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15일 일본 미에현 중부지역에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난 지역에는 반도체와 LCD 생산 시설이 있었다. 이 시설도 지진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몇 시간 뒤 다시 생산 시설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해 사업연속성계획(BCP)을 책정해두었기 때문이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섬나라 일본은 지리적 여건 탓에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다. 특히 지구에서 지진활동이 가장 활발해 ‘불의 고리’라고도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해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1995년 1월17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7.2의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지진)으로 55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재민 30여만명과 10조엔(약 129조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불렀다. 2004년 10월23일엔 니가타현에서 리히터 규모 6.8의 강한 지진(니가타현 나카고에 지진)이 일어나 사망자·행방불명자 46명과 부상자 4801여명의 인명 피해를 입히고 건물 2827채가 완전히 파괴됐다.

니카타현 나카고에 앞바다에선 2007년 7월16일에도 비슷한 규모의 강진(니카타현 나카고에 바다지진)이 발생해 15명이 숨지고 2345명이 다쳤는데, 니카타현에서 집계한 피해액은 1조5000억엔(약 19조580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일본에선 거의 매년 강진이 발생할 뿐 아니라 작은 지진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난다. 그럼에도 피해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진에 철저하게 대비하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의 대부분은 건물이 무너져 생기는 것이어서 특히 건물을 지을 때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 큰 힘을 쏟고 있다.

산업·인프라 지진 피해 줄이는 BCP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나라 곳곳에 산업시설이 자리했고 인구밀도도 높다. 게다가 섬나라여서 산업시설을 비롯한 인프라 시설과 주요 도시 대부분이 바다와 접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그만큼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셈이다. 그럼에도 지진에 따른 피해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한 이유는 웬만한 지진엔 끄떡없을 만큼 건물을 튼튼히 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에 사업연속성계획(BCP)을 적용함으로써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건설회사들이 BCP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앞서 설명한 2004년 ‘니가타현 나카고에 지진’이었다. 이 지진으로 반도체 제조시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자동차 부품공장이 재난을 당해 니가타현 밖에 있던 이륜차 제조 공장의 생산이 일시 중단된 사건은 일본에서 BCP가 퍼지게 된 계기가 됐다. 2007년 ‘니카타현 나카고에 바다지진’ 때에도 진원과 가까운 원자력 발전소가 큰 피해를 입었다. 원전뿐만 아니라 정밀 자동차 부품 공장의 피해도 일본에서 주목을 받았다.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던 부품회사의 재해로 인해 일본 12개 자동차회사가 약 1주일간 자동차 생산을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공급사슬(supply-chain·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미리 막는다는 측면에서 BCP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 주요 건설회사들은 자체적으로 BCP를 책정할 뿐 아니라, 고객의 BCP에 관한 대책을 파악해 내진화 촉진이나 고객 스스로 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응급 처치를 미리 제안하는 등 사전 대책을 조직적으로 추진한다.

특히 건설업은 다른 업종과 비교해 BCP에 대한 건설업만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일반 회사들은 자기 회사와 거래처를 고려해 BCP를 책정하는 데 비해 건설업은 공공 인프라 복구라는 중요한 일이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공장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도 ‘주력 제품을 만든다’는 일에만 힘을 쓰면 된다. 하지만 건설업은 자사의 피해를 복구하면서 고객의 피해 복구를 도와야 한다.

도로 등 인프라 복구와 함께 피해를 입은 다른 기업의 공장이나 시설을 복구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게 계속 건설업을 유지할 수 있는지와 관계되는 주요 업무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니가타현처럼 지진이 잦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건설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특수성은 지자체 및 중앙정부기관과 건설업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건설업은 이들과 복구 등에 대한 협정을 맺고 있다. 그런데 BCP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협정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사회적 신용을 잃어버리게 된다.

고객 BCP 책정 돕는게 경쟁력 - 초고층 건축에는 필수요소
일본 건설회사들은 자사의 사업을 계속 유지하고 사회적 신용을 잃지 않는다는 두 가지 목적에서 BCP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큰 공사를 많이 하는 건설회사들은 자체 BCP를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의 BCP 책정까지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도쿄 미나토구 시바우라에 본사를 둔 시미즈건설(대표이사 미야모토 요이치)의 경우 일찍 BCP를 책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체 개발한 건물피해예측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활용해 고객의 BCP 책정을 지원하고 있다.

180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올 4월1일 현재 1만1535명이 일하고 있는데, 지진과 같은 재해가 발생하면 본사에 대책본부가 설치되고 미리 지정된 약 3000명 임직원이 대책요원이 된다. 특히 초고층 건물 건축에는 필수적이다. 이들 요원 한명 한명에게는 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객 시설이나 약 40개 지사에 도착해 ‘누가 어느 건물로 향해야 하나’를 나타낸 지시서가 주어져 있다. 효과적인 복구를 위해선 대책요원 모두가 재난관리 전문가가 돼야 하는데, 시미즈건설은 이를 위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미즈건설은 고객 시설의 경우 상황 파악과 응급 복구를 포함한 초기복구 시간을 최대 72시간으로 정했다. 물론 피해 규모 등 상황에 따라 시간은 달라지지만 최대 72시간 안에 초기복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책 본부에서는 지도 시스템과 연계해 건물 단위로 상황을 확인하고 피해 상황이나 지시·실시한 대책의 상세한 기록을 보존해 나간다. 하지만 이 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건물 1만5000동 모두를 한꺼번에 복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 때문에 시미즈건설은 우선 고객 기업의 BCP를 파악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까지 BCP를 작성한 고객 기업은 많지 않지만, 고객이 여러 시설 가운데 어디를 먼저 복구하고 싶은지를 파악하는 것은 고객 요구에 따른 지원 활동이란 의미에서 중요한 일이다. 복구보다 더 중요한 게 평상시 대책이다. 시미즈건설은 “컴퓨터를 활용해 시공 건물에 대한 예상 피해 상황을 계산하고, 이러한 예측을 바탕으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건물에 대해선 지진 대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한 일본 전문가는 “자사 시설뿐만 아니라 시공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 BCP 책정은 힘든 일이었지만, 이러한 노하우가 ‘고객에게 방재 대책을 제안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로 연결된 측면도 있어, 시미즈건설이 BCP에 힘을 쏟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또 시미즈건설은 정전 BCP를 개척해 올해 초 제조업의 생산 시설을 대상으로 한 정전 리스크 진단 시스템을 개발·실용화하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정전 발생 리스크나 피해 크기, 정전 대책 등을 종합 진단할 수 있다. 낙뢰 등 자연재해가 증가해 생산 시설의 정전 피해가 확대하는 상황에서 고객 기업의 생산 활동을 지키는 시스템을 적극 제안함으로써 공사를 따내는 데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에 대한 BCP 보급과 함께 새로운 사업으로 정전 BCP를 개척한 것이다. 앞으로도 시미즈건설은 다른 영역으로 BCP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