황센터’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업무승계 문제 등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못했고 이는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공중에 떠버리게’ 만들었다. 차일피일 미뤄져온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에 대한 관리가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위기상황센터, 기관 의견 수렴 중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은 현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센터장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겸임)는 지난 4월말부터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에 대한 각 기관의 의견수렴 계획을 세웠다.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는 5월말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에 거론된 17개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실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의 운영상 문제점과 이용실태를 점검했다. 국가위기상황센터는 실무담당자의 의견을 토대로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앞으로 각 기관의 공식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또 재난관리책임기관 외 국가위기상황센터에서 분류한 4개 분야의 40여 공공기관에도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토대로 한 위기관리가 운영되고 있어 이들 기관의 입장도 확인할 예정이다.

법, 제도가 얽히고설킨 위기관리지침

	지난 2007년 5월1일 ‘NSC사무처’에서 만들어진 86쪽 분량의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에는 위기관리 분야를 경영위험, 재난, 커뮤니케이션(홍보), 갈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17개 재난관리책임기관 위기관리담당자들이 생각하는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기관리 분야 4가지 속에 공공기관의 고유 업무와 맞지 않는 것까지 규정하는데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여러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담당자들은 “각 공공기관마다 고유 업무가 다른데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에는 위기의 종류를 4가지의 분야에 국한시켜, 공공기관의 특성을 반영해서 위기관리매뉴얼을 관리하기 어렵다”며 “4가지 위기분류를 수정해 불필요한 것을 없애거나 세부적인 새로운 분류를 추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관광공사의 위기관리담당자는 “위기는 시장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항상 변하기 때문에 위기를 재분류하고 등급을 다시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은 법과 지침이 중복되는 부분에서 오는 혼란 해결과 각 기관의 자율보장 입장도 제시됐다. 한국가스공사, 한국조폐공사 등 몇몇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담당자들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혼란스럽다”며 “정형화된 하나로 통일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의 위기관리담당자는 “공공기관은 수익을 내는 일반 기업과 같은 측면도 있다”며 “홍보위기나 경영위기까지 꼭 지침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런 공공기관의 문제제기에 대해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이익동 과장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과 얽히고설켜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없애기도,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으로 통합하기도, 새 지침을 만들기도 애매한 상황이다”라며 “여러 이해관계들이 중첩돼 있고 지금 시행되고 있는 틀을 바꿔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 NSC 사무처에서 근무했던 연구원들의 자문을 얻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또 “공공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법과 지침에 중복된 것은 하나로 합치고 지침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으면 지침을 전체적으로 다시 검토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제 막 실무자들의 의견을 들었을 뿐,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에서 주도하고 청와대가 조정기구를 만들어 최고의결협의를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최소 1년에 한번정도는 기관의 의견을 수렴해 재개정하고 평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야말로 ‘죽은 매뉴얼’이 될 수밖에 없다.

지침, 의무 아닌 권고
참여정부 시절 NSC사무처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에서 제정한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 및 혁신에 관한 지침’ 제38조(공공기관 위기관리)를 근거로 하는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발표했다. NSC사무처는 2006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소장 정기영), 삼일회계법인(회장 안경태) 등과 공공기관의 위기유형 및 위기관리 실태를 조사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8개 공공기관과 협의 검토를 거쳐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마련했다. 2007년 5월1일 시행된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은 공공기관에 해당되는 위기관리 분야와 위기유형을 설정, 위기관리 체계 구축이나 운영에 필요한 기본요소와 활동에 관한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위기 시 파급영향 등을 고려해 297개 공공기관 중 17개 주요 공공기관에 우선 적용했다. 여기에는 한국관광공사(사장 오지철), 한국전력공사(사장 김쌍수), 한국석유공사(사장 강영원), 대한석탄공사(사장 조관일), 대한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김신종), 대한주택공사(사장 최재덕), 한국수자원공사(사장 김건호), 한국도로공사(사장 류철호), 한국토지공사(사장 이종상), 한국철도공사(사장 허준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 조환익), 농수산물유통공사(사장 윤장배), 한국농촌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홍문표), 한국조폐공사(사장 전용학), 한국가스공사(사장 주강수),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이채욱), 한국공항공사(사장 성시철)가 포함돼 있다.

이들 기관은 지침을 제반 위기관리 활동에 적용하되, 세부사항은 각각의 특성과 위기유형별로 자체적으로 구체화 해 발전하는 쪽으로 노선을 정하고 시행이나 운용, 위기관리 활동에 관해 NSC, 기획예산처, 주무부처와 협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을 주도한 안철현 인천대학교 겸임교수(전 NSC사무처 국장)는 “당시 17개 공공기관들에게 각 기관 실정에 맞게 ‘위기관리매뉴얼’을 만들고 이 매뉴얼로 훈련도 하도록 지도했다”며 “공공기관은 하나의 기업처럼 경영적 측면도 있기 때문에 지침은 의무가 아닌 권고의 성격을 가진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지침을 만든 후에 추가적으로 점검하고 당시 기획예산처 평가지표에 집어넣고 독려하려 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공공기관위기관리지침은 ‘표준’이 아닌 말 그대로 지침일 뿐이다. 정형화된 ‘표준’없이 만들어진 위기관리매뉴얼은 그만큼 현 실정에 맞게 변경하고 추가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공공기관의 위기관리에도 ‘표준’ 필요성은 시급하다. 이번 청와대 위기상황센터의 움직임으로 공공기관의 위기관리에도 정형화된 ‘표준’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