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기관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받는 등 ‘7.7 사이버테러’로 인해 우리나라 주요 기관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마치 2년 전에 개봉된 영화 ‘다이하드 4.0’을 연상케 한다. 해킹당한 사이트 25개(네이버 메일과 네이버 블로그를 별도의 사이트로 구분할 시 26개) 중 국내 사이트는 청와대, 국회, 국방부, 외교통상부, 한나라당, 조선일보, 옥션, 농협, 신한은행, 외한은행, 네이버 11개, 미국 사이트는 백악관 외에 국토안보부, 연방항공청, 국무부, 문화재부, 연방거래위원회, 연방우체국, 뉴욕증권거래소, 주한미군, 옥션(미국 사이트), 야후, VOA뉴스, 워싱턴포스트, US뱅크 등 14개다. 이번 사이버테러는 정부기관, 정당, 포털, 금융기관, 언론 등 각계의 국내 주요기관을 동시에 마비시켜 우리나라의 사이버테러 대비·대응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드러냈다.

< 재난포커스 - 장영광 기자  jang@di-focus.com >

2006년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한나라당 미래위기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위기관리포럼 대표)은 국방위와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21세기 신 10만 양병.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의 필요성’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이라는 정책자료집을 통해 적의 사이버공격에 대비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 7월17일 공성진 최고위원은 대대적인 사이버테러에 발생하자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의 조속한 통과에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한다”며 “국방부는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과 사이버전 정예 요원 10만 양병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7 사이버테러에 앞서 지난 6월24일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국방부가 사이버테러에 맞서고 사이버 전쟁을 능동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0월중 전략사령부(STRATCOM) 산하에 ‘사이버 사령부(Cyber Command)’를 창설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나라 국방부(장관 이상희)도 ‘국방개혁 2020’의 일환으로 내년 1월에 국군기무사령부 소속으로 가칭 ‘사이버 사령부’를 만들기로 계획하고 있다. 이번 7.7 사이버테러 이후 사이버사령부 발족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우선 각 군에 흩어져 있는 사이버 전문가들을 모아 400~500여명 규모로 사이버 사령부를 창설하고 오는 2012년에는 사령부의 모습을 완전하게 갖출 계획이다.

[다이하드4.0(Live Free or Die Hard, 2007) 줄거리] 7월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컴퓨터 해킹 용의자 매튜 패럴(저스틴 롱 분)을 FBI본부로 호송하던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분). 매튜 패럴의 집으로 들이닥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정부의 네트워크 전산망을 파괴해 미국을 장악하려는 전 정부요원 토마스 가브리엘(티모시 올리펀트 분)이 자신의 계획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해커들을 죽이는 동시에 미국의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미국의 교통, 통신, 금융, 전기 등 모든 네트워크가 테러리스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미국은 공황상태에 빠진다. 정부는 원인도 배후도 밝혀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 당한다.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뉴저지로, 워싱턴으로 버지니아로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가브리엘이 존 맥클레인의 딸 루시(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를 인질로 잡고 마는데…….

영화에서도 예견됐던 ‘사이버테러’
이번 사이버테러가 야기한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의 폐해를 소재로 다룬 영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테러는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애용돼 왔다. 특히 지난 2007년 개봉한 영화 ‘다이하드 4.0’은 이번 ‘7.7 사이버테러’와 매우 닮았다. 이 영화는 개봉 2년 만에 이번 사이버테러 사건을 놀랍게 예견했다는 이유로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개봉 당시 돌아온 늙은 형사 ‘존 맥클레인’이 악착같이 맞선 이 액션영화는 국내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영화는 미국을 장악하려는 전 정부요원이 체계화된 사이버 공격 시나리오를 갖추고 미국 독립기념일에 교통, 통신, 금융, 전기 등 모든 네트워크를 장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디도스 공격을 보다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정보기술(IT) 강국, 사이버강국을 자랑하던 우리나라는 이번 해킹 공격 한 번에 심히 흔들리고 있다. 이미 2년 전에 영화에서 예고했던 대란을 아직까지 별다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보안전문가들은 이번 공격으로 인해 셀 수 없는 컴퓨터들의 정보가 유출되고 더 나아가 모든 정보를 잃는 등 끔찍한 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디도스’ 공격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사이버테러가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영화 속 해커, ‘낭만’에서 ‘위험’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해커스',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스니커즈(1992)'는 등 90년대 초중반에 개봉된 해커영화들은 해커를 낭만적으로 묘사됐다. ‘스니커즈’에는 컴퓨터 보안을 목적으로 전문적으로 시스템에 침투하는 전문가, 즉 착한 해커들이 등장한다. 그러다 점차 해킹을 이용한 범죄들이 늘어나자 영화 속에서도 해커가 ‘위험인물’일 수 있다는 경고성 내용을 많이 다루기 시작한다. 지난 3월 개봉한 '카오스(2009)'는 은행 보안시스템 책임자가 악당의 위협을 받고 해킹을 이용해 24시간마다 계좌에서 100달러씩 이체해 무려 10억 달러를 빼내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파이어 월(2006)'은 컴퓨터 보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뇌 싸움을 그렸다. 존 트라볼타 주연의 '스워드피쉬'(2001)에는 국제 테러를 분쇄하고자 하는 전직 CIA 출신의 극우파 스파이가 자금 마련을 위해 미 마약단속국의 컴퓨터에 침투해 95억 달러의 비자금을 차지하려고 전직 해커를 고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이하드 4.0'을 비롯 ‘파이어 월’, ‘카오스’, ‘스워드피쉬’ 등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일부 현실화된 이번 ‘7.7 사이버테러’를 생각하면 영화 속 픽션에 불과하다고 방심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이버 대응부대, 세계적 추세
7.7 사이버테러에 앞서 미국 국방부는 10월중 전략사령부(STRATCOM) 산하에 사이버테러에 맞서기 위한 ‘사이버 사령부(Cyber Command)’를 창설할 계획을 밝혔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대통령 사이버 안보담당 특별 보좌관을 임명을 시작으로 지난 2000년 9월 국토안보부 산하 국가사이버보안부를 창설한 바 있다. 미군은 그동안 인터넷 방화벽을 높이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수준에서 소극적으로 사이버테러에 대처해 왔다. 미국 내에는 사이버테러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10월 중 창설될 미 ‘사이버 사령부’는 우선 미군의 사이버 방어망을 강화한 뒤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인 외국의 인터넷 서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잠입시켜 해킹 프로그램을 파괴하고 컴퓨터 칩을 제조할 때 비밀리에 악성 코드를 심어 ‘적성국’ 정부의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인터넷으로 원격 조종하는 방안이 검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0년 1월 중국 해커들에게 과학기술국 등 16개 정부 기관의 웹사이트를 해킹당한 후 사이버 전력 강화에 나서며 그해 10월 육·해·공 자위대 통합 사이버테러 대응 조직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또 1년 후인 2001년 방위청 소속 사이버 전투부대를 창설했다. 중국 인민해방국 총참모부도 지난 1997년 중앙군사위원회 직속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부대를 창설했고 지난 2000년에는 과학원 산하 사이버 공격과 정보 교란 훈련을 수행하는 ‘반해커 부대’를 만들었다. 러시아는 연방보안국(FSB)에 일찍이 사이버전 전담부서를 둬 1990년대 초 당시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지시로 적성국의 지휘·통제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세계 선진 국가들이 사이버 전쟁 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테러조직이나 적성국 등의 사이버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지난 2008년 초 이명부 정부 출범과정에서 정부조직이 개편되면서 정보보호 업무가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부(장관 이달곤), 지식경제부(장관 윤증현)로 분산돼 있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맡던 사이버테러 총괄조정기구가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또 민간 사이버침해사고를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산하의 한국정보보호진흥원(원장 황중연, KISA)마저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통합되면서 조직이 축소되는 등 우리나라 정부의 사이버테러 대비 체제가 허술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이버 사령부’ 창설, ‘사후약방문’
이번 사이버테러를 계기로 노태우 정부 때 과학기술처장관을 역임했던 지역구와 전국구를 포함, 4선 의원을 지낸 이상희 전 의원이 지난 1996년, 즉 무려 13년 전 제기한 ‘10만 해커 양병설’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1996년 당시 부산 남구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국방 정보화와 교육 정보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국방 정보화 공약의 핵심이 '10만 해커 양병설'이었다. 이 전 의원의 ‘10만 해커 양벙설’의 주요내용은 앞으로 전쟁은 사이버 전쟁이 될 것이고 사이버전에서 효율적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하려면 하드웨어 중심의 군 시스템을 바꿔 전자군복무제를 도입, 온라인을 통해 운영되는 해커부대를 창설하는 것이다.

당시 이 전 의원의 이런 주장은 조선시대 율곡 이이 선생이 임진왜란 이전에 제기했던 '10만 양병설'과 같은 뜬금없는 주장으로 치부됐다.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한나라당 미래위기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위기관리포럼 대표)이 지난 2006년에 국방위와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21세기 신 10만 양병.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의 필요성’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이라는 정책자료집을 통해 사이버테러에 대비할 것을 주장했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또 체계적인 법적, 제도적 시스템 구축을 위해 ‘사이버 위기 예방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고 당시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임기만료 자동폐기된 법안을 18대 국회에 들어와 좀 더 보완해 지난 2008년 10월 ‘국가 사이버 위기관리법안’으로 다시 제출했다. 이 법안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정보위원회에 상정됐다. 지난 7월17일 공성진 최고위원은 대대적인 사이버테러에 발생하자 “진작에 사이버 보안을 책임질 통합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음에도 이제 와서야 사후약방문식의 사이버안보총괄조정기구 설치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은 뒷북 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또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의 조속한 통과에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한다”며 “국방부는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과 사이버전 정예 요원 10만 양병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성진 의원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공익근무요원제도를 활용해 사이버전부대 요원을 양성하고 의무경찰에 사이버전 특기병을 선발해 사이버범죄수사에 활용하며 병역특례제도를 활용, 사이버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수도권대학에 사이버전학과를 설치해 졸업 시 사이버전전문지휘관급 장교 요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