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난으로부터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일을 하는 중앙행정기관이 소방방재청이다. 2004년 6월 1일 문을 연 소방방재청은 재난관리뿐만 아니라 불을 끄는 소방업무도 맡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때도 소방방재청과 같은 일을 하는 관청이 있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 설치한 ‘금화도감(禁火都監)’이 바로 그것이다.

< 재난포커스 - 이주현 기자  yijh@di-focus.com >

화재와 도둑이 끊이지 아니함을 걱정해 의정부와 육조의 여러 신하를 불러 논의하고 따로 ‘금화도감’을 상설기관으로 설치하게 해 화재 방지하는 것을 사찰하게 했다.”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세종실록>에 나오는 금화도감 설치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금화도감에 대한 내용은 <세종실록> 외에도 <문종실록>·<단종실록>·<세조실록>·<성종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역시 <세종실록>이다.

처음으로 금화도감이란 이름이 나타나는 <세종실록> 31권을 보면, 세종이 금화도감을 설치하게 된 배경과 금화도감이 맡은 일 등을 알 수 있다. 금화도감을 설치한 배경은, 당시 한양에 크고 작은 불이 자주 일어나 백성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금화도감의 설치 목적은 화재와 같은 재난을 막고 불이 났을 때 빠르게 끄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세종 8년(1426) 2월 15일 점심 때 일어난 화재는 금화도감 설치에 직접 영향을 줄 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 불은 “서북풍이 크게 불 때 한성부 남쪽에 사는 인순부의 종이었던 장룡의 집에서 먼저 일어나 경시서(시장 거리 가게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았던 관청)를 비롯해 북쪽의 행랑(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 106간과 중부의 인가 1630호, 남부의 350호, 동부의 190호를 태워버렸다”고 한다. 또 남성 9명과 여성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여기엔 타죽어서 재가 된 어린아이와 늙고 병든 이들의 수가 포함되지 않았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튿날에도 화재가 이어졌다. 2월 16일에도 바람이 불었고, 미시(오후 1시부터 3시까지)에 전옥서(감옥의 죄인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 서쪽에 사는 대부 정연의 집에서 불이 일어나 전옥서와 행랑 8간을 태워버린 것이다. 이 불은 종루(종각)로까지 번졌는데, 다행히 여러 관리들의 노력으로 종루는 지킬 수 있었지만 종루 동쪽으로 불꽃이 튀어서 인가 2백여호가 불타고 인근에 살던 많은 백성이 황급히 피해야 했다. 게다가 집이 불타거나 황급히 화재를 피해 집을 비워야 했던 백성은 도둑을 맞아 재산을 대부분 잃었다고 한다.

이날 세종은 “화재를 당한 백성을 조사해 식량을 공급하고, 화상을 입은 자는 의원에게 치료하게 하고, 사망자 한 사람에 대해선 쌀 1석과 종이와 거적 등을 주어 매장하게 하고, 사망자 중에 친족이 없는 자는 관청에서 장사에 쓸 기구를 주어 한성부에서 사람을 시켜서 장사지내게 하라”고 예조에 명을 내렸다.

세종은 19일과 20일에도 의정부 등에 화재에 따른 구제책을 명하는 한편 화재 대비책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20일 세종이 명령한 소방대책은 다음과 같다.

“서울의 행랑에 화재를 막을 담장(방화장)을 쌓고, 성내 도로를 넓게 사방으로 통하게 만들고, 궁성이나 돈과 곡식(전곡)이 있는 각 관청과 가까이 붙어 있는 가옥은 적당히 철거하라. 행랑은 10간마다, 개인 집은 5간마다 우물을 하나씩 파고, 각 관청 안에는 우물 두 개씩을 파서 물을 저장하라. 종묘와 대궐 안과 종루의 누문에는 불을 끄는 기계를 만들어 비치했다가,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곧 쫓아가서 끄게 하라. 군인과 노비가 있는 각 관청에도 불을 끄는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가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각각 그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가서 끄게 하라.”

그러다가 26일엔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와 육조의 여러 신하를 불러 불을 끄는 방법에 대해 건의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이조에선 도성 안에 방화에 대해 규정한 법을 전담한 기관이 없어서 거리의 지각없는 무리들이 화재를 발생시켜 백성에게 피해를 입히니 금화도감을 상설기관으로 설치해 폐지하지 말고 화재 방지하는 것을 사찰하게 하라는 건의를 했으며, 세종은 그대로 따랐다.

금화도감에 소속돼 불을 끄는 일을 하던 이들을 ‘금화군’이라 불렀는데, 금화군은 군인이나 공노비로 구성됐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나르던 노비가 이들을 도왔다. 금화군은 세조 때 ‘멸화군’(滅火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426년 3월 3일 금화도감에서 세종에게 올린 계(관청이나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말)를 보면 금화군의 권한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이 계의 내용은 효과적으로 끄기 위한 방법과 금화군에게 필요한 권한을 세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첫 째 불을 끄는 사람이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 지난 뒤 불을 끄러가다가, 순관에게 구류를 당하면 제때에 달려가서 끄지 못하게 되니, 그들에게 신패를 만들어 줘서 밤중에 불을 끄러 가는 증명이 되게 할 것. 둘 째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각처의 군인은 병조에서, 각 관청의 노예는 한성부에서 사찰하게 할 것. 셋 째 뜻밖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멀리 떨어져 있거나, 밤이 깊어서 담당 관원이나 군인이 잘 알지 못하면 제때에 불을 끄지 못하게 되니, 의금부에서 종루를 지키게 해, 밤낮으로 관망하다가 화재가 발생한 곳이 있으면, 곧 종을 쳐서 소리를 듣고 곧 달려가게 할 것.

이에 세종은 관공서에서 화재가 났을 때에만 종을 치게 하고, 그밖에는 치지 말도록 하는 것만 빼곤 금화도감에서 올린 계를 그대로 받아 들였다. 6월 16일에는 하천을 관리하며 수재를 막는 일까지 금화도감에서 맡도록 했다. 한성부 등엔 하천을 맡은 관원이 없으니, 사령(각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사람)도 넉넉하고 다른 임무도 없는 금화도감이 하천 관리를 맡도록 해 달라는 한성부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세종에게 한성부에서 올린 계에서처럼 금화도감은 세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화도감 설치에 대해 이조에서 세종에게 올린 건의에 따르면, 금화도감엔 제조(提調) 7명, 사(使) 5명, 부사(副使)와 판관(判官)이 6명씩 있었다.

제조는 조선시대 중앙에서 각 사(司) 또는 청(廳)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각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고위직이다. 특히 금화도감 제조는 병조판서와 의금부 도제조가 우두머리가 되고 오늘날 서울시장에 해당되는 판한성부사가 실무를 맡도록 했다. 5명을 두었던 사도 풍저창, 제용고 등 중앙관청이나 목, 도호부 등 지방 관아의 으뜸 벼슬이다. 이처럼 금화도감에 고위 관리를 여러 명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을 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소방방재청이나 소방서와 달리 금화도감에는 방화범을 잡을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금화도감은 1426년 6월 19일 궁성과 도성, 다리의 건축과 수리를 맡았던 수성도감과 합쳐져 수성금화도감이 되고, 세조 때인 1460년 관원 수를 줄이는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한성부에 속하게 됐다. 성종 때 다시 화재가 자주 일어나 1481년 수성금화사로 이름이 바뀌었다.